[딜로이트 글로벌 경제 리뷰] 새해 글로벌 반도체 산업, 다각화 탄력 강해진다

아이라 칼리시 2022. 12. 26. 17: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74_50.jpg


이미지 크게 보기

 

 

아이라 칼리시딜로이트 투쉬 토머츠리미티드 수석 글로벌이코노미스트 배서칼리지 경제학,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박사

현대인이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물건을 만드는 데 필요한 반도체는 대부분 원자재 상품(commodity)으로 취급되며, ‘세계 경제를 지탱하는 새로운 석유’라는 칭송을 받곤 한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상호작용이 증가하고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와 운송수단이 등장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한층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최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이 대만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에 집중돼 있는 현상은 각국 정부와 반도체 구매자들에게 달가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아시아 지역의 불안정한 지정학적 상황이 공급 우려를 심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반도체 법(CHIPS Act)을 제정해 반도체 제조 공장의 리쇼어링(reshoring·생산 기지 본국 회귀)을 활성화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법은 국산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위해 국내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한 미국 행정부는 중국 기업의 미국 반도체 산업 접근을 금지하는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중국의 기술 패권을 경계함과 동시에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험으로부터 반도체 공급망을 보호한다는 취지다. 

유럽연합(EU)은 2022년 2월에 430억유로(약 59조6200억원) 규모의 EU 반도체 법(EU Chips Act)을 발표했고 현재 의회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EU는 반도체 소비량이 생산량의 두 배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량의 약 20%를 소비하는데 글로벌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9%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은 EU에 심각한 공급망 및 지정학적 위험으로 작용하고, 최근 반도체 부족난 사태로 이러한 위험이 더욱 부각됐다. EU는 완전한 반도체 자립화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EU 반도체 법의 목적은 자급력을 강화한다는 것이지 수입 반도체에 대한 의존을 완전히 끊겠다는 것은 아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어떠한 국가 또는 어떠한 대륙도 완전히 자립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EU는 특히 유닛당 가치가 높은 2㎚(나노미터)의 첨단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유럽은 생산 시설과 기초 기반이 부족하므로 오히려 최첨단 기술부터 뛰어드는 것이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는 계산에서다. EU 반도체 법은 2030년까지 2㎚ 반도체 칩 생산에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중국산 반도체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위기의식도 EU의 반도체 자급력 강화 움직임을 촉발했다. 유럽 반도체 제조 툴(장비) 업체들은 현재 중국 수출을 중단하라는 미국의 압력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중국의 기술 굴기를 억제하려는 미국이 여타 기술 및 지식재산권, 중국 기업의 유럽 기업 인수 등을 경계하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EU는 반도체 산업 자급력 강화 외에도 한국과 대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일본과 미국 등으로 공급망을 다각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다른 여건이 비슷해진다면 지리적으로 대만이나 실리콘밸리, 도쿄 모두 비슷한 거리이기 때문에, 공급망과 지정학적 위험이 적은 곳으로 공급망을 분산시킨다는 것이다.

중국은 반도체 강국으로 꼽히기는 하지만 한국과 대만 등에 비하면 첨단기술이 뒤처진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 자립화와 첨단기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2020~2025년 반도체 산업에 1500억달러(약 196조5000억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반도체 산업에는 새로운 다각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인도 대기업 타타(Tata)가 한국, 일본, 대만, 미국 반도체 기업 중 한 곳과 협력 관계를 체결하고 반도체 생산을 위한 대규모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최근 발표했다. 라탄 타타(Ratan Naval Tata) 타타 회장은 “업스트림 반도체 생산 플랫폼 설치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반도체 조립으로 시작해 결국 더욱 복잡한 파운드리 영역까지 진출하겠다는 뜻이다. 타타의 투자가 성공한다면 이는 반도체 산업에 ‘게임 체인저’가 돼, 반도체 생산 중심지를 동아시아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좀 더 다각화할 수 있다. 심지어 인도가 반도체 산업의 경쟁자로 재탄생할 수도 있다. 인도는 이미 소프트웨어와 첨단기술 서비스 부문에서 주요 경쟁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만큼, 반도체 산업에서도 놀라운 저력을 보여줄 잠재력이 있다.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반도체 제조 업체 중 한 곳인 대만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 반도체 제조 공장 투자를 400억달러(약 52조4000억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미국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크게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또 미국 기반의 대형 반도체 제조사 한 곳은 오하이오주 생산 시설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다. 초기 투자금은 200억달러(약 26조2000억원)에서 시작했으나 이제 1000억달러(약 131조원)로 투자 규모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반도체 법에 따른 재무적 인센티브가 이러한 투자를 가능케 하는 일부 요인으로 작용했다. 새해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다각화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되는 이유다. 

반도체 산업의 다각화를 모든 이가 반기는 것은 아니다. 모리스 창(張忠謀) TSMC 창업자 겸 전 회장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은 거의 죽었다. 많은 사람이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부활을 염원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경고했다. 창 전 회장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중국과 서방 간 관계 악화가 결국 기술적 탈동조화(decoupling)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기술 교류가 단절되면 혁신의 숨통이 막히고, 비용은 늘고, 생산성 향상이 억제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의 미래 방향에 대해서는 창 전 회장의 지적이 옳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더욱 넓은 범위의 세계 경제는 여전히 세계화가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반도체 산업 다각화를 찬성하는 이들은 기업들이 다각화 투자를 통해 지정학적 위험에 대한 보험을 들어 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미국 소재의 한 첨단기술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 산업 생태계 전반은 서로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 지난 몇 년간 극심한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겪은 반도체 산업은 좀 더 지리적으로 다각화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우리 모두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반도체 공급망의 회복력”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최첨단 반도체 칩의 약 90%가 대만에 있는 단 한 곳의 공장에서 생산된다. 이처럼 생산 능력이 극도로 집중돼 있으면 비용과 효율성은 뛰어나지만 공급 위기가 발생할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심지어 반도체 산업 다각화 지지자들은 최근까지 변화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며, 이는 부분적으로 미국 정부의 인센티브가 너무 보잘것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한다. 이들은 미국 반도체 법을 통해 제공되는 인센티브가 현재 규모로는 반도체 산업의 진정한 전환을 유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산업 육성 정책이 진정한 시장 경제의 효율성 목표에 위배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해당 기사의 타임톡 서비스는
언론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