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의 고집…"기업부담 완화 위한 정책변화, 금융완화 지속"

방성훈 2022. 12. 2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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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日경단련 연설서 장기금리 변동폭 확대 배경 설명
"10년물 금리 높여 기업 차입 부담 완화…출구전략 아냐”
"日, 저금리·저물가 장기 고착서 벗어날지 중요한 기로"
구로다 거듭된 부인에도 시장은 '출구전략' 기정사실화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가 장기금리 변동폭 확대는 기업들의 차입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며, 긴축으로 돌아선 것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가 지난 20일 금융정책결정회의 이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AFP)

“기업 차입부담 완화 위한 통화정책 변경 …출구전략 아냐”

구로다 총재는 26일 일본 경제단체연합회 연설에서 일본은행이 장기금리(일본 국채 10년물 금리) 변동폭을 기존 ‘±0.25% 정도’에서 ‘±0.5% 정도’로 확대한 것과 관련해 “기업금융에 이르는 파급(효과)까지 고려해 금융완화를 지속적이고 원활하게 진행해 나가기 위한 대응”이라며 “출구전략을 향한 첫 걸음이 절대로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일본에 투자됐던 자금이 미국으로 옮겨가게 됐고, 이 과정에서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가 8~9년보다 낮아지는 시장 왜곡이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돈을 빌릴 때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아야 하는데 장기금리가 더 낮은 탓에 기업들이 회사채를 통한 차입에 어려움을 겪게 됐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10년물 금리 상단을 높이게 됐다는 것이다.

구로다 총재는 “금융완화를 유지함으로써 경제를 제대로 지원하고 기업이 임금인상을 쉽게 할 수 있도록 (경영)환경을 정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기업들이 제품 가격 또는 임금인상을 시도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선 “오랜 기간 유지된 저인플레이션 및 저성장 흐름이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중요한 기로에 접어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에 따라 임금상승에도 물가 목표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구로다 총재의 발언은 지난 20일 금융정책결정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당시에도 구로다 총재는 통화정책 변경 이유를 “시장 왜곡 때문”이라며 긴축 기조로 돌아선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기시다 후미오 정권의 압박에 일본은행이 굴복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고물가 등 엔저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논란과 맞물려 기시다 내각 지지율을 끌어내렸고, 기시다 총리 측근들 사이에서 통화정책에 대한 불만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며 지난달 10일 기시다 총리와 구로다 총재가 회담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또 “이번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결정 배경에는 기준금리 인상을 서두르는 미국과의 금리격차 확대로 엔화 약세가 역사적인 수준까지 진행된 사실도 있다”고 꼬집었다.

‘나쁜 엔저’만 남겼다는 평가도 있다. 구로다 총재는 2013년 3월 취임 직후부터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고수해 왔다. 취임 초반엔 해외 가격경쟁력 강화→수출기업 실적 개선→투자·소비 증가 및 임금인상 등 선순환을 유도하는 ‘좋은 엔저’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퇴임을 3개월 남짓 앞둔 현재 금융완화 정책으로 경상수지 적자→자본유출→엔저 가속화→물가상승이 악순환하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구로다 거듭된 부인에도 시장은 “이미 출구전략 시작”

한편 출구전략이 아니라는 구로다 총재의 거듭된 부인에도 시장에선 일본은행이 사실상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달 초 달러당 137엔대였던 달러·엔 환율은 지난 20일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변경 직후 131엔대까지 급락했고 이후 132엔대 중반에 안착했다. 이날 구로다 총재의 연설 직후엔 0.1엔 안팎에서 교착상태가 지속되는 등 큰 변동이 없었다. 일본 닛케이255지수는 전거래일대비 0.65% 소폭 상승 마감했는데, 이는 구로다 총재 발언보다 연준이 선호하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 지수 상승폭이 전월보다 둔화한 영향이 더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구로다 총재의 퇴임까진 현 기조가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시장에선 구로다 총재의 후임이 누가 될 것인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연준이 상당 기간 고금리를 유지하겠다고 예고한 데다, 유럽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위기 지속으로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여서다.

치솟는 물가 부담에 긴축에 발맞출 수 있는 인사가 적절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행 출신 나카소 히로시 전 부총재와 아마미야 마사요시 현 부총재, 재무성 출신 아사카와 마사쓰구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 등이 후임자로 거론된다. 구로다 총재의 임기는 내년 4월 8일까지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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