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통 "돈에 이끌려 삶을 망치지 말자는 이야기하고 싶었죠"
양동근 "20년 만에 제 작품 보면서 울어"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는 계급과 신분이 없다고들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 모두 돈의 노예라는 건 알고 있죠. 스스로가 자유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자문하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군대 내 부조리를 날카롭게 그려낸 웹툰 'D.P 개의 날'로 이름을 알린 김보통 작가가 이번에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사막의 왕'의 극본을 쓴 김 작가는 26일 화상인터뷰에서 "돈 받아서 일하는 건 당연하지만 돈에 끌려가면서 삶을 망치지는 말자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총 6부작으로 만들어진 '사막의 왕'은 회차마다 각각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언뜻 보기에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이지만, 이들은 모두 '사막의 왕'이라고 불리는 한 대기업 사장(진구)과 엮여 연결돼있다.
드라마는 첫 회 '모래 위의 춤'부터 파격적인 설정을 선보인다. 면접마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던 취업준비생 이서(정이서)는 대기업 문팰리스의 '메타버스유비쿼터스NFT디지털컨버젼스빅러닝빅데이터TF' 부서에 신입으로 입사하게 된다.
당찬 포부를 품고 첫 출근을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원칙과 업무 지시에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이서가 일하는 부서 사람들은 다른 직원들과 달리 23층에 위치한 사무실을 매일 계단으로만 올라야 하고, 종일 빈 종이에 무수한 동그라미를 지웠다가 지우고 다른 모양을 그려 넣는 단순 노동을 한다.
이서는 그래도 신입 월급을 600만원이나 준다는 사실에 만족해하며 매일 무의미한 업무를 반복하지만, '있어 보이는' 단어를 조합해 만든 부서가 사실은 사장의 장난이고, 회사 사람들이 그들의 의미 없는 일과를 관찰하며 킬킬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만화가로 데뷔하기 전에 대기업에서 5년 정도 일했다는 김 작가는 "작품에 대한 영감은 항상 제 경험에서 얻는다"며 "'모래 위의 춤' 편에서는 제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녹였다"고 말했다.
"당시 직장 생활을 하면서 큰 회의감과 이상과의 괴리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선배들한테 이런 감정에 대해 털어놓으면 늘 '다른 회사도 의미 없는 일을 하기는 마찬가지'라며 '그래도 우리는 돈은 많이 받잖아'라는 답이 돌아왔죠. 그때의 경험과 감정들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냈습니다."
부서의 실체를 알게 된 이서는 '업무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더이상 일할 수 없다'며 다음날 바로 회사에 퇴사를 고하는데, 그때 사장이 나타나 이서에게 "돈이 이유고 의미"라고 일침을 날린다.
김 작가는 "'돈이 전부'라는 사장 앞에서 '나는 사람이다'고 맞받아치는 이서의 대사는 제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너무나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짚었다.
"사막에도 오아시스는 있어요. 작품을 통해 '돈이 다'라는 시니컬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게 아녜요. 돈, 비인간성, 절망을 의미하는 '사막의 왕'을 막기 위해서는 그 반대로만 하면 돼요. 돈보다는 가치와 의미를, 비인간적인 사회에서 인간성을 좇으면서 말이에요."
'사막의 왕'에는 탄탄한 연기력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양동근, 김재화, 진구 등이 출연해 극의 완성도를 높이기도 했다.
이날 화상으로 만난 양동근은 "2002년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이후로 20년 만에 제가 연기한 걸 보면서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연기에 혼신을 다 하고 싶을 만큼 제 상황과 잘 맞는 캐릭터와 대본이었다"며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 하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동근은 '사막의 왕'에서 이서의 옆자리 사수 동현을 연기한다.
동현은 극 초반 이서에게 "이 일을 도대체 왜 하는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회사 생활 못 한다"며 "연극을 한다고 생각하라"고 담담하게 조언을 건네는 캐릭터다.
그런 동현은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해 살 시간이 12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길로 곧장 딸을 찾아가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낸다.
아이 셋의 아빠라는 양동근은 "비슷한 상황에서 아빠들이라면 모두 아이들이랑 많이 못 놀아줬다는 아쉬움이 들 것"이라며 "남들이 보기에는 동현이 회사에서 아무 의미 없는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동현은 아빠로서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했던 것"이라고 짚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영혼을 팔고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 다들 한 번씩 해보잖아요? 동현은 다른 이유 없이 오직 딸을 위해 일 하는 인물이에요. 저도 비슷해요. 제 삶의 전성기인 것처럼 일이 많아서 감사하지만 쉬면서 애들이랑 놀고 싶기도 해요. 대본 안에 그려진 동현의 모습에서 저를 봤고, 너무 반가웠습니다."
co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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