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인플루언서 등 일반인 얼굴·음성 마음대로 쓰면 안 된다···‘퍼블리시티권’ 입법예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다. 가족의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 화장품의 사용 후기, 음식 해먹기, 고민 상담, 정치 평론까지 수백만명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인플루언서들은 직접 출연한 영상을 스스로 만들어 올려 수익을 얻는다.
법무부가 이처럼 자신의 이름과 얼굴, 목소리 등에 대한 영리적 이용을 개인의 권리로 민법에 명시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이른바 ‘퍼블리시티권’을 처음으로 법에 명문화하는 것으로, 제도가 도입되면 이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은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
법무부는 26일 인격표지영리권를 신설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인격표지영리권은 사람이 성명·초상·음성 등 자신을 특징짓는 요소를 영리적으로 이용할 권리로, 미국 등에서 퍼블리시티권으로 불린다. 노래나 문학작품과 같은 창작물이 아니라 사람의 인격표지 자체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저작권과 다르다.
인격표지영리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은 아직 없다. 퍼블리시티권을 언급한 판결은 1990년대부터 종종 나왔다. 2005년 9월 방송인 정준하씨의 얼굴을 형상화한 캐릭터를 무단 사용한 업체 사건에서 법원이 퍼블리티시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주로 연예인을 중심으로 소송이 제기됐는데, 사안에 따라 손배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도 나오는 등 일관된 기준이 없었다.
2020년 3월 대법원은 방탄소년단(BTS) 소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멤버들 동의없이 포토카드와 화보집 등 굿즈 제작·판매를 하지 말아달라며 한 업체를 상대로 낸 법원에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빅히트 손을 들어줬다. 인격표지영리권을 인정한 것이라는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대법원은 업체 행위가 부정경쟁방지법상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판결도 개인의 권리로써 인격표지영리권을 선언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6월부터 시행된 개정 부정경쟁방지법은 인격표지를 무단 사용하면 부정경쟁행위로 본다는 규정을 담고 있는데, 이 규정은 ‘국내에 널리 인식되고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 즉 유명인에게만 적용된다.
법무부의 이번 민법 개정안은 유명한지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개인들의 보편적 권리로써 인격표지영리권을 명문화한 것이 핵심이다. 그런 권리가 존재한다는 점을 명시했고, 해당 권리의 귀속이나 상속이 어떻게 되는지, 권리 침해시 구제수단이 어떻게 되는지 규정했다.
민법상 권리로 인정한다는 것은 이 권리가 침해됐을 때 침해한 사람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무부는 그동안 법원에서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대체로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위자료)이었는데, 개정안이 시행되면 재산상 손해에 대한 배상도 인정될 여지가 커진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은 인격표지영리권 자체는 양도할 수 없다고 보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인격표지의 영리적 이용을 허락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인격표지영리권자 본인의 신념에 반하는 등 중대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 이용허락을 철회할 수 있도록 했다.
인격표지영리권자가 사망한 때는 권리가 당연히 소멸하는 게 아니라 다른 재산권처럼 상속된다고 규정했다. 인격표지영리권의 상속 후 존속기간은 30년이다. 법무부는 30년이 한 세대에 해당하는 기간으로서 어떤 사람의 명성이나 유명세가 희박해지고 그 인격표지에 대한 영리적 권리가 소멸하는데 충분한 시간임을 감안한 것이라고 했다. 개정안은 인격표지영리권이 침해된 경우 사후적 손해배상 청구권만으로는 권리 구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보고, 현재 진행 중인 침해를 제거하거나 사전적으로 침해 예방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도 규정했다.
다만 인격표지영리권 침해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아직 명확치 않다. 성대모사, 캐리커쳐 등을 활용한 패러디까지 인격표지영리권 침해라고 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성대모사와 캐리커쳐 등은) 경계에 있는 것들이라 침해에 해당된다고 (단정해) 말하기 어렵다. 사안에 따라 여러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를 반영해 ‘정당한 이익이 있는 사람’은 개인의 허락 없이도 합리적인 범위에서 인격표지를 영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스포츠경기 생중계 중 일반 관중의 얼굴이 화면에 나오거나 언론 보도, 다큐멘터리에 시민의 인터뷰가 사용된 경우를 예로 들었다.
법무부는 입법예고 기간인 내년 2월6일까지 시민들 의견을 수렴한 뒤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등을 거쳐 국회에 최종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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