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 사설] 윤석열 정부 언론 대응 쪼잔하거나 비겁하거나

미디어오늘 2022. 12. 2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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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1382호 사설

[미디어오늘 미디어오늘]

마음 쓰는 폭이 좁다라는 뜻으로 쪼잔하다라는 말이 있다. 2022년 윤석열 정부의 언론 대응을 총결산하면 쪼잔하다라는 평이 따라붙는다. 상식적으로 잘 이해되지 못한 측면이 대언론 관계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국민 소통은 곧 언론과의 관계인데도 언론을 적으로 몰아세워놓고 과도하게 대응하면서 언론탄압 양상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언론의 권력 감시와 비판을 정치적 비난 공세 혹은 끌어내리기 수준의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대응은 정당하다고 설파하고 있다. 그런데 갈수록 윤석열 정부의 독선과 아집이 도드라진다.

대표적인 게 MBC 문제다. '바이든' '날리면' 자막 문제로 시작해 대통령 순방기 탑승 배제 조치까지 내놓더니 대통령 동선을 취재하는 풀취재단조차도 별 설명없이 배제시키고 있다. 대통령 심기를 건드렸던 대가인지 몰라도 이렇게까지 해야되나 싶을 정도다.

▲ 윤석열 대통령이 9월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뒤 행사장을 나오면서 막말을 한 장면이 포착됐다. 사진=MBC뉴스 영상 갈무리

대통령실 언론관이 이런 정도니 여권도 뒤따른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을 비아냥거리고, 집권 여당을 시도 때도 없이 공격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수를 대변하는 패널이냐”라고 하더니 방송사에 패널 공정 및 균형에 문제를 제기하는 공문을 보냈다.

'입맛이 맞지 않은 의견'을 가진 패널이 있다면서 공개적으로 패널 재선정 요청을 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방송사 입장에선 충분히 압박을 느낄 수 있고, 방송제작 자율성 측면에서 방송법 4조를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엔 되레 언론중재위 제소를 운운하며 윽박질렀다.

[관련기사 : 국민의힘 “시사 프로 패널 균형 맞춰라” 방송사에 보낸 공문 파문]

2016년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시절에도 비슷했다.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보도국장에게 전화해 비판 기사를 빼라고 지시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었는데도 두달 뒤에 이 수석을 당 대표로 선출했던 게 새누리당이었다. 방송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당하고 수사를 앞둔 사람을 집권당 대표로 선출하는 기이한 모습을 연출했는데 결국 이 수석은 대법원에서 방송편성에 대한 직간접 간섭이라며 방송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수석은 자신의 행위는 왜곡 보도에 대한 의견 개진 및 비판에 해당하고 방송법 제4조 2항(심판대상조항)은 기본권 침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조항이 달성하고자 하는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공익”이 크다고 봤다. 소위 이정현 판결은 방송편성에 대한 간섭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판례를 남겼고, 최근 국민의힘의 방송 패널 재선정 요청도 해당 판례에 따라 법률 위반일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인데도 적반하장식 강경 대응에 나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 그리고 로펌 변호사들이 술자리를 가졌다고 보도한 더탐사에 대한 대응도 과도하다. 언론 보도에 문제가 있다면 충분히 근거를 제시하고 반박하면 될 일을 무려 세차례에 걸쳐 더탐사 대표 기자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은 누가봐도 정상이 아니다.

▲ 12월7일 오후 더탐사 사무실 압수수색 현장. 사진=더탐사 유튜브 영상 갈무리

더욱 문제인 것은 우리 언론 역시 윤석열 정부의 언론관 및 대응에 빨간불이 감지됐는데도 너무도 조용하다는 것이다. 정권 출범 후 대국민 소통 방안으로 주목했던 도어스테핑(출근길 질의응답)이 소리없이 사라졌는데도 반발은커녕 폐지 배경을 이해한다는 듯한 보도가 나온다.

도어스테핑 접고 대국민 직접 소통을 나섰다는 요지의 보도는 스스로 모순임을 드러낸다. 출근길 질의응답은 이전 정권에서 찾아볼 수 없고 대통령의 입장과 생각을 파악할 수 있는 소통의 정점이라고 호평하더니 이젠 도어스테핑과 대국민 직접 소통을 분리해 마치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참모 뒤에 숨지 않겠다”거나 “언론과의 소통이 궁극적으로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말을 뒤집은 것인데도 도어스테핑 중단이 오히려 대국민 직접 소통 강화로 이어진다는 신박한 논리를 제공하고 대통령실 입장에 수긍하는 게 우리 언론 보도의 수준이다.

▲ 11월18일 용산대통령실에서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윤 대통령은 이날을 끝으로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중단했다. 사진=대통령실

인수위 시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5년 임기 동안 기자실을 100회 이상 찾았다고 한다” “청사 마련해서 가면 구내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저녁에 한번 양 많이 끓여서 같이 한번 먹자”라고 했던 대통령 말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기자들과의 소통 의지를 치켜세웠던 언론인데 말이다. 하다못해 도어스테핑 재개 요청 뜻을 모아 전달할 수도 있을 터인데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은 말이 없다.

대통령실은 정권 출범 새해 전통으로 굳어진 신년기자회견을 하지 않고 대국민 메시지 생중계 방안을 검토 중이다. 출입기자단은 적어도 기자회견 패싱에 대한 입장을 내놔야 할 것이다. 2022년 1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코로나 확산을 이유로 신년 기자회견을 취소하자 조선일보는 “지금까지 궁색한 저치에 몰리면 국민 앞에 나와 허심탄회하게 사실을 밝히고 이해를 구하는 대신 뒤로 숨어 모른 척해왔다. 임기 마지막까지 그런 비겁한 행태를 조금도 바꾸지 않고 있다”고 했다. 현재도 똑같다. 윤석열 정부는 대국민 직접 소통이라는 허울 좋은 말 뒤에 숨어있다. 쪼잔하거나 비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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