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편가르기땐 세계 GDP 5% 감소 … 다자주의 강화해야"

백상경 기자(babsang@mk.co.kr) 2022. 12. 2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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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I 주최 '제15회 세계정책콘퍼런스'
미중 갈등속 정부 보조금 늘고
공급망·에너지 등 무역정책도
안보기반 '동맹 간 블록화' 추세
국제 자유무역체제 붕괴 우려
양극단의 시대로 회귀 막아야
지난 9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개최된 제15회 세계정책콘퍼런스 '파편화된 세계에서의 지리경제학과 개발' 세션에서 참가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마수드 아메드 글로벌개발센터(CGD) 센터장, 베르트랑 바드레 블루 라이크 언 오렌지 서스테이너블캐피털 최고경영자, 제프리 프리든 미국 하버드대 행정학 교수,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빈센트 코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검토국 부국장, 장마리 포감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차장, 아미나타 투레 세네갈 국회의원. <백상경 기자>

"냉전과 같은 '양극단의 시대'로 회귀하려는 흐름을 막고, 다자주의에 기반한 '연대와 협력'의 국제 질서를 재정립해야 한다."

글로벌 오피니언 리더들이 세계 경제의 파편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을 내놨다. 미·중 갈등과 코로나19 팬데믹이 촉발한 글로벌 파편화 현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전방위 봉쇄 등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공급망이나 에너지 등 주요 무역부문의 정책 초점도 '적시 수급(Just In Time)'에서 '위기 대응(Just In Case)', 나아가 안보에 기반한 '동맹 간의 블록화'로 이동 중이다.

이에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와 세계무역기구(WTO)로 대변됐던 국제 자유무역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시기일수록 연대와 협력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세계 경제의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선 열린 세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다자주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달 9~11일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 주최로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세인트레지스 사디얏 아일랜드 리조트에서 개최된 '제15회 세계정책콘퍼런스(WPC)'에서는 세계 공급망 분절과 경제 블록화 현상을 두고 치열한 논의가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공급망의 비교우위를 가져오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장마리 포감 WTO 사무차장은 미국의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처럼 '산업 정책에 기반한 전략적 무역정책의 귀환'이 이뤄지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정부 보조금 수준이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포감 사무차장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두 개의 블록으로 분절화할 경우 장기적으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은 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며 "이 같은 추세가 결과적으로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 유럽과 러시아 간 디커플링(탈동조화) 추세나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글로벌 넷제로(온실가스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 정책 등으로 국제사회가 복잡한 변화를 겪을 수 있다고 봤다.

한국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도 "중국이 특정 분야에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점을 비판해온 미국 마저 반도체법 등을 통해 산업 정책을 부활시키고 있다"며 "미국, 나아가 EU를 포함한 대부분 주요 국가에서 산업 보조금 경쟁이 촉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같은 흐름이 근본적으로 "WTO 체제하의 산업 보조금 규칙을 개혁할 기회를 소멸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WTO의 다자간 무역 시스템강화가 이 같은 문제를 처리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제프리 프리든 미국 하버드대 행정학 교수는 "우리는 지속적인 고금리 기조, 그리고 선진국으로 자본을 다시 끌어들이는 경제·금융 상황에 직면했다"며 "선진국들이 전통적인 보호무역주의를 넘어 전염병, 국가안보 문제와 관련한 필수상품의 국내 생산을 시도해 우려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냉전의 광범위한 영향은 심각할 것이며, 개발도상국들의 발전 전망에 있어 매우 도전적인 시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리든 교수는 이 같은 상황에 변화를 줄 수 있는 OECD가 각국의 국내 정치와 지정학적 문제 때문에 빠르게 움직일 가능성도 낮다고 봤다. 이에 대해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를 지낸 존 립스키 존스홉킨스대 선임연구위원은 주요 20개국(G20) 등 국제기구를 통해 국가 간 연대를 강화하자는 해법을 내놓았다. 그는 "보호주의의 새로운 위험, 국제 금융시장의 효율성 하락을 피하기 위해선 거시경제·금융 정책 설정에 있어 보다 협력적이고 일관성 있는 다자간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국제 협의체와 국제기구 역할의 강화를 제안했다.

립스키 선임연구위원은 "협동적이고 일관성 있는 방식으로 적절한 경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G20 회의는 더욱 강력하고 효과적이어야 한다"며 "금융안정위원회(FSB)도 보다 효과적인 자본시장의 규칙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클로드 트리셰 전 유럽중앙은행(ECB) 의장도 "새로운 국제 질서가 필요하고, 그것은 양극화가 아닌 다극화 형태여야 한다"고 밝혔다.

WPC를 주최한 티에리 드 몽브리알 IFRI 소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불구하고 나는 EU 회원국 스스로가 자신들을 20세기 역사의 가장 어두운 순간으로 끌고 갈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며 "EU는 지역 통합을 통해 세계적으로 평화·번영·사회정의를 주도하는 역할을 더욱 잘해야 하고, 유럽 안보시스템의 재건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시장과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 세네갈 총리인 아미나타 투레 세네갈 국회의원은 "전 세계 이용 가능한 경작지의 60%를 보유하며 세계에서 가장 젊은 인구 구성을 가진 아프리카를 포함하지 않고는 미래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부다비/백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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