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가짜 이력으로 대우산업개발 CEO까지…‘두 얼굴’ 한재준의 실체
회사 자금 빼내 자신 명의로 한남동 고급빌라 두 채 구입…룸살롱 여성 임원 채용 시도도
비리 드러나자 회사 계좌 틀어막고 사적 인출…직원들은 ‘불안’
(시사저널=이민우 기자)
맥킨지 수석 컨설턴트와 코카콜라 브랜드 매니저를 거쳐 중국 부동산 재벌 펑화그룹에서 기획실장까지 지낸 인물이 있다. 2015년부터 대우산업개발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한재준씨다. 지금까지 그는 주택 브랜드 '이안(iaan)'과 '엑소디움(Exordium)' 등 대우산업개발의 6년 연속 흑자를 이끈 인물로 알려졌다. 덕분에 2021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2021 주택건설의 날' 산업포장을 받기도 했다. 주택건설 산업 발전에 공헌했다는 점을 인정받은 셈이다.
외면적으로 성공한 CEO의 모습으로 비춰지는 한씨의 실상은 달랐다. 애초부터 허위로 꾸며진 이력을 바탕으로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고, 회삿돈을 쌈짓돈처럼 썼다. 화류계 출신의 여성에게 고가의 수입차 페라리를 선물하고 회사 임원으로 채용까지 하려 했다. 모든 게 드러나자 짐을 싸서 대표실을 비웠던 그는 법적인 대표이사 신분을 내세워 회사 공인인증서를 바꾼 뒤 회사를 부도의 위기까지 몰아넣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지금부터 두 달여 간의 취재를 거쳐 수집된 증거를 바탕으로 한씨의 진짜 모습을 공개한다.
허위 이력 앞세워 오너에게 신뢰받았던 '비서실장'
한씨가 현재의 대우산업개발 오너인 이상영 회장을 만나게 된 건 2008년이다. 대우산업개발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이 회장은 과거 미국 유학을 마치고 중국에서 사업을 준비하며 '중국어에 능통하면서 경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필요했다. 한국 헤드헌트 업체로부터 소개를 받은 게 한씨였다. 한씨는 맥킨지 수석 컨설턴트, 코카콜라 브랜드 매니저 등의 이력을 앞세워 중국어까지 능통하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항공료까지 보내주며 한씨를 사적으로 고용했다.
한씨와 이 회장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한씨는 이 회장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송금 내역에 따르면, 중국으로 넘어가자마자 이 회장으로부터 매월 500만원을 받았다. 이후 금액이 커지더니 2014년 대우산업개발 인수로 한국에 넘어오기 직전 매월 3000만원을 이 회장으로부터 송금 받았다. 실제 시사저널이 이 회장에게 확인한 결과, 한씨는 이 회장으로부터 중국어에 능통하지는 않았지만 업무 처리에 있어서는 깔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씨가 다시 한국으로 넘어온 것은 이 회장이 신흥산업개발유한공사를 통해 대우산업개발을 인수하면서다. 대우그룹이 해체되고 대우자동차판매 건설사업부는 물적 분할을 통해 대우산업개발 주식회사가 됐고, 이후 이 회장 측에 인수됐다.
한씨는 이후 대우산업개발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이사회 구성도 한 대표의 측근들로 채워졌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유학 갔다가 중국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 등을 한 이 회장에게는 한국에 한씨만큼 신뢰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국내 70위권의 건설사 대표 자리에 오른 한씨는 이후 8년여 동안 정·관계 네트워크를 쌓기 시작했다. 전직 국회의원, 언론계 원로 등 한씨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씨는 자신을 '중국 고위 관료의 자제', '대우산업개발의 실소유주'라고 주장하며 환심을 샀다.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골프 접대를 하며 고가의 선물을 전달하기도 했다. 사실상 한국에서 한씨는 어느새 '중국 재벌을 등에 업고 국내 굴지의 건설사를 인수한 부호'로 알려졌다.
15년 가까이 숨겨 왔던 '두 얼굴'의 실체
그렇게 관객 모두를 속일 수 있었던 막장 드라마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은 올해 4월이다. 경찰이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는 대우산업개발에 압수수색을 벌이면서 이상 징후가 감지됐다. 회사 운영을 한씨에게 맡겼던 이 회장은 6월까지 한씨 몰래 내부 감사에 착수했다. 이 감사에서 한씨의 비리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회사 자금으로 수십억원에 달하는 고급빌라 두 채를 매입한 것이다. 한씨는 대여금 명목으로 회사 자금을 빼돌린 뒤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고급빌라를 구입했다. 수억원의 인테리어 공사 비용도 회사 비용으로 처리했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한남리버힐'의 203호와 204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한씨는 지난해 4월 76억원에 두 주택을 매입했다. 이사회조차 거치지 않고 회사 자금을 빌려 본인과 배우자 명의의 집을 산 뒤 수억원에 달하는 인테리어까지 회사 비용으로 충당했다.
감사 결과, 한씨는 협력업체의 공사원가를 부풀린 뒤 수억원의 현금을 돌려받기도 했다. 건설업계의 관행처럼 불리는 이른바 '백마진'을 남겨 개인 주머니로 현금을 받아 챙긴 셈이다. 가족들과 보름간 미국 여행을 간 뒤 1억원 넘는 돈을 '출장비' 명목으로 유용하기도 했다.
룸살롱 출신 여성 조아무개씨에게 3억원짜리 슈퍼카와 법인카드를 제공하기도 했다. 급기야 조씨를 마케팅 전문가로 포장해 회사 전무로 채용하려 하기도 했다. 지난 20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씨는 회삿돈으로 조씨에게 관계사 비용으로 리스한 자동차를 제공했다. 조씨에게 제공한 법인카드는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382만원이 사용됐다. 대부분 한남동과 청담동 고급 레스토랑, 쇼핑, 주유비 등으로 사용됐다. 급기야 조씨와 조씨 부친의 이력서를 허위로 꾸민 뒤 회사 임직원으로 채용하려 하기도 했다.
대우산업개발 핵심관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 같은 내용을 파악하고 한씨에게 조용히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한씨도 8월 말에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대표이사실에서 짐까지 싸서 나갔다. 9월초에는 긴급 이사회를 통해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갚아야 할 회사 자금이 부담이었나…회사 부도 내려는 대표이사
그렇게 막을 내릴 것만 같았던 연극은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자리에서 짐을 싸 나갔던 그는 몰래 회사에 들어가 법인계좌 OTP를 폐기하고 신규 발급받았다. 법인카드 상당수를 정지시키고 법인 인감까지 변경했다. 이사회의 대표이사 변경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기도 했다. 결국 한씨 측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이사회의 정족수 문제로 인해 가처분이 인용되면서 법적 대표 자리를 다시 회복했다.
이후 한씨의 행보는 대표이사라고 하기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법인 인감을 바꿔 신규 수주 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시작했다. 계좌 OTP를 바꾸는 바람에 하도급 대금 지급도 못하게 만들었다. 10월13일에는 건장한 체격의 남성 10여명을 대동하고 회사 사무실에 들어온 뒤 출입카드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씨는 회사 기업은행 계좌 잔액을 무단으로 이체했다. 11월10일에는 회사 계좌에서 1억5000만원을 본인 계좌로 이체했다. 같은달 16일에는 본인의 변호사 비용으로 1억7000만원을 변호사에게 이체했다. 대우산업개발에 따르면, 한씨가 무단으로 인출한 회삿돈만 무려 7억6700만원에 달한다.
한편 시사저널은 이 같은 내용에 대해 한씨의 답변을 듣고자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한씨는 구체적인 질문을 받지 않은 채 자신의 변호사와 이야기할 것을 요구했다. 한씨가 연결해 준 김아무개 변호사는 수차례 전화와 문자메시지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기자수첩] 제보자로 찾아왔던 한재준의 이면을 공개하기까지
한재준씨는 올해 9월 이후 언론사를 찾아다니며 이상영 대우산업개발 회장에 대한 악의적인 제보를 이어갔다. 시사저널도 여기에 포함됐다. 지난 10월 한재준씨는 이상영 대우산업개발 회장의 비리를 제보하겠다며 시사저널 기자와 접촉했다. 당시 대우산업개발의 대표이사 신분으로 내부자에 속하는 한씨의 제보는 결정적이라고 판단했다. 한씨의 주장, 그가 내민 증거 등을 바탕으로 기사를 써내려 갔다. 그리고 이 회장 측에 반론을 요구했다.
하지만 시사저널은 이 회장으로부터 해명을 듣는 과정에서 한씨 진술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음을 파악했다. '대우산업개발의 실소유주'였다는 한씨의 주장은 이 회장과 한씨 당사자의 녹취록을 통해 허위로 확인됐다. 2주 내로 이 회장이 구속될 것이라며 기사화를 독촉한 그의 주장도 결국 거짓으로 드러났다. 대여금과 법인카드 유용 문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회장은 대여금 문제에 대해서도 "8년 동안 배당 한 푼 받지 않고 대여금을 썼고, 상당수 갚았다"는 내용을 입증했다. 법인카드 실사용자 등을 증빙하기도 했다. 반대로 이 회장에 대한 제보 내용의 상당수가 본인의 행동과 유사하다는 점을 파악했다.
반대로 제보자였던 한씨의 비위 의혹은 커져만 갔다. 기사를 보류한 이후 두 달여 동안 이 회장을 비롯한 대우산업개발 임직원들을 만났다. 그리고 하나씩 확인 절차에 들어갔다. 그 결과, 한씨의 이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맥킨지로부터 한씨가 근무한 적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미국 코카콜라에서도 근무한 적도 없었다. 한국 코카콜라로부터 마케팅 부서에서 2000년 6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임시직인 판촉 사원으로 근무했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시사저널이 만난 대우산업개발 직원들은 하루하루 불안에 떨고 있다. 매월 돌아오는 기업 어음을 갚지 못해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걱정에 휩싸여있다. 법적인 허점을 노려 대표이사 신분을 되찾아 계좌 OTP와 법인 인감을 교체한 뒤 어음은 갚지 않고 회사 현금자금을 개인적으로 인출하고 있는 대표이사의 기행을 멈춰 대우산업개발 직원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당국의 엄정한 수사와 법의 신속한 집행을 통해 대우산업개발의 정상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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