勞, 정권 바뀔때마다 전면전···정부는 票心에 휘둘려 양보 일관
1부 : 노동개혁 30년, 퇴로 없다 <1> YS서 文까지···노동개혁 왜 실패했나
강경투쟁에 정부 원칙 대신 타협
정치권 결단 부족···개혁시기 놓쳐
노동계 설득할 '협상카드'도 부재
"개헌보다 노동개혁이 더 어려워"
외환위기 직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1998년 2월 민주노총이 참여한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해 3주 만에 90개 항목에 달하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정리해고와 파견제, 고용 안정과 실업 대책, 사회안전망 확충 방안 등 노동시장에 대한 광범위한 개혁 작업이 처음으로 이뤄졌다. 기대감도 높았고 개혁의 적기였다. 하지만 합의 직후 정리해고제 등을 놓고 민주노총은 극심한 내부 갈등을 겪다 결국 노사정위를 탈퇴하는 강수를 뒀다. 민주노총의 합의 트라우마는 새 정부가 노동 개혁을 추진할 때마다 정권과의 전면전을 택하는 계기가 됐다. 집권 초기에 원칙론을 고수했던 집권 세력도 전국 단위의 선거를 앞두고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노동 개혁은 헌법 개정보다 더 어렵다는 격언이 정치권에서 생겨난 배경이다.
김영삼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노동 개혁은 대체로 ‘유연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진보와 보수 모두 공감대를 이룬 사안인 만큼 지난 30년 동안 때때로 골든타임이 찾아왔고 일부는 당초 목표보다 축소돼 관철되기는 했지만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문가들은 집권 세력이 양대 노조라는 거대 세력에 대항할 정치적 의지와 정교한 협상 전략이 부족했다고 진단한다.
김영삼 정부는 1996년 노동계, 재계, 공익 및 학계 대표들이 참석하는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등 노동 개혁의 첫발을 뗐다.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에 반대 입장이었던 민주노총이 한 달여간 관련 회의에 불참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이어가면서 합의안은 도출되지 못했고 여당은 그해 12월 26일 노동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민주노총은 정치투쟁으로 맞섰다. 12월 10만 명으로 시작한 파업 규모는 이듬해 1월 30만 명 수준으로 불어났다. 노조의 실력 행사에 김 전 대통령은 결국 노동법 재개정을 지시했다. 그 결과 복수 노조는 허용되고 정리해고제는 2년 유예됐다.
노동계와 인연이 깊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노조의 세(勢) 과시에 속수무책이었다. 집권 초 비정규직보호법(비정규직을 2년 이상 채용할 경우 정규직 전환을 의무화)을 추진하자 양대 노총은 각종 노동 관련 위원회에서 탈퇴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고 민주노총은 총파업까지 선언하며 정치투쟁에 돌입했다. 2004년에는 파견 근로 대상 전면 확대와 파견 및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방안도 추진됐지만 노동계의 반대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기 탄탄한 지지율에 힘입어 속도전에 돌입한 결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조금이나마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저성과자의 해고를 쉽게 하는 ‘공정 인사 지침’과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성과연봉제나 역할·직무급제로 개편하도록 한 ‘취업 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 등 이른바 양대 지침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치적 결단력 부족 등으로 노조를 개혁할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기도 했다. 2013년 12월 철도노조는 22일의 장기간 불법 파업을 벌였다. 수서발 KTX 운영 회사의 분리 방침 철회가 파업의 이유였다. 많은 국민들은 큰 불편을 느꼈고 노조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날로 높아졌지만 집권 세력은 원칙 대신 유화책을 택했다.
현 여권 관계자는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차기 주자로 꼽히던 김무성 의원과 박기춘 민주당 사무총장의 중재로 억지성 파업 사태가 막을 내렸다”면서 “반년도 남지 않은 지방선거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던 탓에 우리나라 노사 관계가 몇 발짝 후퇴했다. 정치권이 개입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의해 처리했더라면 철도노조가 그 후로 억지성 불법 파업을 더 이상 벌이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내부적으로 정교한 추진 계획이 없었던 점도 문제였다. 17년 만에 이뤄낸 정치적 성과(9·15 합의)를 스스로 허무는 우를 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한 인사는 “노사가 합의할 수 있는 경계선까지 밀어붙였던 게 9·15 노사정 합의(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인데 여당 쪽에서 ‘한걸음만 더 나아가자’고 욕심을 내면서 와르르 무너졌다”며 “노사정이 타협하기로 했다면 어느 정도 이상은 무리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합의 다음 날 당정청이 모여 양대 지침(저성과자 해고, 취업 규칙 변경 완화)을 연말까지 발표하겠다는 무리수를 두면서 합의가 엎어졌다”고 설명했다.
역대 정부가 안정적인 노사 관계를 달성하기 위해 ‘법과 질서 확립’보다 사회적 협약을 중시한 것도 화근이 됐다는 분석이다. 김영삼 정부는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노무현·박근혜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각각 합의안을 도출하려 했다. 최영기 한림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노동 개혁이 실패한 원인 중 하나는 개혁 의제와 방법의 심각한 불일치에 있다”며 “역대 정부는 노동계의 저항을 무릅쓰고 제대로 노동 개혁을 할 것이냐, 아니면 타협의 방법을 모색할 것이냐를 선택해야 했는데 모두 타협의 방법을 택했다”고 지적했다. 노동시장 유연화는 전자의 방법으로 접근하고 임금·근로시간 문제는 후자의 방법으로 다루는 전략적 노련함이 필요했다고 최 교수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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