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성가 열전]① 새우젓 떼다 팔던 청년, 40년 뒤 연매출 1000억대 ‘반찬왕’으로 우뚝

이현승 기자 2022. 12. 2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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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품질·지속성·위생관리’ 강조하는 우성명 반찬단지 회장
깻잎무침·무말랭이무침 등 밥도둑 팔아 연매출 1000억 돌파
가락시장부터 식자재마트, 쿠팡, 치킨집까지 거래
“美 LA 진출 계획… 베트남·태국도 공략”

마산에서 정미소를 설립한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 점원으로 일했던 쌀가게를 물려받아 사업을 시작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시판 중인 껌을 모조리 씹어보고 개발해 일본 시장을 공략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이들은 대한민국의 산업을 일군 자수성가형 창업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시대에도 꿋꿋하게 사업의 본질을 파고들어 당당히 한국 경제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인들을 소개한다.[편집자주]

한국에 여행 온 서양인들이 신기해하는 식문화 중 하나는 다양한 ‘반찬’이다. 오래전부터 반상(飯床·밥과 반찬으로 상차림을 구성) 문화가 발달한 탓에 한국인들은 밥 한공기에 2~3개의 반찬을 즐겨 먹는다. 삼시세끼 같은 반찬을 먹을 순 없으니 여러 식재료를 절이고 무치고 조린 끝에 수백가지의 반찬이 한국인의 밥상에 오르게 됐다.

1983년 설립된 ㈜반찬단지는 원·부자재도 다르고 생산공정도 제각각인 600여개 반찬을 전부 취급하는 국내 몇 안되는 회사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반찬 대다수가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국가에서 완제품으로 제조된 뒤 수입된다. 반찬단지는 밥도둑이라 불리는 깻잎무침·무말랭이무침·땅콩조림·오징어젓·꼴뚜기젓 5대 반찬 수입량의 20% 이상을 담당한다. 가장 판매량이 많은 무말랭이무침은 연간 2400톤, 깻잎무침은 1680톤을 수입한다.

지난달 20일 오후 인천 서구 반찬단지 본사에서 우성명 반찬단지 회장이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장련성 기자

비싼 젓갈류나 김치를 제외하고 1㎏당 1만원이 안되는 반찬을 팔아 연 매출이 2021년 1000억원을 돌파했고 작년에는 1200억원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가락시장·경기 구리시장 같은 동네시장부터 항구 근처에 있는 젓갈 전문 매장, 동네 식자재마트, 치킨집의 치킨무, 횟집의 락교, 중국집 자차이(榨菜, 짜사이 라고도 부른다), 죽 전문점의 메추리알 장조림과 무말랭이까지. 우리가 반찬을 사먹는 거의 모든 채널이 반찬단지의 거래처다.

우성명(54) 반찬단지 회장 가족이 반찬 사업에 뛰어든 1980년대 초반은 오징어젓까지 집에서 만들어먹던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젓갈공장이 들어선 시기다. 충남 부여에서 인천으로 이사한 우 회장의 모친은 생계를 위해 젓갈 도매업을 시작했다. 말이 도매업이지 가게도 없이 공장에서 젓갈을 사다가 시장에서 파는 일이었다. 배송도 직접 했다. 어머니 일을 조금씩 돕던 20대 아들은 군대를 다녀와 교통사고를 당한 어머니의 뒤를 이어 1989년부터 사업을 넘겨 받았다. 인천 서구에 있는 가정집 냉장고와 작은 픽업트럭이 사업 밑천의 전부였다.

동생과 함께 새벽에 픽업트럭을 몰고 인천 장봉도, 동검도에서 새우젓을 사다가 인근 시장에 팔면 2~3배가 남았다. 돈 버는 재미에 365일 중 이틀만 쉬어도 힘든 줄 몰랐다. 30여년 간 판매하는 반찬 가짓 수와 거래처를 늘리고, 도매를 넘어 직접 생산까지 뛰어들어 회사 규모를 확장했다. 이제는 인천 서구 북항로에 1만686㎡(3233평) 규모의 본사와 물류센터를 비롯해 국내와 해외에 제조공장을 둔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래픽=손민균

연 매출 150억~200억원이었던 회사 규모가 두배로 성장한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였다. 미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달러에 960원에서 1300원으로 급등하며 해외 거래처에 결제를 하면 할수록 환차손이 커지는 상황이었다. 많은 식품사가 거래를 포기할 때 우 회장은 “몇년 간 동거동락한 사람들이 망하는 걸 볼 수 없다”며 석달 간 5억~6억원의 손실을 감수하고 거래를 이어가 대금을 결제했다. 위기가 지난 뒤 거래처들은 “반찬단지는 일단 따지지 말고 물건을 줘라”라고 할 정도로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번 거래한 회사와는 웬만하선 관계를 깨지 않는다.

우 회장은 ‘종합 식품 메이커’를 꿈꾼다. 중국에서 반찬을 만든다고 하면 소비자가 가지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원부재료를 한국에서 수입하거나 현지에서 가장 좋은 A급으로 조달한다. 액젓은 직접 담그고 고춧가루도 빻아 만들어 쓴다. ‘좋은 물건은 싼게 없고 싼 물건은 절대 비싸게 팔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거래처가 언제든지 원하는 물량을 가져갈 수 있도록 원부자재를 연중 상시 확보하고, 내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제조공장의 위생관리를 철저히 한다. 중국 생산공장은 2013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우수 인증을 받았다.

반찬단지는 K푸드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발판으로 해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우 회장은 “미국 뉴욕은 중간판매사를 통해 H마트 등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로스앤젤레스(LA)에 새롭게 진출할 계획”이라며 “베트남은 편의점에서 반찬 판매를 하고 있고 방콕은 신규 진출을 타진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인천 서구 반찬단지 본사에서 우 회장을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동네시장부터 식자재마트·프랜차이즈·쿠팡 등 온오프라인 반찬 납품 ‘섭렵’

-1983년 ‘부여상사’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1979년에 가족이 충남 부여군 임천면에서 인천으로 이사를 갔다. 아버님은 배운 게 없어 막노동을 했고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장사를 했다. 1983년 국내에 처음으로 젓갈공장이 두 군데(안양 신선식품, 부천 충남식품) 생기자 사업성이 있겠다고 판단해 도매업을 시작했다. 가게도 없이 물건을 떼다가 택시로 인천 송림·현대·부흥시장 같은 곳에 팔았다.

1985년 대학에 들어간 후 어머니 일을 돕기 시작했고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몸이 안 좋아진 1989년부터는 동생과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픽업트럭을 사다가 2000년대 초반까지 365일 중 추석, 구정 이틀 쉬고 일을 했다. 인천 강화 수협에서 경매로 넘어가기 전 새우젓을 한 차씩 수거해다가 캔에 넣어 시장에 팔았다. 2~3배가 남아서 돈 버는 재미가 있었다.”

-150억~200억원 규모였던 연 매출이 1000억원 이상으로 성장하는 데 주효했던 시기는.

“금융위기 때 미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960~970원에서 1300원까지 오르면서 중국에 나가있던 기업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역대금 1억원을 결제하면 3000만원을 환차손 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몇년 간 동거동락한 사람들이 망하는 걸 못 보겠어서 환차손을 5억 이상 보고도 미루지 않고 결제대금을 댔다.

이때를 기점으로 매출이 500억원까지 쭉 올랐다. 결제대금을 미루지 않고 지급한 업체들과 신뢰가 쌓여 반찬단지가 발주를 내면 묻지 않고 무조건 물건을 보낸 뒤 판매 후 결제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반찬을 만드는 회사는 많다. 요즘엔 대기업, 스타트업도 뛰어든다. 반찬단지 만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첫번째,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물까지 완전 정수를 하고 부재료는 국내 대기업 제품을 수입해서 쓰거나 현지 제조공장에서 A급 원재료를 사다가 직접 만든다. 두번째는 지속성이다. 반찬 중에 원재료가 특정 계절에만 나오는 계절상품이 많다. 예컨대 깻잎은 6~7월에 수확하고 낙지는 9~11월, 꼴뚜기는 8~9월이다. 그때그때 가장 좋은 품질의 원물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마지막은 위생관리다. 우리 제조공장에 아무때나 가도 위생관리가 잘돼 있을거라고 자신한다.”

-매출을 구성하는 주요 거래처는 어디가 있나.

“30%는 로컬시장 쪽에서 나온다. 농산물 시장, 재래시장과 항구 근처 특화된 젓갈시장에서 많이 팔린다. 세계로마트 같은 식자재 마트에서 20%의 매출이 발생한다. 다음으로 프랜차이즈 매장에 납품을 많이 한다. 쿠팡의 자체 브랜드(PB) 곰곰 반찬을 만들기도 하고 우리 로고가 박힌 제품을 팔기도 한다. 사실 거래처가 워낙 많아 어디인지 전부 기억하진 못한다.”

우성명 반찬단지 회장이 이끄는 (주)반찬단지는 인천 서구 북항로에 1만686㎡(3233평) 규모의 본사와 물류센터를 비롯해 국내와 해외에 제조공장을 두고 있다./장련성 기자

-반찬 시장의 성장세가 계속될까.

“이제 집에서 반찬을 안 해먹는다. 옛날에는 김장을 가족 단위로 모여서 했지만 이제는 절인 배추와 양념을 사서 하는 시늉만 한다. 직접 해먹으면 가격도 비싸고 맛도 잘 안난다.”

-국내 반찬 트렌드가 바뀌고 있나.

“최근에 개발해 일부 지역에 시험 출시한 마라맛 시리즈가 굉장히 잘 나간다. 젊은층이 맵고 자극적인 맛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다.”

-K푸드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다. 수출 실적에 영향을 주고 있나.

“미국 뉴욕은 중간판매사를 통해 H마트 등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로스앤젤레스(LA)에 새롭게 진출할 계획이다. LA에서 제품을 팔기 시작하면 미 서부에서 확장하기가 쉽다. 베트남은 편의점을 통해 반찬 판매를 하고 있고 방콕은 신규 진출을 타진 중이다.”

-작년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기부하거나 5년 내 1억원 이상 기부를 약정하며 가입 가능한 개인 고액 기부자 클럽)에 가입하고 소외이웃에 반찬을 기부하는 등 나눔을 계속하고 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갑질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회사가 어떻게 되든 간에 상생을 항상 염두에 두고, 거래처와도 특별한 결격 사유가 생기지 않는 한은 거래관계를 끊지 않는다. 직원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가장 오래된 거래처는 얼마나 됐나.

“20~30년 된 거래처가 많다. 아들이 회사에서 반찬 제조, 물류센터를 거쳐 영업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부천에 있는 반찬가게에 영업차 방문한 적이 있는데, 30년 전부터 가게를 해온 사장님이 아들을 보고 ‘우 회장 아들 맞냐’며 반가워하면서 밥을 사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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