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완하기 쉽고 가변성 높은 의료의 틀이 필요하다[시론]
글·조한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학)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문케어’가 의료낭비를 조장하여 의료보험 재정을 약화시켰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소아청소년과와 흉부외과 등의 폐과 위기, 의대증설, 간호사법, 원격의료 등등 의료 문제를 두고 정부, 의료계, 시민단체 사이에 열띤 논쟁이 진행 중이다.
의료 행위는 인간 각자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을 대상으로 행해지고 정답이 분명하지 않은 의문으로 시작되어 여러 직종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다단계 의사결정과정을 거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난제들의 복합체이다. 따라서 의료 행위는 어떤 정책이나 제도로도 모든 상황을 만족스럽게 포용할 수가 없으니 논란과 분쟁이 끊이질 않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현재 우리 의학과 의료 수준이 선진국에 견줄만큼 된 것은 큰 틀에서 과학적 의료의 길을 걸어온 현명한 선택 덕분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 경제 문화적인 토양에 쉽게 정착할 수 없어 최근 까지도 시행착오 상태에서 헤매고 있는 의료인 양성제도(의전원, 전문의, 한의사 문제 등등)나 의료의 각 구성 요소들 사이의 엇박자(면허와 자격증의 모호성, 의료 보조 인력의 양성과 활용, 간호사법 문제 등등) 그리고 신 의료를 뒷받침 할 수 없는 후진 의료 산업 등으로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학적 의료에 바탕을 둔 의료 일원화를 선택하지 못한 것, 의료에 관여하는 직역들의 과도한 각개약진으로 통합되고 절제된 의료 행위에 장애를 줄 정도의 엇박자를 초래하고 있는 의료 인력 양성과 자격인증 제도, 의대에서 이공계 우수인력 거의 싹쓸이, 동맥경화증 같이 굳어버린 전문의 제도, 의료의 질 향상이란 미명하에 제도화 되고 있는 배타적 전문성 제고, 이로 인한 고비용 발생과 비효율적인 의료인력 활용 등등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깔고 앉아 있다. 이런 상태에서 의약분업, 전 국민 의료보험 도입, 노인 인구 증가, IT 기술의 활용과 신 의료기술의 폭발적 증가 등등이 얹혀 어려움을 가중시켜 2000년의 의료 대란과 2014년의 의사 파업 그리고 2018년 의사들의 대규모 집회 등등이 일어났다.
이런 내재된 문제점들을 키운 데는 보건 당국의 나약함도 한 몫 했다. 장기적인 국가적 목표를 가지고 일관성 있게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해 왔어야 되는데 비과학적인 의료까지 선심성으로 방치시키는 등 종적인 팽창만을 업적이라 착각하여 뒤틀린 의료 행태를 조장하고 보험 재정을 낭비하면서 정작 의료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의 공급에는 손을 놓아 결과적으로 필수 분야들(소아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이 소멸 지경에 이르도록 문제를 키웠다.
의료제도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가능한 한 저비용으로 질병을 예방, 진단, 치료할 수 있는 양질의 보건의료제도를 운영하겠다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정부가 마련한 제도로는 의료의 질을 저하시키고 의료인의 회생을 강요하기 때문에 받아드릴 수 없다는 의사들의 주장도 의료현장의 실상이다. 정책 당국과 전문가 집단이 머리를 맞대고 개선해가야 하는데 지난 60여 년간 쌓여온 문제들을 현재의 의료 틀에서 땜질하는 수준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고 여건은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급격히 다가오고 있는 고령 사회를 마주해야하는 국민과 정부 의료계 모두가 고민이 깊어 질 수밖에 없다. 어려워도 근본 문제를 노출시키고 타격해야 할 시점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는 점차 악화되는 의료의 고비용 구조이다. 의료비는 의료 행위 종류, 그리고 각 행위에 들어가는 의료재료비와 기술료, 인건비등으로 구성된다. 의료가 아닌 비 의료( 대체의학이나 사이비의료 포함)의 범주까지 의료행위로 둔갑시켜 의료비용이 발생되도록 한 것은 큰 낭비이다. 비 의료 행위를 구분하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그래도 ‘이 행위나 직종이 없으면 국민 건강 수명 유지에 영향을 주는가?’에 기준을 둔다면 불필요한 의료비 발생이나 의료에 대한 국민 인식에 혼란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인건비 상승은 의료 발전에 따라 고도로 훈련된 고임금 인력과 보조 인력의 수요 증가가 원인이다. 거기에 고임금 인력인 의사(전문의)가 핵심 의료 행위 뿐 아니라 부수 업무 까지 직접 하도록 한 규제가 비용을 더 붙였다. 의료 재료비 비중이 높은 것은 핵심 의료 기기나 소모품을 외국 제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들어와 상당 부분 개선되고 있으나 그것도 겉 포장이 그럴 뿐 핵심 재료들은 대부분 외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코로나 19 백신, 진단 시약, 치료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최근 20여년간 재료비 비중이 급격히 상승되고 있는 것은 대학교수들의 수의 팽창과도 관련이 있다. 대학교수란 속성상 새로운 의료기술 지향적이다. 본인이 개척하거나 제일 먼저 도입하여 사용하고 싶어 한다. 또한 이들에 의해 보건의료정책이나 규정 등이 영향을 받으니 바로 재료비 상승으로 연결된다. 이런 고비용 발생 구조에 ‘의료전달 체계’까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낭비를 부추긴다. 대형 병원과 소규모 의원으로 양극화된 의료제공 구조와 국민들의 무분별한 의료 이용 행태, 의료기관 사이의 소통 부재와 무분별한 경쟁, 고가의 신 의료기술을 선호하는 대학병원의 진료행태와 일차 진료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으나 국민 신뢰가 높지 않은 자영업 의원 등등이 고비용의 틀을 부추기고 있다. 그리고 고수익을 기대하는 우수 집단이 의료계로 모이는 기형적 사회 현상과 국민의료비의 상당 부분을 관리유지비로 소모하는 의료보험관리체계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둘째는 의료 관련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경제성을 높여야 의료비상승을 최소화 하면서 양질의 의료를 유지할 수 있는데 의료인 관리 정책 방향은 오히려 이를 저해하고 있다. 의료의 각 전문 분야마다 질 관리라는 미명하에 전문성을 과도하게 자극하여 인력 양성기간을 늘려 고비용 인력을 양산시키고 전문직의 업무량을 제한하고 직역간의 벽을 높게 만들어 갈등을 조장하여 의료의 본질인 팀워크에 의한 의료 행위를 어렵게 하고 업무 분장을 막아 인력 활용도를 낮추었다.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의학전문대학원, 환경변화를 수용할 수 없는 경직된 전문의 제도, 의사 면허를 격하시키고 전문의 과잉 우대, 효과가 의문시되는 의약 분업 등 각 직역의 배타적인 업무영역 규정 등도 인력의 효과적인 활용을 방해하고 비용 발생을 부추기고 있다.
이 두 가지는 지난 60여 년간 쌓여온 악폐들이고 현재 많은 의료문제의 근원이다. 쉽사리 걷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고는 국민 과 정부 그리고 의료인 모두 고달플 수밖에 없다.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가?
모두가 불만인 의료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고비용 발생요인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고 의료 현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일차의료기관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우수 의료 인력의 활용을 극대화해야 한다. 법과 제도개선이 핵심이니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부가 목표를 뚜렷이 하고 확신을 갖고 20년 이상의 장기 계획으로 일관성 있게 접근해야 한다.
첫째 ‘의료 형태의 다양성’을 두려움 없이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원격의료’를 의료계와 시민단체가 반대하여 도입이 지연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의사의 대면 진료가 최선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질병과 환자 그리고 의료인, 의료기관의 다양성 때문에 어떤 특정한 의료 환경으로 모든 의료 수요를 수용할 수는 없다. 최선을 찾아가지만 의료는 생물과 같아 오늘의 최선이 내일의 최선일 수도 없고 오늘의 문제점이 내일에는 최선의 해결책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이 환자에게 최선이 저 환자에게도 최선일 수 없다. 따라서 의료제도 와 의료인, 의료기관 등 의료 요소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인정하고 이들 요소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시대와 환경에 맞게 변신하면서 최선의 방법을 의료 스스로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 이런 방식이 어렵다면 차라리 공공의료를 점차 확대하여 단점 많은 국가 의료체계(영국식 NHS), 즉 통제가 쉬운 체제로 가는 것도 방법이나 이는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둘째 의료인력 활용을 극대화해야한다. 이를 위해 다음 세 가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재 의료시스템을 답답하게 만든 주범의 하나인 전문의 관련 법규를 폐기하고 전문인 단체에 위임하여 의료 발전과 수요에 맞게 전문의가 양성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문의의 수련 연한, 재교육, 타과 수련 인정 등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의사 인력의 최대한 활용을 위해 특정 전문의의 의료 행위만 인정하는 규정들을 폐기하여야 한다. 전 세계 어디에도 국가에서 전문의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가 없는 이유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또한 의료 행위 공급자의 기본을 의료인 개인이 아닌 의사와 보조 인력으로 구성된 팀으로 해야 한다. 팀에서 의사의 지휘 하에 비 의사 인력들을 과감히 활용함으로써 저비용으로 의료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사 보조 인력의 직접 의료행위에 대한 의사들의 우려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에게 과 부하된 의료 행위 자체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의료 행위의 상당 부분은 훈련된 보조 인력에 의해 시행될 수 있다. 의사들의 책임 하에 보조 인력을 과감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의사들의 의료 행위도 극대화 시킬 수 있다. 그리고 우수 인력이 의료에 몰리는 현재의 상황을 엄정하게 보고 이들이 국민과 의료 분야의 짐이 되지 않도록 하고 의료계가 이들의 무덤이 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들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의료 관련 연구 분야와 산업계 그리고 전 세계로 일터를 넓힐 수 있도록 정부 주도의 제도와 재정의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 우수한 인력이 의료기관 안에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면 의료의 혼란만 가중 시키고 끓는 냄비속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소멸될 수 있음을 염려한다.
셋째 일차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 의원급 의료기관의 과감한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개인 의원의 역할이 현재 의료 체계의 핵심인데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이유를 해결해야 한다. 의사가 아무리 우수한 인력이라 해도 새로운 의료기술을 활용할 시설과 인력이 부족한 환경에서 5년 이상 혼자 고립되면 의료 발전에 뒤처진다. 의사들이 서로 의문을 상의 할 수 있고 이차 의견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의료행위의 신뢰도를 높이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재 의원들을 일정 규모로 집단화하거나 진단검사와 영상검사, 그리고 고가의 치료 기기를 갖추어 개원의를 지원할 수 있는 의사 50여 명 규모의 공공 외래진료 전문병원을 도입하여 이를 중심으로 기존 의원들의 일차 진료를 집단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건강보험공단이 설립하여 시범적으로 운영해보고 확산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변화와 가변성이 정답이다
21세기 들어와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성과 변화의 속도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오늘 최선이라고 믿었던 것이 내일에는 쓸모없게 되는 일이 다반사이다. 국민 일상의 바로 옆에서 동행하는 의료도 국민들의 일상과 인식 변화에 따라 빠르게 변해 갈 수 밖에 없다. 의료 핵심은 더욱 튼튼히 하고 사이비 의료 등 버릴 것은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 그때그때 최선을 찾아갈 수 있도록 가변성 높은 의료시스템을 만들고 운용하는 것이 해답이다. 최근 뉴스에서 선보인 100년 주택의 핵심은 땜질하기 쉽고 가변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박효순 기자 anyto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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