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현 변형윤 교수를 추모하며
내가 변형윤 교수님의 조교로 임명된 것이 1988년이니 벌써 35년이 되었다. 그 이후로 선생님은 학자로서 내 삶의 지표였다. 1955년 서울대 상대에 부임한 후 선생님은 좋은 학자, 교수, 선생으로서 삶을 사시고 학교에 끝까지 봉직하겠다고 다짐하셨다고 한다.
학자로서 선생님은 마샬의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마음’이라는 경구를 항상 마음에 두고 ‘인간의 숨결’을 갖는 경제학을 연구하셨다. 선생님이 형평을 강조하며, 빈곤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한 경제학에 천착하신 것은 그 연유이다.
교수로서 선생님은 경제학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학문의 진리를 갈구하는 학생은 누구라도 포용하셨다. 과거 독재정권의 학문적 억압에 단호히 대응하신 것도 민주주의적 다양성이라는 본인의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그것이 당시 큰 고난을 겪었던 제자들이 아직까지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내게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선생’으로서의 삶이다. 1946년 헤어진 모친이 부탁하신 대로 선생님은 한평생 ‘떳떳하게’ 살아오셨다.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오늘까지 급변해왔던 한국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혹독한 자기절제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1988년으로 돌아가 본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신문에 게재된 글이 본인의 생각보다도 무뎠다는 마음에, 선생님께 항의 아닌 항의를 해본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자극적인 언어로 두드러진 글을 쓰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세상을 살다 보니 왜 그러셨는지 알게 되었다. 날카로운 언사로 세상의 관심을 받았던 학자와 지식인들이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선생님은 비단 글뿐 아니라 모든 행동에서 자기 절제를 하셨고, 사사로운 욕심 없이 모든 일을 대하셨다. 세상의 흐름에 따라 선생님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 뿐, 선생님은 중심을 지키며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경제학을 연구하셨고 이를 실천하는 참된 지식인의 삶을 사셨다.
지난 두 달 입원하시면서 얻었을 고통에 마음이 아팠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제 영면하시어 생이별하신 모친과 재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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