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467개의 별과 295개의 별자리…다시 태어난 조선의 하늘 지도(종합)

김예나 2022. 12. 2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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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과학문화실 개편…조선 천문학에서 엿보는 통치이념 주목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집중한 별도 공간…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등 45건 전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나는 자격루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26일 새로 단장한 국립고궁박물관 '과학문화'실에서 자격루를 소개하고 있다. 일반 공개는 27일부터다. 2022.12.26 xyz@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짙은 어둠 사이로 네모난 형태의 돌이 서로 마주 본다.

1395년과 1687년, 약 30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두 각석(刻石·네모나게 도려내거나 자른 돌)에는 1천467개의 별과 295개의 별자리가 빼곡히 새겨져 있다.

먼저 만들어진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 刻石)에 프로젝트 영상을 투사하자 그 위로 조선의 하늘이 열렸다. 해가 뜨고 지고, 계절이 변하는 모습이었다.

조선 왕실의 유물을 보존·관리하는 국립고궁박물관이 26일 새롭게 단장한 '과학문화'실을 공개했다.

약 1년의 준비 작업을 거쳐 새로 선보인 과학문화실의 주제는 '관상(觀象)과 수시(授時)'다.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을 비롯한 국보 3건, 보물 6건을 포함해 총 45건의 과학문화 유산을 선보인다.

김인규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이날 열린 언론 설명회에서 "'관상수시'는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한 결과를 바탕으로 절기, 날짜, 시간 등을 정해 알리는 일로 고대로부터 왕의 의무이자 권위였다"고 설명했다.

기존 전시가 다양한 과학문화를 소개했다면, 새로운 과학문화실은 천문 관련 유물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조선시대 혼천의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26일 새로 단장한 국립고궁박물관 '과학문화'실에서 혼천의를 소개하고 있다. 왼쪽 뒤는 측우기. 일반 공개는 27일부터다. 2022.12.26 xyz@yna.co.kr

관람객들은 가장 먼저 천문 사업을 담당한 조직인 '관상감'(觀象監) 관원이 바라본 하늘을 만나게 된다.

김재은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은 일식, 월식, 유성, 혜성 등 하늘의 현상을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이는 오늘날 천문 현상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시실은 농업 중시 이념과 맞닿은 통치 행위의 하나인 관상수시를 조명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세종 재위 중인 1442년 농업에 활용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측우기와 측우대(측우기의 받침대)를 제작한 이후 그 전통이 이어져 왔음을 보여주는 국보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등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고대부터 왕권의 상징물로 여겨졌던 천체 관측기구인 '혼천의'(渾天儀), 통치자를 상징하는 북두칠성과 28수 별자리를 새긴 '인검'(寅劒) 등의 유물은 조선 왕실의 통치와 천문의 관계를 보여준다.

조선 왕실의 천문 사업을 주목할 전시 공간에서는 다양한 역서와 천문학서를 볼 수 있다.

1759년 3월에 나타난 관측 기록은 약 76년 주기로 지구에 다가오는 핼리혜성을 관측한 기록이 나와 있다.

조선시대 하늘 지도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26일 새로 단장한 국립고궁박물관 '과학문화'실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 목판본을 소개하고 있다. 일반 공개는 27일부터다. 2022.12.26 xyz@yna.co.kr

"3월 11일 밤 5경 3점 파루 후에 혜성이 허수 별자리 영역의 이유성 위에 나타났다. 북극으로부터 각거리는 116도로 혜성의 형태나 색깔은 어제와 같았다. 꼬리 길이는 1척5촌(약 30㎝)이 넘었다."

정확히 25일간 이어진 기록은 혜성의 위치와 꼬리의 크기, 움직임의 변화 등을 세세하게 담고 있다.

1772년 관원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헌서'(時憲書·조선 후기에 사용된 역서로 오늘날의 달력에 해당함) 등에서는 중요한 일정 등을 적어 놓은 흔적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천문 수준을 보여주는 유물을 한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관람객들은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와 '지평일구'(地平日晷), 현재 완전한 형태가 남아 있지 않은 물시계 '자격루'(自擊漏)의 부속품인 항아리, 부표, 주전(동력 전달 및 시각 조절 장치) 등을 볼 수 있다.

국보인 '창경궁 자격루 누기(漏器)'는 물을 채워 흘려보내는 청동 항아리인 파수호 3점과 물을 받는 원통형 항아리인 수수호 2점을 함께 전시해 작동 원리를 가늠케 한다.

박물관은 그간 중요도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과학 유산에도 특별히 신경을 썼다.

가로 11m, 세로 10m의 공간은 조선 태조 즉위 초인 1395년에 만들어진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과 숙종 대인 1687년 만든 보물 '복각(複刻)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두 유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조선시대, 돌에 새긴 별자리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26일 새로 단장한 국립고궁박물관 '과학문화'실에서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을 소개하고 있다. 일반 공개는 27일부터다. 2022.12.26 xyz@yna.co.kr

매시 정각, 15분, 30분, 45분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에 새겨진 내용과 각 별자리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이 커다란 원형 판에서 상영된다. 각석에 새겨진 내용을 비추는 프로젝트 영상도 투사된다.

김충배 전시홍보과장은 "이번 상설전시실 개편의 대미는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두 점을 전시한 공간"이라며 "유물의 내용을 이해하고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도 이해할 수 있도록 영상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프로젝트 매핑 영상을 직접 투사하지만, 실제 유물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전시실에서는 시각 자료를 활용한 정보 영상, 손으로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촉각 모형 등을 설치해 관람객이 더욱 쉽게 과학문화를 접하도록 했다.

김 학예연구사는 "측우대를 전시한 공간에서는 빗소리를, 자격루를 관람하는 곳에서는 시각을 알리는 북소리와 종소리를 들으며 유물을 오감으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7일부터 과학문화실을 관람할 수 있다.

조선의 '하늘 지도'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26일 새로 단장한 국립고궁박물관 '과학문화'실에서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 위로 각석의 내용과 위치, 계절의 변화 등을 보여주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2022.12.26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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