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부통령 관저 앞 또 내린 ‘이민자 버스’…세밑에도 해소 기미 없는 이민 위기
미국 수도 워싱턴이 1989년 이후 두 번째로 추운 크리스마스 이브를 기록한 지난 24일(현지시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관저 앞에 멈춰선 버스 세 대가 외투도 제대로 입지 못한 중남미 출신 이민자 100여명을 내려놓고 떠났다. 공화당 소속 텍사스 주지사가 지난 4월부터 시작한 ‘이민자 버스 이송’이 강추위 속에도 계속된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25일 구호단체를 인용해 전날 텍사스주 정부 관리들이 어린이를 포함한 이민자 110~130명을 버스에 태워 해리스 부통령 관저 앞으로 보냈다고 보도했다. ‘SAMU 퍼스트 대응’ 단체 측은 이들을 의사당 인근 지역 한 교회의 임시 처소로 안내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지원단체인 ‘이주민 연대 상호 지원 네트워크’(MSMAN)도 뉴욕타임스에 티셔츠 차림에 얇은 담요를 덮은 이민자들이 36시간여 버스를 타고 워싱턴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텍사스는 지난 9월에도 이민자들을 버스에 태워 해리스 부통령 관저 앞에 보낸 바 있다. 그렉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지난 4월부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중남미 불법 입국 확산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민자들을 버스에 태워 워싱턴, 뉴욕 등 민주당 소속 기관장이 있는 대도시에 내려놓는 일을 계속해 왔다.
바이든 정부를 향해 벌이는 일종의 ‘항의 시위’이지만 이민자들의 생명과 안전, 인권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졌다. 텍사스가 이런 방식으로 다른 도시로 떠넘긴 이민자는 22일 기준 워싱턴 8700명, 뉴욕 4500명, 시카고 1500명, 필라델피아 520명에 달한다.
급기야 공화당 소속 주지사가 있는 애리조나, 플로리다 등이 텍사스 사례를 모방하면서 갑자기 이민자들을 받게 된 뉴욕, 워싱턴 시 당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중남미 이민자 규모가 급증하면서 시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가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시는 내년도에 관련 예산이 10억달러 가량 소요될 수 있다고 밝혔다.
원치 않게 다른 주로 강제 이동되는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에 오려는 중남미 출신 이민자 행렬은 이어지고 있다. 미 관세국경보호청(CBP)에 따르면 11월 한 달 동안 멕시코와 접한 남쪽 국경에서 불법 입국하다 적발된 이들은 모두 23만374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국경에서 이민자를 즉각 추방하도록 허용한 연방보건법상 조치인 ‘타이틀42’의 폐지가 임박하면서 미 남부 접경지역에 이민자가 모여들고 있다.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월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도입한 이 조치는 미국에 불법 입국해 망명을 신청하는 이민자를 즉시 멕시코로 돌려보낼 수 있도록 했다.
이 조치를 폐기하려던 바이든 정부의 노력은 지난 5월 공화당 소속 주의 소송으로 제동이 걸렸다. 지난달 워싱턴 연방법원이 타이틀42호가 행정절차법에 위배된다며 21일까지 기한 종료를 명령했지만, 연방대법원이 일부 공화당 소속 주의 요청에 따라 폐지를 일시 보류하면서 이 조치의 수명은 연장됐다. 하지만 조만간 ‘국경 강제추방’ 조치가 폐지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미국·멕시코 국경 월경을 시도하는 이민자들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CNN방송은 최근 혹한에도 불구하고 텍사스와 멕시코 접경 리오그란데 강변에서 뗏목을 타고 건너는 이민자들이 급증했고, 특히 멕시코쪽에서 대기 중인 이민자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전했다. 미 국토안보부(DHS)에 따르면 리오그란데 인근에서 오는 일일 입국자 수는 900~1200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수준을 회복했다.
세밑에도 미국의 중남미 이민 위기가 계속되고 있지만 바이든 정부나 정치권 모두 뚜렷한 해법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이민 위기를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타이틀42호 폐지가 늦어지는 것은 물론 지난 10월 베네수엘라 출신 이민자 강제 추방 조치를 발동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민자 유입 감소로 인력난이 심각한 업계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텍사스의 민주당 소속 헨리 쿠엘라 하원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의 국경 방문을 촉구하며 “(대통령은) 위기가 있는 곳에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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