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계기판을 ‘또 하나의 우주’로 만들겠다"
(지디넷코리아=이균성 논설위원)꿈은 삶의 이정표이자 동력이다. 꿈은 곧 미래의 삶이다. 꿈은 그래서 소중하다. 꿈은 사람마다 다르고 다른 만큼 다채롭다. 스타트업이 꾸는 꿈도 그럴 것이다. 소중하고 다채롭다. ‘이균성의 스타트업 스토리’는 누군가의 꿈 이야기다. 꿈꾸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꿈꾸는 사람을 소개하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된다. [편집자주]
“자동차 계기판을 ‘또 하나의 우주’로 만들겠다”
2007년 1월 9일 최초의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스티븐 잡스는 “애플이 폰을 재발명(Reinvent)했다”고 선언했다. 결코 빈 말이 아니었다. 아이폰은 단순한 통화기기가 아니었다. 통화기능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폰은 어쩌면 또 하나의 새로운 우주였다. 지금은 그 생태계에서 온갖 기업이 살아가고 있다.
폰에서 일어난 기술혁명이 이제 자동차에서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자동차는 더 이상 단순한 이동수단에 머물지 않고 ‘이동형 플랫폼’으로 전환될 것이다. 현재 스마트폰에 탑재된 기능을 대부분 흡수할 것이고, 차 공간이 갖는 특성을 고려해 새로운 기능들이 덧붙여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한성 옐로나이프 대표는 그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특히 자동차 계기판의 혁신에 주목하고 있다. 아날로그였던 계기판이 디지털로 변하고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디지털 계기판을 거대한 생태계가 꿈틀거리는 또 하나의 우주로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현대자동차에서 조용히 꿈을 키우다
이 대표는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는 울산에서 태어났다. 특히 현대차 공장 맞은편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다. 당시 등하교 길에 현대차 직원들과 같은 시내버스를 탔다. 현대차가 익숙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대학도 기계자동차학부에 다녔고 자동차전문대학원도 나왔다. 대학원 때는 섀시제어를 전공하였다.
현대자동차 입사는 숙명 같은 것이었다.
“자동차가 너무 좋아 새벽 4~5시에 출근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남양연구소 설계 1동 지하에 있는 사우나가 새벽 6시에 문을 여는데 거기서 씻고 간단히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은 뒤 일했죠. 일하다 보면 금방 밤 11시가 넘곤 했어요. 그래도 힘들다는 생각은 안했던 것 같아요. 그럴 만큼 자동차가 좋았습니다.”
이 대표는 2018년 사내벤처 선발 과정에 응모한다. “어느 날 저의 작은 도전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평소 자동차 분야가 변화에 더디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아요.”
■모바일 기반 커스텀 계기판에 꽂히다
당시 사내벤처 응모 아이템이 ‘모바일 기반 커스텀 계기판’이다. 커스텀(custom)은 사용자 요구에 맞게 개조해준다는 의미다.
“스마트폰 시장은 혁신을 통해 급변하는데 자동차는 정체돼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아니 변화의 욕구가 많지만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많다는 게 정확한 진단이겠지요. 그래서 사내벤처에 응모한 것 같아요. 조금 더 자유로운 상태에서 변화에 몰입하고 싶었던 거죠. 현대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봐준 거고요.”
이 대표는 “계기판은 차의 작은 부분이지만 큰 변화를 일으킬 핵심 공간이 될 수 있다”며 “그 생각에 동의하는 열정과 역량이 있는 팀원들이 모였고, 그것에 용기를 갖고 2020년 5월에 독립 법인으로 분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옐로나이프와 벨로가의 돛을 올리다
옐로나이프는 캐나다의 지명이다.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사명을 옐로나이프로 한 까닭은 IT 기술을 통해 제품에 오로라 같은 감성과 예술성을 선보일 수 있는 기업이 되겠다는 이 대표의 숨은 의지가 담겨져 있다.
제품 이름은 벨로가(Veloga)다. 돛을 의미하는 라틴어 velum에서 유래해 속도를 뜻하는 접두어로 쓰이는 'Velo'와 이동을 의미하는 한국어 '가(Ga)'를 결합해 만들어낸 용어다. 새로운 이동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의미이다.
“자동차 산업도 속도는 느리지만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이미 올라 타 있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SDV(Software Defined Vehicle)가 주목됩니다. 소프트웨어로 모든 기계장치를 제어하게 하는 흐름이 바로 그것이죠. 벨로가는 계기판이 SDV의 출발이자 종착지인 플랫폼이 되게 하기 위한 구상이고 제품입니다.”
■“친절한 계기판이 첫 번째 과제예요”
자동차 계기판을 애플의 아이폰처럼 ‘또 하나의 우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이 아무리 가야할 길이라고 하더라도, 적지 않은 시간과 많은 투자가 필요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작은 스타트업에게는 더욱 더 그럴 것이다.
이 대표는 그래서 긴 호흡으로 달려갈 생각이다.
당장에는 “계기판도 바뀔 수 있다”는 변화의 체감이 중요하다.
“사용자가 느끼기에 자동차 계기판은 정형화 돼 있습니다. 계기판에는 속도 표시와 각종 경고 표시가 들어가죠. 그런데 친절하지 못합니다. 경고 표시가 무엇을 뜻하는 지 아는 분도 있겠으나 모르는 분도 많습니다. 벨로가는 이를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모든 표시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이지요. 또 사용자마다 취향이 다릅니다. 각자의 취향에 맞도록 다양하게 설계해 공급할 겁니다.”
옐로나이프는 이를 위해서 여성, 초보, 실버 등 사용자의 상황에 맞춰 50여 가지의 계기판을 설계하고 소비자가 구독할 수 있게 한다.
■현대자동차의 SDV 선언을 주목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메시지를 통해 “미래 자동차의 경쟁력은 소프트웨어 원천기술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구체화돼 회사의 비전으로 발표됐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비전이 그것이다.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을 SDV로 바꾸기로 했다. 또 2030년까지 SW에만 18조원을 투자한다.
SDV의 핵심 서비스 가운데 하나가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Over-The-Air)다. 차 소유자가 서비스 센터를 방문하지 않아도 차와 센터의 통신연결을 통해 차를 늘 최선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게 해주자는 개념이다. 현대차는 오는 2025년까지 약 2000만대의 자동차가 OTA 상태에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대표는 OTA 차량이 늘어나게 되면 차량용 앱 생태계가 급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 때 벨로가는 단순히 디자인이 예쁘거나 사용하기 쉬운 플랫폼이 아니라 많은 앱을 품은 거대한 플랫폼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40인치 풀터치 계기판 시대를 준비한다”
이 대표는 차량용 계기판 외관이 궁극적으로는 ‘옆으로 긴 40인치 풀터치 모니터’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차량용 모니터는 고급차라 하더라도 운전석 앞에 있는 계기판과 중앙에 있는 내비게이션으로 나뉘어 있다. 계기판에는 터치 기능이 없고 내비게이션에는 터치 기능이 탑재된 형태로 존재한다.
이 대표는 이게 하나의 디스플레이로 통합될 것으로 본다.
“계기판은 자동차 안전의 최후의 보루일 수 있습니다. 속도를 비롯해 차와 관련된 모든 안전 정보를 담고 있는 곳이 계기판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커스터마이징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어요. 개조를 하면 안전을 양보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거죠. 하지만 그 생각은 바뀔 수 있습니다. 더 커져서 편리할 뿐만 아니라 안전기능도 더 높일 방법이 얼마든지 있죠. 우리가 하려는 일이 바로 그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40인치 풀터치 계기판 주도 앱은 무엇일까
스티브 잡스가 폰을 재발명한 뒤로 모바일 생태계는 앱을 중심으로 아주 복잡하게 발전하고 있다. 어떤 앱은 단순한 기능만 수행하지만 카카오처럼 어떤 앱은 또 수많은 다른 앱을 파생시키는 기반 플랫폼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이 대표는 자동차에서도 그럴 것으로 보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내비게이션을 포함해 자동차 앱을 내놓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앞으로 열릴 가능성이 많은 ‘40인치 풀터치 계기판’이라는 새 우주를 놓고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표는 그중에서도 차량에 없어서는 안 되는 계기판 기능을 기반으로 그 새 우주의 핵심 플랫폼으로 성장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그 원대한 꿈에 비하면 옐로나이프의 현실은 아직 미약한 게 틀림없다.
꿈을 꾼 지 5년이 됐지만 법인으로 돛을 올린 건 고작 2년이 지났을 뿐이고, 직원이라고 해봐야 15명에 불과한 아주 작은 기업이라는 것이 현실이다. 매출도 아직 자랑할 만한 게 없고, 앞으로 2~3년은 더 지나야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가능할 수 있다. 지금까지 11억 원을 투자받았지만 추가 펀딩도 해야 한다.
이 대표는 그러나 고민하기보다는 부닥치는 스타일이다.
“창업할 때 어려운 일이라고 말리는 분도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내는 ‘현대 정신’으로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돌아가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님을 존경하는 이유도 그 불퇴전의 도전정신 때문입니다.”
이 대표는 오늘도 혼자 속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이봐, 해보긴 해 봤어?”
덧붙이는 말씀: 이한성 옐로나이프 대표가 소개한 다음 인터뷰 대상자는 유럽에서 B2B 화이트라벨 플랫폼 사업을 하고 있는 원더무브의 김태원 대표입니다.
이균성 논설위원(sereno@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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