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환원제철 2026년부터 실증한다…EU CBAM 대응 본격 ‘시동’
정부, 26일 대외경제장관회의 열어 대응 논의
2030년까지 2097억원 투입 철강산업 저탄소화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정부와 철강업계가 2025년까지 수소환원제철 공정설계 기술을 개발해 2026년부터 실증한다. 철강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여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비롯한 탄소 규제를 기회로 삼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2030년까지 총 2097억원을 투입해 관련 기술개발을 지원한다. 현 고로 제철소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기술이나 고로에서 전기로 제철소로의 전환도 추진한다.
정부는 26일 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계획을 담은 EU CBAM 현황 및 대응방안을 의결했다.
EU 집행위와 이사회, 의회는 지난 18일(현지시간) CBAM 입법안에 합의했다. 실제 발효하기까지는 EU 각국 대표로 이뤄진 이사회의 동의와 의회 표결이 필요하지만 이번 3자 합의로 사실상 세계 최초의 ‘탄소 관세’ 부과 결정 자체는 사실상 확정됐다. 이 안에 따르면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6개 품목을 유럽에 수입하는 기업은 당장 내년 10월부터 시작하는 전환 기간에 맞춰 제품의 탄소 배출량을 EU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또 2026년부터는 EU 탄소배출권(ETS) 시세 수준의 CBAM 인증서 구입 부담을 안게 된다.
한국 기업에도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국 철강기업은 지난 한해 EU에 43억달러(약 5조5000억원)의 제품을 수출했다. 알루미늄 수출액 역시 5억달러에 이른다. 2026년에는 당장 EU ETS 무상할당 비중이 커 직접적인 비용 부담은 미미하지만 2033년까지 무상할당 제도가 완전 폐지되는 만큼 2026년 이후 부담은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EU가 전환 기간 중 플라스틱·유기화학품을 적용 대상에 포함한다면 한국 기업 피해 규모는 두 배 이상 커질 수 있다. 지난해 한국 기업의 대(對) EU 플라스틱 수출액은 50억달러, 유기화학품 수출액은 18억달러였다.
정부는 가장 크고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철강 산업을 중심으로 관련 대책을 본격 추진한다. 탄소중립 산업핵심기술개발사업을 통해 2030년까지 철강 산업에만 총 2097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2025년까지 3년간 269억원을 투입해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사용해 쇳물을 생산하는 수소환원제철 공정설계 기초 기술개발을 지원한다. 2026년부터는 이를 실증한다는 목표다. 또 철강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모아 땅속 깊이 묻거나 활용하는 CCUS 기법 상용화, 고로 제철소를 상대적으로 탄소 배출량이 적은 전기로로 전환하는 계획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당장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기존 제철소에서 저탄소 원료를 사용하거나 전기로 효율을 높이는 에너지 순환기술도 개발해 적용키로 했다.
당장 내년 10월부터 관련 기업이 제품 탄소배출량을 EU 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만큼 국내 제품 탄소배출량 측정과 검·인증 인프라도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표준협회 등 국내 검증기관의 역량을 강화하고 제품 탄소배출량 산정 방법과 관련한 국제표준 개발에도 나서기로 했다.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실무자 가이드북을 만들고 관련 기업 대상 설명회도 추진한다.
녹색금융 3.8조→9.4조 확대…배출권시장 활성화도
정부는 민간기업 차원의 탄소 배출량 저감 설비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현재 3조8000억원 규모의 녹색금융을 내년 중 9조4000억원까지 늘리기로 했다. 또 배출권시장에 제3자 참여를 확대하고 증권사 위탁거래를 도입하는 등 시장 활성화 정책을 추진해 각 기업의 자발적인 탄소 감축유인도 강화하기로 했다.
EU는 2005년부터 탄소 배출 권리를 사고팔 수 있는 탄소배출권(ETS) 거래제를 시행해 2020년 기준 2100억유로(약 280조원) 시장으로 키웠으나, 한국은 2015년 도입 이후 아직 활성화 단계에 이르지도 못한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는 지금껏 EU와의 소통으로 우리 입장을 적극적으로 설명했고 최종 법안의 대상 품목이 (유럽의회 안보다) 줄어드는 등 우리 기업의 우려를 일부 해소했다”며 “그러나 철강을 중심으로 영향이 예상되는 만큼 탄소저감 기술의 빠른 개발로 이 같은 국제적 규제 움직임을 기회로 바꿔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욱 (n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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