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직원 퇴출하라' 탈레반 압박에…NGO, 아프간서 활동 중단 선언
탈레반 '이슬람 복장법' 이유로 NGO에 '면허정지' 위협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 정권이 자국에서 구호 활동을 하는 비정부기구(NGO)를 상대로 여성 직원을 퇴출할 것을 명령하자 일부 NGO에선 아프간 활동을 일시 중단한다는 입장이 나왔다.
25일(현지시간) AFP 통신은 "탈레반의 이번 발표에 국제기구 관계자들과 NGO들은 한목소리로 아프간 내 인도적 지원이 큰 타격을 입게될 것을 경고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이날 세이브더칠드런, 노르웨이난민위원회(NRC), 케어(CARE) 등은 공동 성명을 내고 "여성 직원 없이는 아프간에서 도움이 절실한 어린이, 여성, 남성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발표로 (당국의 지침이) 명확해졌다"면서 "남성과 여성 모두 동등하게 아프간에서 구호활동을 이어갈 것을 요구하고자 프로그램을 잠정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아프간 전역에서 여성 3000명을 고용해 보건·교육 분야에서 긴급 대응해 온 국제구조위원회(IRC)도 이날 활동 중단을 발표했다. IRC는 뉴욕 본부 명의 성명을 통해 "구호 활동을 벌이는 우리 단체의 능력은 조직 내 모든 부문에서 여성 직원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며 "여성 고용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물자를 전달할 수 없다"고 했다.
전날(24일) 탈레반 경제부는 자국에서 활동하는 NGO를 상대로 NGO에서 여성들이 계속 일할 경우 허가 면허를 정지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NGO 소속 여성들이 이슬람 복장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심각한 민원'을 받았다며 여성 고용을 금지한 배경을 설명했다.
AFP는 이러한 '이슬람 복장법'이 앞서 아프간 여성들의 대학 교육을 박탈하는 명분으로도 사용됐다고 지적했다. 지난주 이슬람 강경주의자에 의해 여성이 대학에 다니는 게 금지되자 이에 반발하는 학생 시위가 아프간 주요 도시에서 일어났다.
탈레반의 이번 '여성고용 금지령'으로 당장 NGO에서 일하며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 온 아프간 여성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외국계 NGO에서 수년간 활동한 샤바나(여·24)는 이날 AFP에 "내가 직장을 잃으면 15명의 가족이 굶어 죽을 것"이라며 "온 세계가 기쁨으로 새해를 맞는 동안, 아프간 여성들에겐 생지옥이 펼쳐졌다"고 말했다.
탈레반의 이같은 결정이 알려지자 국제사회의 비난도 속출했다. 라미즈 알락바로프 유엔아프간지원단(UNAMA) 특별부대표는 이날 내부 회의에서 "UN 원조가 NGO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탈레반의 조치가 UN 활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또한 "침체 상태에 빠진 아프간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알락바로프 UN 특별 부대표는 AFP에 "아프간 내 모든 NGO가 전면 운영 중단을 결정하지는 않았다"면서 "앞으로 좀 더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UN이 직접 탈레반의 금지령을 번복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카렌 데커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 대리는 이날 트위터 게시글을 통해 "탈레반의 결정이 기아 사태로 이어질 것"이라며 탈레반 정권을 규탄했다. 이어 "아프간에 인도적 지원을 가장 많이 하는 국가의 대표로서 여성과 아이들이 자원을 배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을 굶어 죽게 하는 탈레반이 어떤 의도가 있는지 설명해야겠다"고 덧붙였다.
이슬람협력기구(OIC)는 탈레반의 여성고용 금지령에 대해 "아프간 국민들의 이익에 반하고 스스로 패배하는 것"이라며 탈레반에 결정 번복을 촉구했다. 아날레나 베르보크 독일 외무부 장관은 "국제 사회의 명확한 반응"을 요구했다.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에도 탈레반은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트위터에 "인도적 지원을 이유로 지도자 결정에 대해 헛소리하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고 적었다. 다만 탈레반은 여성고용 금지령이 NGO에서 활동하는 외국인에게도 적용되는지에 대해선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seong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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