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노숙인이 '임시 주거 지원' 거절당한 이유는? [노숙인, 가장 낮은 곳에]
②주소가 없으면 복지도 없다?
한국은 주거 아닌 시설 위주 정책
주거 지원도 전제 조건에 비좁아
주거 우선 국가, 노숙인 대폭 줄어
노숙인 "주거가 의사고, 힐링이다"
편집자주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노숙인 문제를 3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취약 계층의 현실을 더 돌아보는 연말이 되길 바랍니다.
서울역에서 5년간 노숙한 지적장애인 A씨는 지난해 고시원에라도 들어가기 위해 서울시 한 노숙인센터에 '임시주거 지원'과 '지원주택 입주'를 위한 사례관리를 신청했다.
'미등록 장애인'이던 그가 각종 지원을 받으려면 우선 장애등록이 필요했다. 하루 끼니 해결도 어려운 그에게, 수십만 원까지 나올 수 있는 장애등록 비용은 큰 부담이었다. 그나마 신규 등록을 하려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겐 진단서 발급비(4만 원)와 검사비(10만 원 한도) 지원이 되지만, 주소지 없인 수급자 신청도 불가능했다.
'주소지 마련'을 위해 A씨는 고시원에라도 들어갈 월세 지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임시주거 지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노숙인에게 30만 원 안팎의 월세를 3~6개월간 제공하고, 수급자 신청이나 주민등록 복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지원주택은 신체적·정신적 제약으로 독립생활이 어려운 노숙인에게 주거공간과 함께 일상생활 지원, 의료, 재활 등을 함께 제공하는 공공 임대주택이다.
그러나 센터는 그가 일전에 고시원 업주에게 쫓겨났던 사실과 그의 알코올 사용 장애(알코올 중독) 이유로, '월세 지원은 안 되고 병원 입원 먼저 하시고 오라'면서 지원을 거절했다. 결국 A씨는 지인의 사적인 도움을 받아 고시원 방을 얻고, 이후 수급자 신청과 긴급복지신청을 해야 했다.
주거 아닌 시설 위주 정책
주거지원을 위해 전제조건을 내거는 한국과 달리, 캐나다와 북유럽 같은 '홈리스 정책' 선진국들에선 '주거지원 우선(Housing First)' 정책을 표방한다. 노숙인에게 독립된 적정 주거 공간을 우선 마련해주는 데 방점을 찍고, 그 뒤에 병원 치료나 돌봄 서비스, 고용 지원 등 당사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 제공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주소지 없인 복지서비스와 공공부조를 받기 어려울뿐더러, 노숙인 생활시설 입소자나 입소 희망자에게 일자리 연계, 식사 제공 등 각종 지원 정책이 집중되는 '시설 중심 정책'이라는 게 시민단체와 학계의 진단이다.
한국도시연구소·홈리스행동이 지난해 3월 발표한 노숙인 1,014명 대상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숙인 등이 가장 필요로 하는 복지서비스는 '주거 지원(88.9%·중복응답)'이었다.
그러나 노숙인이 가장 많고, 관련 정책도 그나마 두터운 서울시만 해도 3,365명의 노숙인 중 임시 주거지원 같은 주거 프로그램을 받는 경우는 10.2%(346명)에 불과했고 대부분 시설 거주(71.2%·2,396명) 상태였다(서울시 ‘2021년 노숙인 실태조사’).
시설이 최종 주거 형태가 되어선 안 돼
노숙인 생활시설(자활·재활·요양)도 탈노숙 과정에서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유일한 선택지'거나 '최종 거주 형태'가 돼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2020년에 서울시 모 노숙인 자활시설 입소 인원의 90%가 코로나19에 확진된 사례가 보여주듯, 시설도 '적정 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시기에 감염 예방을 이유로 이용자의 외출을 금지하거나, 출퇴근하는 직장생활 노숙인의 출입을 막은 자활시설도 있었다. '이용자가 주체적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독립된 주거 공간'이라고는 결코 볼 수 없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질환이 있거나 고령인 노숙인을 위한 재활시설·요양시설의 평균 거주기간은 약 23년(276개월)에 달하기도 했다. 한 번 입소하면 일평생 시설에서 살게 되기 쉬운 것이다.
만성 거리 노숙인들이 시설 입소나 거주 지원을 거부하고, 거리 생활을 지속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존재함에도, 시설 중심으로 각종 지원 체계가 집중된 상황은 거리 노숙인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김재덕 서울브릿지종합지원센터 상담과 팀장은 "주거 지원으로 고시원을 연결해드리는데 '답답하다'고 나오시는 경우도 많다. 공간 자체가 비좁은 문제도 있지만, 관계 단절로 인한 '답답함' 때문이다. 노숙인 간에도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도우며 오는 유대감이 있는데 이게 단절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외에도 엄격한 통제, 사생활 보장이 안 된다는 점 등으로 시설 입소를 기피하는 이들도 많다.
주거 지원 공급 적고 외곽에
고시원에 머물던 A씨는 운 좋게, '주거취약계층 주거(상향)지원' 사업의 매입임대 주택에 당첨돼 곧 입주를 앞두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방자치단체 및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과 협업해 진행하는 해당 사업은 쪽방·고시원·비닐하우스·노숙인시설·PC방 등 환경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한 사람이나, 가정폭력 피해자·출산예정 미혼모 등 취약계층에게 저렴한 임대주택을 지원하는 제도다.
종류는 △기존 주택 매입임대 △기존 주택 전세임대 △국민임대주택(건설임대)으로 나뉜다. 한 예로 정부가 기존 주택을 매입해 개·보수한 뒤 임대하는 ‘매입임대’는 보증금은 50만 원이고 임대료는 일반 매입임대 주택 시세의 30% 수준이다.
그러나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노숙인은 많지 않다. 공급량 부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 때문이다. 2019년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전체 주거취약가구는 290만 가구로 추산되는데,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사업으로 공공 임대주택에 이주한 경우는 2022년 7월 말 기준 누적 2만7,825호로 아직 약 1% 남짓이다(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이 국토부에서 제공받은 자료를 봐도, 2019년 이후 연간 매입임대 공급량(LH공사 공급분)은 700~1,300건 안팎이고 80%가량이 전세임대 물량이다. 전세임대는 거주하려는 당사자가 직접 매물을 물색해야 하고, 서울 같은 경우 지원 한도 내에서 주거 공간을 찾다보면 반지하 등 밖에 선택지가 없다는 게 현장의 전언이다.
안형진 활동가는 공급 확대만큼이나, 임대주택의 입지와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설비도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입소자 대부분 고령에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분들이라, 교통편과 접근성도 굉장히 중요한데 임대주택이 거의 서울 외곽에 위치해있다. 무료급식소, 병원 등 당사자가 평소 이용하던 지원체계와 생활권으로부터 뿌리 뽑혀지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한 예로 당뇨 악화로 다리를 절단하고 휠체어를 이용하던 한 장애 노숙인은, 임시주거비 월 25만 원으로 쪽방·고시원을 구해보려고 했지만 경사길과 문턱, 계단 등 때문에 진입이 가능한 곳을 찾는 것부터가 난항이었다. 어렵사리 1층 쪽방을 구해 주소지만 두고, 거리에서 인슐린을 맞아가며 버텼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서 공급하는 매입임대 주택 중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은 없었다. 결국 그는 2020년 7월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주거지원 정책 국가들 노숙인 급감
해외 선진국들은 어떨까.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캐나다 에드먼턴시는 노숙인에게 주거지원 위주의 장기적 대책을 꾸준하게 실시한 결과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노숙인 수를 61% 줄였다.
2017년까지 1,200여 채의 무료 주거지를 공급하고, 노숙인들이 병원방문이나 취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대중교통 이용권'도 지급했다. 시는 최근에는 코로나 여파로 문을 닫은 호텔들을 인수해, 주거취약계층에게 제공하는 프로젝트도 추진했다.
핀란드도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노숙인을 위한 비영리 사회주택재단인 Y재단에 따르면, 핀란드에는 1980년대만 해도 2만여 명의 노숙인이 존재했으나 10년 넘게 주거 우선 정책을 편 결과 현재는 4,300명으로 그 수가 대폭 감소했다. 핀란드에선 알코올 사용장애(중독)나 정신질환 등의 문제를 가진 경우도 주거 지원에서 배제하지 않는다.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서울 길거리, 쪽방, 고시원 등 '비적정 거처'에서 숨진 무연고 사망자는 432명이다. 지난해 수치(395명)보다 37명 늘어났다. 안정적인 적정 주거는 인간다운 삶의 시작이다.
"주거가 곧 의사고, 주거가 곧 힐링이다. 건강히 살려면 주거가 필수"라고 홈리스 당사자(노숙인복지법 제정 10주년 토론회에서 로즈마리씨)가 외치는 이유다.
◆노숙인, 가장 낮은 곳에
①노숙인 거리상담에 동행하다
②주소가 없으면 복지도 없다?
③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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