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소서 극적으로 만난 목격자, 엄마가 알던 딸의 마지막은 달랐다
진상규명에 ‘구조·목격자’ 중요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던 에티오피아 청년 와제는 참사 이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자려고 누울 때마다 머릿속엔 한 20대 여성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심폐소생술(CPR)을 도왔지만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생을 달리한 이의 얼굴이다. 그 얼굴을 다시 본 곳은 지난 17일 늦은 밤 찾은 이태원 광장 희생자 시민분향소였다. 그는 희생자 사진들을 훑어보다가 그 여성의 영정을 봤고, 묻어둔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놀란 그를 붙잡은 건 그 여성의 어머니였다.
서툰 영어와 한국어로 소통하며, 어머니는 와제가 자신의 딸인 희생자 박소영(21)씨를 본 마지막 목격자였다는 걸 알게 됐다. “딸을 구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는 와제에게 어머니는 “혹시 아이가 마지막 말을 남긴 게 있는지”를 물으며, “내 딸을 마지막으로 봐 준 사람이라 참 고맙다”고 했다.
희생자들의 사망진단서는 유족들에게 이들의 마지막 모습을 알려주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사망 시각과 장소, 사인은 추정에 기반해 구체적이지 않았다. 겨우 주검을 찾은 유족들은 피붙이가 어떤 구조나 도움을 받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와제와 같은 목격자의 존재는 유족이 조금이나마 희생자의 마지막 순간을 알게 되고, 나아가 진상규명과 정부의 부실 대응을 따져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22일 이태원에서 <한겨레>와 만난 와제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소영씨의 모습을 전했다.
와제가 아수라장이 된 참사 현장 속에서 소영씨를 발견하고 구조에 나선 때는 밤 11시40분께였다고 한다. 소영씨 사망진단서에 적힌 사망 시간(밤 10시15분)보다 1시간25분가량 늦다.
참사 발생 지점인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 소영씨를 안고 나온 한 남성이 “도와달라”고 외쳤다. 이 목소리를 들은 와제는 여자친구와 함께 소영씨에게 향했다. 다른 외국인이 심폐소생술을 시작하자, 와제는 소영씨 머리를 뒤로 젖혀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도왔다고 한다. “맨 처음 그녀를 봤을 때 몸에 온기가 돌아 아직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심폐소생술을 했던 외국인은 자신이 간호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는데, 소영씨 목을 짚더니 맥박이 뛴다고 말했어요.”
와제는 약 20분간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을 때쯤 119 구급대원이 소영씨에게 와서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고 기억했다. “구급대원이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다시 심폐소생술을 한 뒤 전기 충격도 주는 걸 봤어요. 하지만 소영씨 몸은 차가워지기 시작했죠.” 그는 이 과정에서 또 다른 희생자인 고 이지한씨가 구급차에 실려 의료진으로부터 응급 처치를 받는 것도 보았다고 했다.
결국 소영씨를 이태원 도로에 눕혀 두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와제는 그날 이후 식사도, 출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자꾸만 떠오르는 소영씨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구급대원은 최선을 다했지만, 너무 늦게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희생자들이) 길에 누워있던 모습이 계속 떠올랐어요. 그들의 몸을 덮어주고 싶었는데, 그때는 그러질 못해 뒤늦게 담요와 베개를 사보기도 했죠.”
참사 희생자 49재를 치른 다음날인 지난 17일 밤, 와제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에서 소영씨를 지키고 있던 어머니 김민주(45)씨를 만났다. 김씨는 당시 소영씨 옷차림은 어땠는지, 구조 도움은 받았던 것인지 등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그런 김씨는 와제를 만나 “위안이 됐다”고 했다. “몰랐던 딸의 얘기를 듣고, 우리 애가 어디서 심폐소생술을 받았는 지도 알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우리 애가 사고 직후 바로 잘못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목격자 증언은 유족에게 참사 진상을 규명하는 데 실질적 구실을 할 수 있다. 소영씨 어머니 또한 와제의 ‘증언’을 들은 뒤 “늦은 시간까지 아이가 방치돼 있던 건 아닌지 의문도 들었고, 좀 더 빨리 대책을 마련했다면 아이가 살 수도 있지 않았던 것인지 답답하다”고 했다.
박상은 전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은 “목격자들의 증언 하나하나가 모이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동시다발적으로 압사 및 심정지가 발생한 게 아니라 희생자마다 상황이 달랐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런 현장 증언을 다양하게 듣고 참사 직후 상황을 복원한다면 당시 구조 대응 문제를 짚고, 향후 대책 마련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조사기구가 따로 존재한다면 이런 작업도 전문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태원 참사 티에프(TF) 소속 이창민 변호사는 “목격자 증언에 신빙성이 있다면 생존해 있던 희생자에 대한 긴급 구조를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대한 과실을 명확히 가려낼 수 있고, 재난안전시스템이 얼마나 부실하게 작동했는지도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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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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