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마스크 벗기의 정치적 왜곡

권도경 기자 2022. 12. 2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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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는 한때 가장 인기 있는 기부 물품이었다.

2020년 초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마스크 몸값은 치솟았다.

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을 앞두고 이제 마스크에서 벗어날 날이 다가왔다.

이달 초 대전시장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장이 실내 마스크를 자체적으로 풀겠다고 나서자 혼선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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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경 사회부 차장

마스크는 한때 가장 인기 있는 기부 물품이었다. 2020년 초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마스크 몸값은 치솟았다. ‘마스크 대란’은 잦아들지 않았고 ‘사재기’와 ‘웃돈구매’로 탐욕의 대상이 됐다. 상황을 바꾼 건 시민들의 연대와 배려였다. ‘요일별 배급제’ 등 잇단 대책에도 마스크 품귀 현상이 사라지지 않자 시민들은 의료진, 자원봉사자,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마스크를 나누거나 양보했다. 시민들의 선한 의지로 재난을 이길 수 있다는 힘도 얻었다. 3년 내내 쓴 마스크는 지긋지긋했지만, 방역 효과는 뛰어났다. 치료제와 백신 등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었던 시기에 지역 봉쇄와 같은 극단적인 조치 없이도 코로나19 유행은 관리 가능했다. 마스크를 잘 쓰지 않는 미국의 치명률은 우리보다 10배 이상 높았다. 법적 의무도 붙었지만, 이견은 없었다.

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을 앞두고 이제 마스크에서 벗어날 날이 다가왔다. 이를 둘러싼 상황은 무질서하다. 방역이 정치에 휘둘리면서다. 이달 초 대전시장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장이 실내 마스크를 자체적으로 풀겠다고 나서자 혼선이 시작됐다. 지자체가 사분오열하자 중앙정부의 ‘단일 방역망’ 기조는 흔들렸다. 여당 일부 정치인들도 동조했다. 당초 방역 당국은 실내 마스크 의무 완화 시기를 내년 3월 이후로 잡고 관련 논의를 중단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6일 조기 완화를 시사하자 방역 당국은 부랴부랴 조정 기준을 내놨다. 지자체와 정치권, 여론에 떠밀려 방역정책이 결정된 것이다. 방역 메시지는 산개했다. 실내 마스크는 풀면서 백신 접종을 독려하는 방역 정책은 일관성을 잃은 채 헛돌고 있다.

실내 마스크를 벗는 시점을 두고 불필요한 난맥상도 불거졌다. 시기는 이미 정치권에 의해 내년 설 연휴 전후로 굳어진 모양새다. 여당은 실내 마스크가 풀려 전 국민에게 설 선물이 될 거라면서 기대감에 불을 지폈다. 방역 상황은 녹록지 않다. ‘BN.1’이란 새 변이가 세력을 불리면서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가 다시 늘고 있다. 이달에만 코로나19로 숨진 사람이 1300명이 넘었다. 확진자가 폭증한 중국 유행 양상도 변수다. 반면, 설 연휴가 안전하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아직 없다. 코로나19의 병독성은 그대로인데 방역 조치만 달라지는 셈이다. 한 감염병 전문가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날짜를 세면서 사라지거나 약해지나요? 설 연휴가 되면 호흡기 바이러스가 모두 없어진다는 근거가 있나요”라고 반문했다. 논의 자체가 비과학적이라는 얘기다.

실내 마스크를 벗는 방향성에는 다들 공감한다. 시기와 절차 문제만 남았다. 여기에는 마스크를 안심하고 벗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깔려 있다. 특정 시점을 거론한 채 정책만 짜맞춘다면 ‘정치방역’이란 오점만 남을 수밖에 없다. 전 국민이 마스크를 써야 했을 때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마스크를 벗을 때도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 방역 피로감에 편승한 정치적 결정이 기반이 돼선 안 될 일이다. 3년간 답답한 마스크를 쓰면서 인내하고, 서로를 배려했던 시민들 노력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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