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성...프라이버시...편의성...“다 갖춘 CBDC 만들것”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 CBDC
인터넷 없어도 이전 가능한 점이 핵심
카카오뱅크 등 11개 협력사와 드림팀
한은 활용 모의실험 성공적 마무리
“한국은행이 CBDC를 만들 때 가장 강조했던 게 바로 ‘금융 포용성’입니다. 모든 화폐가 디지털화하더라도, 여전히 현금처럼 사용하며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오프라인 CBDC’가 필요하다는 게 핵심이었죠”
한국은행의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모의실험을 총괄한 김경업 크러스트 유니버스 CBDC 본부장은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본부장은 지난 1년 반 동안 한은 CBDC 모의실험 용역사업을 두 단계에 걸쳐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최근엔 매주 수요일마다 한은 관계자들과 만나 CBDC의 활용성을 점검하고 있다.
CBDC란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를 의미한다. 기존의 실물 화폐와 달리 가치가 전자적으로 저장돼 중앙은행이 국민의 모든 거래내역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따라서 금융 소비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완전히 침해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김 본부장은 이에 대해 국내 CBDC 시스템을 구축하며 가장 공을 들인 것이 바로 ‘오프라인 CBDC’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은은 모든 걸 다 디지털화시키더라도 인터넷이 없거나 전력이 없는 상황에서도 가치 이전이 원활하게 되게끔 오프라인 CBDC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며 “결국은 CBDC 체제에서도 국민들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현금의 특성을 어느 정도 갖고 싶어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이 오프라인 CBDC를 구현하기 위해 떠올린 아이디어는 ‘교통카드’였다. 그는 “버스탈 때 교통카드를 찍으면 버스의 단말기는 자체 통신 기능을 가지고 있다”며 “송금인과 수취인의 전산기기가 모두 인터넷 통신망에 연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근거리무선통신(NFC) 등 해당 기기에 탑재된 자체 통신 기능을 통해 거래가 가능하도록 그 원리를 CBDC에 접목시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한은은 오프라인 CBDC 지갑을 다양화하고 싶다는 의견으로 화답했다”고 떠올렸다.
▶삼성전자 최고등급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서 한국은행 파트너로=김 본부장은 2018년도 중순에 처음 카카오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 개발팀장으로 입사했다. 그 전에는 삼성전자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가전·무선사업부에서 근무했다.
그는 “삼성전자 가전사업부 등에서 익스퍼트(Expert) 프로그래머로 소프트개발을 하고 있었다”며 “그러던 중 2017년 ‘크립토 붐’이 일었을 때 이더리움에 빠져 가상자산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카카오 그라운드엑스에 입사해 처음 클레이튼 플랫폼을 만들 땐 고작 10명이서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중 클레이튼은 한은이 외부 컨설팅을 마친 CBDC 연구의 모의실험에 참여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뛰어든 수주전에서 만난 적수는 네이버 라인. 카카오 클레이튼은 치열한 ‘세기의 대결’을 거쳐 최종 승자로 선정됐다.
그는 “한은에서 구상한 CBDC 내용을 처음 봤을 때 클레이튼의 운영 방식과 정말 똑같다고 느꼈다”며 “국내 금융기관들과 함께 운영하는 분산원장기술(DLT) 기반의 CBDC를 테스트해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는데, 30여개가 넘는 대기업과 세계 최대 수준의 컨소시엄을 이뤄서 진행하고 있는 카카오 블록체인과 너무 비슷한 그림이었다”고 설명했다.
최고 등급 엔지니어 경력을 가진 김 본부장이지만 한은의 CBDC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건 카카오계열 금융사와 다양한 기술 협력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잘 만드는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 한국은행 시스템을 유사하게 구축할 수 있는 삼성SDS, 이 모든 협업을 잘 조율해줄 수 있는 컨설팅사 KPMG 등과 협력해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사람들은 우리를 ‘드림팀’이라고 불렀다”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이 말한 ‘드림팀’에는 클레이튼을 운영하는 그라운드엑스(現 크러스트)를 비롯해 총 12개 업체가 포함됐다. 이 팀은 1단계에서 DLT 기반의 CBDC 모의실험 환경을 클라우드에 조성하고 CBDC 제조·발행·유통·환수 등 기본 기능을 구현했다면, 2단계에서는 지급서비스를 확장시키고 최신기술의 CBDC 적용 가능성을 점검했다. 사업비는 총 39억1000만원이 들었다.
▶한국은 이미 ‘금융 선진국’...CBDC 더 나은 편의성 필요해=김 본부장은 한국의 CBDC 도입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편의성’을 꼽았다. 그는 “신흥국이나 개발도상국은 계좌를 트는 것도 어렵고, 통장을 개설하는 것도 어렵다”며 “그러다보니 전면적으로 국가가 CBDC를 선도하는 게 오히려 쉽다. 중국이 신용카드를 건너뛰고 위챗·알리페이로 바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원리”라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카드·송금 등 기존 금융 시스템이 너무 잘 돼있기 때문에 CBDC가 들어온다고 해도 국민들이 더 좋은 가치를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어느 정도로 편의성을 제공해야 국민이 CBDC를 쓸 수 있을까 부담이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은행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라고 부연했다.
김 본부장은 최근 가상자산 시장이 폭락한 가운데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은 앞으로 더 확대될 거라고 내다봤다. 그는 “중국은 이미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서 CBDC 시범사업에 도입했고, 미국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내린 이후 CBDC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각 나라는 나름의 특성에 따라 중앙화된 디지털화폐를 사용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CBDC가 당장 도입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CBDC를 빨리 진행하는 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본다”며 “몇년 안에 진행된다 하더라도 현금과 공존하는 과도기 자체는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승희 기자
h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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