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세계 속 우리 문화재]겸재 정선 화첩을 찾아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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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봄, 파독(派獨) 광부 출신 독일 유학생 유준영(왼쪽 사진·이화여대 명예교수)은 쾰른대 도서관에서 '금강산에서(In den Diaman tenbergen Koreas)'란 책을 읽게 됐다.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장이었던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1870∼1956) 신부가 1927년 쓴 책이었다.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생활한 선 신부는 화첩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같은 해 10월 22일,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정선 화첩 반환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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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서원대 교수
1973년 봄, 파독(派獨) 광부 출신 독일 유학생 유준영(왼쪽 사진·이화여대 명예교수)은 쾰른대 도서관에서 ‘금강산에서(In den Diaman tenbergen Koreas)’란 책을 읽게 됐다.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장이었던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1870∼1956) 신부가 1927년 쓴 책이었다. 책에는 놀랍게도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의 그림 3점이 실려 있었다. 한국 미술사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던 유준영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1975년 3월, 유준영은 혹시 정선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틸리엔 수도원을 찾았다. 수도원에는 실제로 정선의 그림이 있었다. 그것도 한두 점이 아닌 21점을 수록한 화첩이었다. 1925년 한국을 방문한 베버 신부가 금강산을 기행하고, 정선의 그림을 수집해 화첩으로 꾸민 것이었다. 그해 12월 유준영은 국내 학술지를 통해 이 사실을 알렸다.
1991년 경북 칠곡 왜관수도원의 선지훈(오른쪽 사진 오른쪽) 신부는 독일 뮌헨대로 유학을 떠났다.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생활한 선 신부는 화첩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수도원 측에 정선 화첩의 한국 반환을 조심스레 요청했다. 조금씩 반환 논의가 진척됐고, 2005년 오틸리엔 수도원의 큰 결단을 이끌어냈다.
같은 해 10월 22일,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정선 화첩 반환식이 열렸다. 정확히 말하면, 영구대여 계약 체결식이었다. 오틸리엔 수도원은 왜관수도원에 영구대여하는 형식으로 우리에게 화첩을 돌려줬다. 이날 독일의 한 신문은 ‘한국의 영혼의 한 부분이 돌아가다’라는 제목으로 행사를 보도했다. 10월 29일 선 신부가 직접 화첩을 들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정선의 그림 21점이 80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선 신부의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문화재청은 2022년 12월 8일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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