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동안 자식 버린 母, 아들 실종되니 보상금 2억 내놓으라고…”

지난해 1월 23일 경남 거제 인근 바다에서 어선 침몰 사고로 실종된 선원 고(故) 김종환 씨의 누나 김종선 씨는 54년 만에 80대가 된 친모를 만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들을 잃은 슬픔보다는 보상금을 받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김종선 씨는 2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두 살, 세 살 될 때까지 내가 키워놨는데 왜 내가 보상 권리가 없냐’는 말을 듣자마자 저는 그 사람(친모)은 인간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김종선 씨의 남동생인 고 김종환 씨는 당시 어선 침몰 사고로 실종됐다. 이후 김종선 씨 앞으로 유족 급여와 행방불명 급여, 장례비 등으로 2억 3776만 원 지급이 확정됐다. 그런데 남매가 어린 시절 연락이 끊긴 친모 A 씨가 살아 있고, 친모에게 우선적으로 수령권이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선원법 시행령 29조 1항에 따르면 유족 범위는 선원의 사망 당시 그에 의해 부양되고 있던 배우자(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던 자를 포함한다)와 자녀, 부모, 손 및 조부모로 돼 있다. 친모에게 돈을 내어줄 수 없었던 유족들은 주민등록상 미혼이었던 김 씨가 사고 직전 6년간 여성과 동거하며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김 씨와 사실혼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여성과 주민등록상 같은 주소에 거주한 적이 없어 사실혼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결국 선원법 시행령 규정에 따라 A 씨가 보험금 등을 수령하게 됐다.

보험금 수령을 위해 A 씨가 나타나자 김종선 씨는 “어머니 자격이 없다”며 A 씨에 대해 보상금 지급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이에 A 씨가 다시 소송을 걸었다. 1심에서는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김종선 씨는 “저희는 54년 동안 엄마가, 그 사람이 살아 있는지 몰랐다”며 “친부는 어릴 적 돌아가셨고 친모는 동생이 2~3살 정도가 됐을 때 집을 나갔다”고 하며 이들을 수십 년간 부양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 할머니가 우리에게 ‘너희 엄마, 아빠는 다 죽었다’고 해서 우리는 ‘엄마’라는 단어를 몰랐다”고 덧붙였다.

A 씨가 가족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김종환 씨가 실종된 지 13일 만이었다. 김종선 씨는 “54년 만에 모습을 보인 친모는 만나자마자 ‘내가 왜 보상받을 권리가 없느냐’고 하더라”며 “조의를 표하거나 안타깝다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종선 씨는 “제가 지금 생각해보니 동생에 대해 다 알아보고 온 것 같다”며 “동생이 미혼이라는 걸 알고 자신들이 보상금을 받을 1순위라고 하더라”고 했다.

진행자는 “가수 구하라 씨가 사망했을 때 이 같은 문제로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다”며 “구하라 씨 역시 20년 넘도록 단 한 번 연락이 안 되던 생모가 찾아와서 그 상속금을 다 가져가겠다 해서 논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종선 씨는 “아직까지 구하라법이 통과 안 됐다”며 “그래서 법정 판결이 지금 이렇게 나와 있다”고 했다.

양육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모에게 자녀의 재산 상속을 제한하는 민법 개정안(구하라법)은 2019년 가수 구하라 사망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구하라 사망 이후 20년간 연락이 끊겼던 친모가 구하라가 소유했던 부동산 매각 대금의 절반을 요구하자, 구하라 친오빠가 이를 막는 법안을 청원했다. 20대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관련법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김종선 씨 가족들은 1심에서 패소했지만 항소할 예정이다. 김종선 씨는“끝까지 할 것이다”며 “우리 같은 사람이 또 없다고 볼 수 없다”고 계속 싸울 것이라 했다.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