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열진통제 원료 80%가 중국산…한국도 발등의 불 [중국發 감기약 대란]
중국 오가는 보따리상들 사재기 극성
긴급생산·약가인상·국산화 등 대책 시급
“코로나가 벌써 3년째인데 해열제 구하려면 여전히 힘들어요. 사재기라도 해야 하나 싶어요.”
지금도 해열진통제를 구하려면 여러 약국을 오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코로나 확산세에 독감환자까지 급증하면서 감기약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이 아니다. 국내 해열진통제 성분 원료의 8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중국이 수출 제한 등을 하게 되면 국내에선 그야말로 해열진통제 비상이다. 코로나·독감환자로 수요는 급증하는데 공급마저 차질이 생기면 그땐 국가적 재난으로 비화될 수 있다.
이미 중국 내에선 해열진통제 사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고, 해열진통제 품귀 현상이 아시아 곳곳으로 확산 중이다. 국내에서도 하루빨리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세트아미노펜 부족 현상 심화=최근 코로나뿐 아니라 감기환자까지 급증하면서 대표 해열진통제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해열진통제다. 발열이나 통증을 완화하는 데에 쓰인다. 대표적인 감기약 성분으로, 아세트아미노펜 단일 성분으로 쓰이거나 다른 원료와 함께 감기약으로 쓰인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약품 중엔 ‘타이레놀’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아세트아미노펜의 대부분을 중국 제조에 의존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원료의약품등록(DMF) 공고에 따르면, 등록된 아세트아미노펜 113건 중 중국에서 제조되는 원료가 90건으로 80%에 달한다.
만약 중국에서 아세트아미노펜에 대한 수요가 급증해 수출이 제한되기라도 하면 국내에서 감기약 구하기가 어려워지는 구조다.
지난해 요소수 사태나 최근 제설제 상황과도 유사하다. 사실상 전량을 중국 생산에 의존하던 요소수는 중국의 요소 수출 제한 조치가 벌어지자 일순간 국내에서 품귀대란이 벌어졌다. 일반 경유차 운전자는 물론 화물차까지 비상이 걸려 물류대란으로도 확산됐다.
국내 제설제 공급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수입량의 99.46%가 중국산이다. 최근 중국산 염화칼슘 가격이 t당 7만원대에서 30만원대로 급증하면서 국내에서도 제설제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건 아니지만 시장 가격경쟁 등에 밀려 중국에 수입을 상당수 의존하다가 중국으로부터 공급이 어려워지면 일순간 품귀 현상이 벌어지는 식이다. 아세트아미노펜도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될 수 있다.
▶중국발(發) 감기약 대란에 이미 아시아 곳곳도 비상=이미 조짐은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중국 내 코로나가 크게 확산한 데다 중국 정부도 방역을 완화하기로 결정하면서 중국 내에선 해열진통제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코로나정책 완화를 발표했다. 최근 중국 내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면서 치료에 비상이 걸렸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베이징 등 대도시 화장장이 24시간 가동되고, 영구차 줄이 줄지 않는다는 목격담 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중국 주요 도시마다 이미 감기약이 동 났다는 외신 보도도 있다.
그 여파는 인근 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 내 감기약이 부족해지면서 외국에 거주 중인 가족이 대량 구매하거나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상이 감기약을 사재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에선 SNS 등에서 감기약 암시장도 형성돼 해열제 등을 거래하는 것으로도 전해졌다.
일본 외신에 따르면, 이미 일본 도교시내 곳곳에선 감기약을 대량 구매하는 중국인 고객이 줄을 잇고 있으며, 도쿄 내 약국에서 상당수 감기약 품절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에 1인당 2개까지만 판매 제한을 두는 약국도 늘고 있다.
일본뿐 아니라 홍콩, 태국, 싱가포르, 대만, 호주 등에서도 감기약을 대량 구매하는 중국인 고객이 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국내 여파도 초읽기, 시급히 대책 마련해야=국내에서도 해열진통제 수요는 증가세다. 이에 이미 국내에서도 시내 곳곳 약국에선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 제제와 소아용 해열제 등이 품절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워낙 코로나와 감기환자가 많아지다 보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만약 중국에서 들여오는 원료에 문제라도 생기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제약사들에 긴급생산, 약가 인상 등을 추진하며 감기약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노력 중이다.
정부는 앞서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 650㎎(총 18품목)의 약가를 정당 50~51원에서 70원으로 올리고 긴급생산 명령을 발동한 바 있다. 이렇게 아세트아미노펜의 가격이 인상된 이후 제조·수입사의 공급량은 11월 넷째 주 1253만정에서 12월 첫주 3170만정으로 증가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달부터 제조·수입사의 총 공급량은 애초 집중 관리기간 목표 수준인 주당 1661만정을 상회하고 있다. 이런 공급 추세가 지속된다면 수급 문제가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사로선 단가가 높은 다른 제품 생산 대신 단가가 낮은 아세트아미노펜을 생산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중국에 의존하는 원료비율을 낮추고 국내 공급률을 높여 자급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수·손인규 기자
iks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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