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와 약자가 만나면 '불법'이 되는가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2022. 12. 2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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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안전과 죽음 사이, 화물 투쟁 연속 기고 ③

[미디어오늘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의 파업을 '북핵' 위협에 빗댔다.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는 국민이 아니라고 선언한 대표적 방증이다. 정부는 화물 노동자의 안전과 생계의 불안을 먹잇감 삼아 노조혐오 여론전과 공안 몰이에 나섰다. 국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시장 원리에 전적으로 맡겨 생명안전을 수호하는 국가 본연의 임무를 방기하겠단다. 여기, 국가 책임은 실종됐다.

안전운임 제도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한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한 정부의 총공세는 '법과 원칙'에 입각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검사 출신 대통령이 '무법천지'의 구현자가 됐다. 두 차례에 걸친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 공정위원회를 동원한 신종 노동탄압 수법, 파업권을 무력화하는 손배소 추진과 파업에 대한 '사회 재난' 규정, 노동 후진국을 감추기 위한 국제노동기준의 폄훼 등 사회적 논란을 낳았다. 끝나지 않는 화물연대 투쟁을 통해 모두가 안전한 사회, 노동자 파업을 존중하는 보편타당한 가치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기고한다. - 편집자 주

윤석열 정부의 '재난=파업 레퍼토리'

화물연대가 파업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분개했다. '불법 엄단' 운운은 그렇다 치자. 그동안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노동자 여러분들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에 우리 정부는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라는 정권은 없었으니까. 다만 파업을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대응하겠다는 것은 새로웠다.

이 정부와 보수여당이 품고 있는 세월호 참사의 기억은 '아픔'과 '반성'이 아니라 '분개'였고 '적대'였구나. 이태원 참사로 자신들에게 향한 비난 여론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 아니라, 되받아쳐야 할 만큼 억울한 것이었구나. 무엇이 되었건 이 정부가 작심한 것은 파업을 일삼는 무리들과 일반 국민들을 갈라내어,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듯이 파업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끊어내는 것이다.

누구의 입을 빌리는 대신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나서서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자신이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는지 너무나 투명하게 드러나 천진난만해 보이기까지 하다.

윤석열 정부의 '재난=파업 레퍼토리'는 기업의 적대적 욕망의 투영이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생산과 물류가 멈추는 것 자체가 기업의 입장에서는 가장 커다란 재난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태원 참사로 윤 정부의 힘이 약화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윤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노동'의 전면적인 '개혁'이 이제 첫 삽을 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1월29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운송을 거부하고 있는 벌크시멘트수송차량(BCT) 운송사업자와 차주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이 발동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중대재해법의 시행령을 개정해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완화하고, 미래노동시장연구회라는 전문가집단을 앞세워 전면적인 노동시장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이 마당에 이태원 참사로 인한 정권의 약화는 그야말로 재난상황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윤석열 정부는 지금의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를 노동조합의 책임으로 돌리는 기묘한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IMF 위기 이후 역대 정부는 구조조정으로 인력 감축을 일삼으며 실질임금을 억제해왔고, 비정규직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왔다. 일상적인 구조조정에 맞서 노동조합은 기존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것에 집중해 왔다.

그 결과 그나마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덜 빼앗겼고, 노조가 없는 노동자들은 더 많은 희생을 감수했다. 어떤 노동자도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윤 정부는 노동 내부의 불평등 심화를 노동조합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과연 현재의 임금불평등 문제의 핵심이 호봉급을 받고 있는 13.7% 노동자의 이기적인 특권인가, 아니면 전체 임금노동자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800만명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노동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법적 보호에서 배제되어 합법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하는 현실에 있는가.

▲단식 농성 중인 이봉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 사진=공공운수노조 유튜브 캡쳐

권리를 특권으로 몰아세워…갈라치기

일부 지식인들의 '정부도 문제지만 노동조합도 문제다'라는 식의 비판은 사회적 갈등에 대한 실천적 개입이라기보다는 훈수나 관전평에 가깝다. 그런 비판은 잠시 넣어두시라. 비판은 언제나 사회적이고 정세적 맥락 위에 위치 지어진다. 지금 필요한 비판은 윤 정부의 의도적인 '갈라치기'와 노동자의 정당한 목소리를 특권으로 몰아세우는 반헌법적인 노동권 불인정을 향해야 한다. 또 윤 정부의 '노동개혁'이 노동의 불평등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짚어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진정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면 당연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권리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를 중심에 두면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하고, 일을 시키는 모두가 사용자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것이 노조법 2·3조 개정의 요구다. 장시간 노동이 야기한 저임금 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들이 나와야 한다.

아울러 안전운임제가 화물노동자 뿐 아니라 물류, 운송 노동자 전반으로 확대되는 길을 열어야 한다. 임금체계 전반을 뜯어고치기 위해서라도 노동조합과 대화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권리투쟁을 귀족노조의 특권으로 몰아세우는 것부터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지금 '약자'와 '노동조합'을 갈라치면서 약자와 약자가 만나면 '불법'이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시민들에게 보내고 있다. '약자들은 말하지 말고 행동하지 말라. 그러면 내가 온정을 베풀겠다'는 듯한 제스처는 법 위에 군림하는 주권자의 모습과 닮아있다.

미국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가 말했듯이 '온정주의 권력'은 온정을 베풀면서 강화된다. 권력이 행사되려면 베풀어진 온정을 받는 집단은 '취약집단'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순간, 약자와 약자가 만나 노동조합을 만드는 순간, 이들은 말을 잃어버린 약자들로만 남지 않는다. 노동자가 자신의 취약한 처지를 사회적으로 알리는 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온정을 베풀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는 시민으로서 자신의 온당한 권리를 행사하려는 것이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고 삶을 영위할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주장을 하려는 것이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과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파업은 '우리를 보호해 달라'가 아니라 '우리의 권리를 회복하라'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에 힘을 싣는 사회와 정부만이 노동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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