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프리랜서 아나운서 해고한 UBC에 "위법한 해고 맞다"
프리랜서에게 기상캐스터·아나운서·라디오·리포트·회사 업무 등 지시
UBC, 지난해 7월 울산지노위 "위법 해고" 판정에 불복
같은 해 8월 중노위에도 '재심' 신청했으나 기각당해
[미디어오늘 박서연 기자]
기상캐스터와 아나운서·취재기자·라디오 진행·회사행사 업무 등 울산방송(UBC)과 관련한 여러 일을 수행한 프리랜서 아나운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지난 16일 서울행정법원 제11부는 UBC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UBC) 패소로 판결했다. UBC는 판결문을 송달받은 날부터 14일 안에 항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UBC는 아직 항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4월4일 UBC는 4년 넘게 일한 이미연(31·가명)씨를 해고하면서 해고통지서조차 주지 않았다.
앞서 2015년 12월10일 이씨는 UBC 보도국 소속 '프리랜서 기상캐스터'로 입사했다. 이씨는 지난해 7월6일부터 뉴스 진행 아나운서로 직무가 바뀌었다. 기상캐스터라는 직무가 없어지자, 아나운서 역할을 맡게 됐다. 그는 기상캐스터와 아나운서 업무를 하면서 라디오 진행, 리포트 제작(취재 및 기사 작성), 프로그램 출연, 회사 행사(UBC 글로벌 기자단, UBC 아카데미 3기) 등 업무를 수행했다. 이 같은 업무에서 매번 상사의 지시가 있었다.
'대담도 앵커멘트 제목 적어 완성해주세요' '섭외하시면 될 듯요' '이번주 요로결석 관련 리포트하면 될듯해요' '섭외하면 될 겁니다' '이 사람 인터뷰하면 어떨지 해서요' '병원에 부탁해 환자도 한 명 섭외하면 좋겠네요' '도입부에 환자 이야기로 풀면 좋아요' '미리 동향 알릴 때는 지금처럼 카톡으로 주면 내가 국장에게 전달할게요' '당일 취재계획 올릴 때만 기사검색에 올려줘요' 등. 당시 이아무개 취재팀장이 이씨에게 한 말들 일부다.
이에 지난해 5월4일 이씨는 UBC를 상대로 울산지방노동위원회(울산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서를 제출했다. 울산지노위는 지난해 7월1일 이씨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인용했다. 울산지노위는 “이 사건 근로자는 사용자와 사용·종속 관계 아래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 또 이 사건 사용자가 이 사건 근로자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한 것은 해고에 해당하고 서면통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UBC는 이에 불복해 지난해 8월6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 신청을 했다. 그러나 중노위 역시 지난해 11월11일 울산지노위와 같은 이유를 들며 UBC의 재심 신청을 기각했다.
UBC는 중노위의 재심 신청 기각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법원의 판단을 받기로 했다. UBC는 “이씨는 UBC와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하고 독자적인 업무를 수행했으므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 당사자 간 합의로 계약이 해지됐으므로 해고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16일 재판부 역시 이씨의 근로자성이 인정된다는 판단을 내놨다. 재판부는 “원고(UBC)는 이미연(가명)과 사이에 근로계약서뿐 아니라 위임계약서도 작성하지 아니한 채 구두로 참가인에게 업무를 지시해 수행하도록 했다”며 “또 이씨는 기상캐스터, 뉴스앵커, 라디오 진행자, 취재기자 등의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는데, 이는 모두 원고가 이씨에게 그와 같은 업무를 제안한 데에 따른 것이다. 위와 같은 사정들은 모두 원고가 이씨보다 경제적·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었음을 뒷받침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수행했던 뉴스 진행 업무의 내용은 UBC의 정규직 아나운서와 특별히 다른 점이 없었다”며 “이씨가 취재업무를 하면서 이아무개 팀장과 나눈 대화의 내용에 비춰 이씨는 이아무개 팀장과 대등한 입장에서 상호 업무 협조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아무개 팀장이 이씨의 취재 활동에 어느 정도 지휘·감독을 한 것으로 봄이 옳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업무를 수행하면서 근무할 장소를 직접 정할 수는 없고 UBC가 이씨에게 사무실이나 사물함, 분장실 자리 등을 배정해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며 “또 스튜디오 등 공간은 원고 소유일뿐이고 이씨 별도로 자신의 자본을 투자하거나 장비를 갖춰야 했던 것은 아니다. 한편 참가인은 취재를 위해 밖에서 근무해야 할 경우 보고를 해 UBC의 감독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이씨가 프리랜서 신분이지만 외부 업무를 자유롭게 하지 않았던 점도 짚었다. 재판부는 “이씨가 UBC 외 다른 방송사의 업무를 하는 등 별도로 자신만의 다른 업무를 함께 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오히려 이씨는 대가를 받지 아니하고 시보를 녹음했고, UBC의 비상연락망에도 기재됐던 점에 비춰 이씨는 UBC의 직원 중 일부로 종속된 형태의 업무를 수행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씨 측 소송대리인인 정일호 변호사(법률사무소 시선)는 미디어오늘에 “이씨는 UBC에서 5년가량 근무했고, 회사의 필요나 지시에 따라 기상캐스터, 아나운서, 라디오 진행, 취재 등 다양한 업무를 했다. UBC 회사 행사 등도 참여해 회사 업무를 수행했다”며 “그렇게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이씨를 근로자로 인정하기 그렇게 힘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이어 “현재 UBC는 이씨를 복직시켜 노동위의 명령을 이행한 것처럼 하고 있지만, 실제로 근로 시간을 대폭 줄였고 그 결과 이씨의 임금이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UBC도 이씨를 차별하지 말고, 회사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받아주고, 함께 노력할 대상으로 인식했으면 바람”이라며 “UBC뿐 아니라 방송국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을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 나쁜 관행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번 사건으로 그러한 관행이 줄어드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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