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1천 명 악의 마음을 읽어온 권일용 프로파일러에게 듣다

심영구 기자 2022. 12. 2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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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우재가 만난 일곱 번째 '지식인싸'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지식인싸’를 만나는 <인싸이팅>, 일곱 번째 손님은 ‘국내 1호 프로파일러’로 불리는 권일용 교수야

사람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해내는 전문가 ‘악의 마음을 읽는 자’ 권일용 교수의 성장키워드는 뭘지, 우리가 그의 마음을 읽어보자고~

뭣이 중한디~ 계획은 없었다

‘흉악범죄의 프로파일링을 맡아 대한민국에 프로파일링 기법을 현장에 정착시킨 인물’.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무색할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어.
“종교가 가톨릭이라 신부가 되어서 남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죠.” 

차분한 말투와 근엄한 몸가짐, 지금 모습이 익숙해서일까. 쉽게 그려지지 않는 ‘청년 권일용’의 꿈이었어. 그럼 어떻게 하다가 프로파일러가 된 걸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결심해서 된 일이 아니에요. 집도 어려웠고 2대 독자에 장남이라 경찰이 되려고 했죠.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했을 때 강력계 형사로 시작을 했어요.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던 무렵이어서 시경 소속의 형사 기동대가 있었는데 현재 광역수사대의 전신이에요. 거기서 근무를 마치고 CSI가 됐어요. 자원이 아니라 발령이 난 거죠.”

원한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고 해. 그게 시작이었어.  

“처음엔 막막했죠. CSI(현장감식요원)에 대한 지식도 없고 경험도 없는데, 해보니까 재밌고 잘 되는 거예요. 정말 운이 좋게도 가는 곳마다 지문 채취나 DNA 채취를 해내서 실적이 너무 좋았어요.”

증거 수집에 필요한 재능은 어떤 걸까 궁금했어. 남모를 노하우라도 있었던 걸까.

“예를 들면 CSI 처음 시작했을 때 지문이 현장에 가니까 딱 보여, 눈에. 그런데 붓으로 싹싹 해봤더니 이게 지워져 버렸어요.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이놈을 잡을 수 있었는데 내가 능력도 없고 실수해서 채취를 못 했구나, 그래서 한 달 동안 똑같은 재질의 나무를 구입해서 내 지문을 찍어놓고 연습을 했어요. 다른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으로 그 범인을 잡았는데 그때 놓쳤던 범인이더라고요.”

오기(傲氣). 사전적 의미는 ‘능력은 부족하면서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지만 노력(努力: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씀)과 같은 말처럼 들렸어. 

“그래서 이게 어떤 오기는 결국은 내가 이놈, 범죄자와 내가 싸우는 오기지만 그 배경에는 이 사건을 저지른 범인 때문에 고통을 겪는 피해자들이 눈에 보이잖아요. 이게 내가 할 일이구나 이런 감정을 유지하게 되는 힘이 되는 거죠.”
 

경험은 또 다른 경험을 낳고

“그러고 보니까 거기서 특진을 했어요. 다른 부서에 가겠다고 그랬더니 그냥 해. 그렇게 한 8년 정도 했죠. 그때 다른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야, 이 범죄자들이 똑같이 절도범인데 사람에 따라서 행동하는 게 다르구나.”

눈앞에 놓인 일에 진심을 쏟다 보니 물 흐르듯, 어느새 새로운 수사 방법을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거야. 

“프로파일링은 원래 행동분석이에요. 침입의 방법도 다르고 물색하는 방법도 다르고 도망갈 때 증거인멸 방법도 다 달라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비슷한 애들이 있다는 거예요. 이거 흥미로운데? 만약에 지문이 안 나와도 행동만 보면 어떤 애구나 알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프로파일링(사건 현장에 남겨진 증거나 범행 패턴을 분석해 범인의 심리상태나 경향 등을 특정 지어 범인의 프로필을 뽑아내는 수사법)이 지금에야 상식이 됐지만 당시 국내에선 용어조차 생소한 낯선 수사기법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그의 직감은 남달랐던 듯해. 

“현장에 증거물이 줄어들고 계획범죄가 생기고 나쁜 놈들이 이렇게 막 변화하니까 그러면 한국 경찰도 FBI처럼 만들어 보자라는 분위기가 있었죠. 누군가 해야됐어요. 원하지 않게 또 발령이 난 거죠. 너는 오늘부터 한국 경찰의 프로파일러야. 경험도 없고 누구한테 물어볼 사람도 없어 고민이라 했더니 한 달간 스토킹처럼 전화를 하더라고요.” 

그렇게 등 떠밀려 ‘1호 프로파일러’가 되었어. 조금 김빠지는 스토리라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정표 없는 길을 묵묵히 내딛는 그 한 걸음, 걸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물어볼 사람이 없고 이 업무 자체가 물어봐서 될 일도 아닌 거 같고, 그래서 뭘 해야 될지 모르는 막막함...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느냐 두려움 이것도 굉장히 힘들었었죠. 두렵고 막막해서 FBI자료들을 찾아보는데 그마저도 안 맞아요. 한국의 범죄 유형하고. 국가별로 문화도 다르고 범죄 동기가 되는 것도 다르고 특히 범행 도구가 다르잖아요. 그냥 총 쏘고 가버리는 현장들이고 한국은 굉장히 많은 다량의 피가 있고. 그래서 분석을 하는 기법도 달라요.”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었을 것 같아. 하지만 결국은 해냈다는 것이 중요하겠지. 목표한 바 없는데 국내 손꼽히는 프로파일러로 인정받게 된 건 특별히 프로파일링을 ‘잘하는’, 어떤 ‘프로파일러 재질’을 타고난 탓일까.

“피해자의 고통을 내가 공감할 때 동기가 형성되잖아요. 그러면 어떤 범죄자를 만나는, 어떤 막연함과 두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걸 극복할 수 있는 건 피해자의 고통을 내가 공감할 때 목표가 생겨버리기 때문에 상황을 지배할 수 있지 않나. 그렇게 잔혹한 현장을 어떻게 보느냐 그러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반드시 밝혀야되겠다는 생각으로 보면 잔혹함보다는 행동이 보이기 시작해요.”  

냉철한 시각으로 사건 현장을 분석하는데 ‘미친다’면 결국 범인을 잡는 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그 일념으로 꾸준히 노력해 온 것이 전부였다고 해.  
 

불안이 영혼을 잠식할 때

프로파일러 17년, 경찰 생활 합쳐 28년 6개월여의 근무. 십수 년 잔혹한 현장을 보다 보면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아.

“동료들하고 같이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서 굉장히 많이 극복이 됐어요. 트라우마라고 하는 것이 어디 가서도 할 수 없는 얘기들인데 우리는 같이 겪었잖아요. 나 혼자 있었던 거 아니야, 차를 마시면서 너도 같이 있었지 수다를 떨면서 그 마음을 공감하는 거예요. 그래, 너 힘들 때 나 힘들 때 있잖아. 니가 되게 고마웠다. 한 시간 정도 하고 나면 세로토닌이 분비가 돼요. 행복한 물결처럼.”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사회적 유대관계가 실제 마음을 안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해. 경험해 본 바 믿고 있었어. 그리고 이건 본인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야. 


“천 명이 넘는 범죄자를 만나보니까 가족들과 살고 있어도 심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었어요. 사회 유대관계를 단절해요.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을 봐도 내가 사는 사회에 같이 사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유대관계가 단절돼 버리면 화났을 땐 내가 누굴 때렸어, 왜 미안해 해야 되지? 내가 사는 세상과 네가 사는 세상은 다르잖아. 다 고립된 상태에서 나오는 거라서 저는 주의 깊게 봐야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는 자주, 우리 사회 안에서 괴물이 만들어진다는 걸 잊는 거 같아요. 불안에 흔들리고 스트레스에 취약하면 누구도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거든요. 꼭 내가 무슨 말을 하고 풀어야지 강박관념을 가지지 말고, 나는 갈 데가 있고 난 업무가 끝나도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 라는 생각만 있어도 이게 조정이 돼요. 감정이 나의 고립감을 벗어나게 하는 건데 똑같은 역할을 해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했어도 그것을 극복하는 건 내가 누구와 함께 있다는 공동체 의식, 이것이 있다면 당혹스럽고 힘든 상황들을 지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악인’의 탄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내 주변, 내 옆의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는 생각을 가져주길 바랐어. 한 치 앞날을 알 수 없어 불안함을 느끼는 청년들에게 프로파일러가 아닌 인생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없을까.

“사실 저는 어느 순간 갑자기 결과물이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늘 젊은 시절은 불안하고 두렵고 미래가 불분명하고 항상 내가 뭔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발목을 잡는 건 생기고,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내가 지금 목표로 한 게 뭔지 자기가 잘 모를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순경이 되고 CSI를 하면서 특진을 하고 범인을 많이 잡아서 유명한 경찰이 될 거야, 이런 게 아니었어요. 현장에서 눈앞에 보이는 이놈을 잡는 게 쌓이고 쌓여서 CSI로 인정을 받았잖아요. 우리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현재의 내 발밑을 믿어야 돼요. 그런데 내 발밑을 내가 못 믿어. 이걸 디딜까 말까 되게 고민을 해요. 인생은 그냥 선택의 연속일 뿐이다, 내가 간 길이 선택의 결과이지.”

원대한 포부나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청년들도 있을 텐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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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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