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한기와 3년째 라니냐가 몰고 온 강추위
12월 들어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가 이어지고 있다. 북극에서 찬공기가 남하하는 데다 춥고 건조한 기후를 부르는 라니냐 현상이 작용한 결과다.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온난화로 지구 평균 기온이 오르며 지구촌 곳곳에서 이상한파가 더 자주 나타나는 등 이상기후가 현실화하고 있다.
● 북극발 찬공기와 라니냐가 강추위 몰고왔다
올 겨울을 포함해 최근 몇년간 찾아온 한파와 잦은 폭설의 원인은 북극에서 지속적인 찬공기 유입이다. 올해는 11월까지 낮기온이 20도에 근접할 정도로 포근했다가 급작스럽게 추워진 것은 북극 소용돌이의 세기가 갑자기 변한 탓이 크다. 북극 소용돌이는 일정한 주기로 강약을 되풀이하는데 세기가 셀 때(양의 북극진동)는 찬공기가 제트기류에 갇혀있다가 세기가 점차 약해지며(음의 북극진동) 찬공기가 북극을 벗어나게 된다.
박미영 기상청 기후예측과 사무관은 "올해 12월 북극진동이 바뀐 데다 우랄산맥 부근 고기압성 편차로 찬공기가 한반도로 흘러들어올 수 있는 길이 생기며 한파가 찾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이번 한파가 올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다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게 올해 3년째 지속되고 있는 라니냐다. 라니냐는 무역풍이 강해지며 적도 태평양 지역에서 해수면 온도가 낮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는 엘니뇨의 반대 현상으로 엘니뇨와 라니냐는 일정 주기로 번갈아 나타난다. 이를 엘니뇨 남방진동(ENSO)이라고 한다.
라니냐의 진동 주기가 명확히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중립을 되찾는데 이런 패턴이 무너졌다. 2020년 9월 시작된 라니냐는 벌써 3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번 세기 처음으로 라니냐가 3년 연속 발생하는 '트리플딥'이 발생한 것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기후예측센터는 12월 8일 라니냐가 내년 2월까지 지속될 확률은 75%, 3월까지 지속될 확률을 약 60%로 예측했다.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는 지구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니냐로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떨어지면 서태평양 대기순환이 바뀌며 태평양 인근 지역에 기상이변이 생긴다. 동남아시아와 호주, 아프리카 남동부에는 태풍과 폭우가, 미국 중서부와 페루, 칠레 등 중남미 서부에는 한파와 가뭄이 발생한다.
통계적으로 라니냐가 발달한 시기 한반도의 겨울철 날씨는 기온은 낮고 건조한 경향을 보인다. 지난해 겨울에도 초겨울 한파가 매서웠고 겨울철 강수량은 1973년 관측을 시작한 이후 가장 적었다. 박 사무관은 "라니냐가 2년 연속 나타나는 것도 드문 현상인데 3년째 지속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기후는 복합적이기 때문에 올해와 지난해 발생한 한파가 라니냐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요인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라니냐가 3년째 발생하는 트리플 딥의 경우 전 세계가 이번 세기 처음 겪는 일"이라며 "아직까지 연구 결과나 구체적인 영향에 대한 분석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는 모든 기후현상에 영향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앞으로 이상기후 현상이 더 자주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기온이 올라갈수록 한반도에는 더 강력한 추위가 찾아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북극의 수온이 높아지면 찬공기의 소용돌이를 감싸는 제트기류가 약해지며 찬공기가 남하한다. 북극의 평균 기온은 1971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3.1도 상승했으며 북극의 기온 상승 속도는 전 세계 평균치보다 약 8배 빠르다.
트리플 딥 라니냐도 마찬가지다.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8월 트리플 딥이 최소 올해 말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 결과와 함께 "이제는 모든 자연적인 기후현상이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의 맥락에서 발생한다"며 "지구의 기온을 높이고 극단적인 날씨와 기후를 악화시키며 계절강수량과 온도 패턴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라니냐 자체는 이상기상현상이 아니지만 이번 트리플 딥 라니냐의 경우에도 패턴이 기존과 다르다는 점도 눈에 띈다. 1950년대 이후 발생했던 두 번의 트리플 딥 라니냐는 강력한 엘니뇨 이후에 발생했지만 이번의 경우 발생 전 강력한 엘니뇨 현상이 없었다.
지난해와 올해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는 이런 현상이 기후변화에 따른 것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지만 장기적인 경향성을 파악하기에는 데이터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매튜 잉글랜드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 교수팀은 지난 6월 "IPCC 보고서에 제시된 모델에는 해류와 대기 순환 사이 상호작용 등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며 "기후 데이터 분석 결과 트리플 딥 라니냐 현상이 발생할 확률이 더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ya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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