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배기 백혈병 아기, CAR-T 치료로 희망 살렸다

이순용 2022. 12. 2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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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2개월 진단, 조혈모세포 이식 후 재발해 기대여명 수개월…CAR-T 치료 ‘생명의 불씨’
전 세계 만 1세 CAR-T 치료 보고 드물었지만 적극 치료…미세 잔존암 검사에서 ‘완전 관해’
서울아산병원 임호준 교수, “CAR-T 다학제 클리닉 통해 안전하게 치료한 결과"

[이데일리 이순용 기자] 세상의 빛을 본지 불과 두 달도 되지 않은 한 아기가 지난해 7월 말 백혈병으로 진단받았다. 항암 치료를 받고 엄마의 조혈모세포까지 이식받았지만 야속하게도 백혈병은 재발했다. 기존 치료법으로는 남은 수명이 길어야 수개월….

하지만 백혈병이 재발되기 몇 달 전인 올해 4월, 때마침 백혈병에 혁신적인 치료 효과가 있다는 CAR-T 치료가 국내에서 보험 적용이 됐다. CAR-T 치료는 환자의 혈액에서 채집한 T세포에 암세포를 공격하는 물질을 붙여 다시 환자 몸에 주입하는 치료법이다.

생후 일 년 미만의 백혈병 환아에게 CAR-T 치료제를 적용한 경우가 아직 드물었지만, 아기를 살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의료진은 올해 10월 아기에게 CAR-T 치료를 시행했다. 혹여나 부작용이 발생하지는 않을지 여러 진료과 의료진이 함께 아기를 보살폈고, 결국 백혈병은 완전 관해되며 꺼져가던 ‘생명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국내 최연소 CAR-T 치료 환아 이주아 아기(여, 18개월)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서울아산병원 암병원 CAR-T 센터(주치의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임호준 교수)는 백혈병이 재발한 만 1세 B세포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 환아 이주아 아기에게 올해 10월 CAR-T 치료를 시행한 결과, 골수 검사에서 백혈병이 ‘완전 관해’되었으며, 현미경으로 보기 힘든 백혈병 세포를 검사하는 미세 잔존암 검사에서도 백혈병 세포가 0%로 측정됐다고 최근 밝혔다.

이주아 아기가 세상에 나온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지난해 7월 초 어느 날, 엄마, 아빠는 아기 얼굴과 몸에 푸르스름한 멍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소아자반증이라는 질환과 증상이 비슷했다. 특별한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나와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동네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의사는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찾아갔던 큰 병원에서조차 서울아산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엄마, 아빠는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울아산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아기의 엄마, 아빠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백혈병의 한 종류인 B세포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이었다. 지난해 7월 말 이주아 아기가 태어난 지 불과 45일 됐을 때였다.

백혈병은 우리 몸에서 피를 만들어내는 기관인 골수의 정상 혈액세포가 암세포로 전환되고 증식하면서 생기는 병이다. 정확한 발생 원인은 현대 의학에서 아직 알 수가 없다.

이주아 아기의 주치의인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임호준 교수는 먼저 항암 치료를 한 후 건강한 피를 만들어내는 조혈모세포를 엄마로부터 아기에게 올해 1월에 이식했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영유아 환자들의 경우 특히 다른 연령대 환자들에 비해 부작용이 더 나타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총 1천 1백여 건이 넘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시행해 온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의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임호준 교수팀은 아기에게 엄마의 조혈모세포를 안전하게 이식했다.

이식 후 부작용은 없었지만, 반 년 쯤 뒤인 올해 8월 백혈병이 재발했다. 조혈모세포 이식 후 재발률은 약 2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조혈모세포 이식 후 백혈병이 재발하면 항암 치료와 조혈모세포 이식을 다시 시도해볼 수는 있지만 심각한 이식 관련 부작용 발생 위험이 매우 크다.

하지만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활용해 백혈병을 치료하는 CAR-T 치료제가 올해 4월 보험 적용이 막 이뤄진 상황이었다. CAR-T 치료비가 수억 원에 달하다 보니 실제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가 거의 없었는데, 치료비가 수백만 원으로 줄어들면서 이주아 아기에게도 희망이 생겼다. 만 1세 미만의 백혈병 환아에게 CAR-T 치료를 시행한 경우에 대한 보고가 전 세계 학계에서 드물었지만, CAR-T 치료는 아기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임호준 교수팀은 올해 10월 아기에게 CAR-T 치료를 시행했다.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소아청소년신경과, 소아중환자실, 감염내과 등 여러 진료과 의료진이 협력해 CAR-T 치료제 주입 후 신경계 독성, 사이토카인방출 증후군 등 아기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면밀히 살폈다.

그 결과 CAR-T 치료 한 달 후인 11월에 시행한 골수 검사와 미세 잔존암 검사에서 백혈병이 ‘완전 관해’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현재까지도 부작용 없이 건강한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임호준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는 “환아가 조혈모세포 이식 후 백혈병이 재발했다. CAR-T 치료가 급여화 되기 전이었다면 사실상 더 이상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었겠지만, 다행히 CAR-T 치료를 시도할 수 있게 되면서 치료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면서, “국내 소아 조혈모세포 이식 5건 중 1건을 시행하면서 쌓아온 소아혈액암 치료 경험과 CAR-T센터의 다학제 클리닉을 통해 안전하게 치료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CAR-T 치료로 재발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주아가 계속 안전하게 치료받으며 지금처럼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주아 아기 아빠 이병훈 씨는 “병동에서나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을 때마다 웃음을 잃지 않고 견뎌 준 주아에게 매우 고맙다. 건강이라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는데, 항상 지금처럼 건강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매 치료 과정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었는데, 주아를 위해 헌신해주신 서울아산병원 의료진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국내 최연소 CAR-T 치료 환아 이주아 아기(가운데) 가족과 주치의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임호준 교수(왼쪽)가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순용 (sy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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