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트위터 인수가 쏘아 올린 ‘작지 않은’ 공
● 주류 언론 비판 위한 ‘트위터 해고자 연극’
● 머스크 “민주당 극단적 좌경화해”
● 인수 후 180도 돌아선 트위터
● 2024 대선 여론戰 변수로 떠오르다
트위터 해고자 인터뷰 진실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다음 날의 일이다. 샌프란시스코 시청에서 걸음으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트위터 본사 앞에 기자들이 진을 쳤다. 머스크가 휘두르는 '해고 칼날'에 맞아 쫓겨나는 직원들을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머스크는 트위터 인수에 외부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과정에서 "트위터 인수 후 인력을 대대적으로 감원한 다음, 사업을 정비하면서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실제로 트위터 인수 직후 트위터 직원 7500명 가운데 약 절반을 내보낸 것이다. 미국 회사의 정리해고는 '살벌'하다. 아무런 사전 공지 없이 해고당하는 일이 다반사다. 해고 통보를 받으면 종이 상자에 짐을 챙겨 정해진 시간 내에 나가야 한다.기자들 앞에 종이 상자를 든 젊은 남성 두 명이 나타났다. 정리해고돼 소지품을 챙겨 나온 직원들이 분명했다. 두 남성은 기자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했다. 한 남성은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취직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3년 동안 근무했다고 밝혔다. 그는 들고 있던 상자에서 갑자기 미셸 오바마 자서전을 꺼내며 말했다.
"2008년 미셸 오바마는 등장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때)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했다면요."
민주당에 비판적인 머스크가 당시 트위터를 운영했다면 2008년 11월 대통령선거에서 버락 오바마가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고, 미셸이 영부인이 돼 자서전을 내는 일도 없었을 것이란 의미로 읽힌다.
기자들은 그에게 머스크가 강조해 온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공화당 성향의 폭스뉴스를 제외하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등 민주당 성향으로 분류되는 주류 언론은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면 허위 거짓 정보와 비방·비난이 난무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해 왔다. 표현의 자유보단 허위 정보를 걸러내는 '검열'이 중요하다는 견해다.
남성은 알쏭달쏭한 답변을 내놨다.
"표현의 자유는 상장회사(public company)가 (트위터를) 운영할 때나 있는 것이죠. 한 명이 회사를 소유할 때 있는 게 아니겠죠? 나도 테슬라 자동차가 있어요. 나는 클린에너지, 기후변화, 심지어 표현의 자유까지 지지합니다만…."
이름을 묻자 라훌 리그마(Rahul Ligma)라고 답하며 스펠링까지 정확하게 밝혔다.
나머지 한 남성은 데이터엔지니어로 6년 동안 근무했다고 말했다. 이름은 '대니얼 존슨'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팀은 문제가 많았는데, 일론이 와서 해체해 버렸다"고 푸념했다. 기분을 묻자 "아주 끔찍하죠. 엿 같아요"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머스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그 역시 인도계 남성과 비슷하게 묘한 답변을 쏟아냈다.
"나는 테슬라 차주입니다. 할부금을 어떻게 낼지 모르겠군요. 나는 전반적으로 일론 머스크를 존경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한 말들은 좀 걱정됩니다. 정말 걱정됩니다. 이건 문화충격(culture shift)이에요. (지금 트위터에서) 해고되는 많은 사람은 리더입니다. (인종) 다양성 개방성, 이런 걸 중시하는 사람이 나가는 겁니다. 일주일만 지나면 완전히 다른 트위터가 될 겁니다."
표현의 자유를 강조해 온 머스크가 인수한 뒤 트위터가 어떻게 될 걸로 보느냐고 묻자 이렇게 말하면서 자리를 떴다.
"표현의 자유, 아시잖아요. 나치들이 하는 말이잖아요. 트랜스젠더 여성은 안 된다…, 뭐 이런 거. 그나저나 직장(트위터)에서 여성용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는데요. 두고 봅시다, 어떻게 되는지. 나는 내 남편하고 와이프가 기다리고 있어서 이제 그만 가야 돼요."
정리해고를 당했기 때문에 머스크에 대해 험악한 말을 늘어놓을 것으로 여겨지던 두 남성의 인터뷰는 예상과 달리 알쏭달쏭했다. 머스크를 비판하는 건지, 존중한다는 건지, 머스크 인수 이전의 트위터가 바람직한 직장이었다는 건지 아닌지,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건지 아닌지, 뒤죽박죽 인터뷰였다. 하지만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자마자 직원을 잘라내기 시작했다는 기사는 곧장 보도됐다. 언론이 망신을 당한 건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다. 인터뷰한 두 남성은 해고된 직원이 아니고, 심지어 트위터 직원도 아니었다. 주류 언론을 비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해 연극을 벌인 것이다.
이념戰에 불붙인 '머스크의 트위터'
기사를 내보낸 언론사는 정정 보도를 해야 했다. 디어드레 보사(Deirdre Bosa) CNBC 기자는 보도 당일 "당시 트위터 본사에서 (해고 직원) 리포트를 하면서 (그들이 트위터 직원인지)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다. 잘못을 후회한다"는 사과 방송을 내보냈다.
공중파 방송에 '리그마'라는 표현이 그대로 보도된 이 사건은 단순히 머스크를 비판해 온 주류 언론을 농락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해고된 트위터 직원인 척한 두 남성은 주류 언론을 포함해 진보 진영의 위선을 비꼬았기 때문이다.
라훌 리그마라고 스스로를 밝힌 남성이 "나는 심지어 표현의 자유까지 지지한다"고 언급한 부분이 주요 근거다. 민주당과 민주당에 우호적인 주류 언론이 '허위 정보를 검열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에 대한 검열을 옹호해 온 걸 꼬집은 것.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CNN 등 주류 언론은 2020년 대통령선거 때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치명적 사건이었던 아들 헌터 바이든의 뇌물 스캔들을 보도하지 않거나, 러시아의 공작이라는 민주당 측 주장을 강조하는 보도를 했다.
공화당 성향의 뉴욕포스트가 유출된 헌터의 e메일을 입수해 보도한 헌터 바이든 스캔들은 헌터 바이든이 아버지의 정치적 지위를 이용해 외국 기업들로부터 거액을 받았고, 여기엔 아버지 조 바이든도 연루돼 있다는 내용이다. 트위터는 뉴욕포스트의 기사 공유를 금지하고 계정을 중단시키는 등 민주당과 주류 언론의 검열 요구에 부응했다.
대니얼 존슨이 "트위터에 근무하면서 여성용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어서 좋았고, 나에겐 남편과 아내가 있다"고 밝힌 부분은 진보 진영의 트랜스젠더 정책을 비꼰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는 주법에 따라 모든 사업장에서 성, 인종, 종교, 국적 등의 이유뿐 아니라 성정체성을 이유로 차별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 생물학적 남성이 스스로 여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면 여성용 화장실(샤워장)을 이용하게 해줘야 한다.
라훌 리그마가 미셸 오바바의 자서전을 들어 보이며 "2008년 대선 국면에서 머스크가 트위터를 소유하고 있었다면 미셸 오바마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풍자다. 머스크는 당시 버락 오바마에게 투표했고,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2010년 4월 오바마 대통령이 머스크의 안내를 받으며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의 스페이스엑스를 시찰하기도 했다. 머스크는 민주당 성향인 자신은 변한 게 없는데, 민주당 주류가 극단적으로 좌경화하면서 공화당 쪽으로 밀려나게 됐다고 말해 왔다. 그는 2022년 11월 중간선거 때 "지금은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으니 견제와 균형을 위해 공화당에 투표해 달라"고 말했다.
리그마와 존슨은 11월 15일 머스크의 초대를 받아 트위터 본사를 방문해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사진을 찍었다. 승리의 제스처인 셈이다. 머스크는 트위터에 이 사진을 올리며 "잘못했을 때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들을 해고한 건 나의 큰 실수 가운데 하나였다. 리그마와 존슨의 복귀를 환영함!"이라고 썼다.
어제의 동지, 오늘의 적
또 트위터는 2021년 1월 6일 워싱턴 의사당 폭동 사태 직후 영구 정지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계정을 22개월 만에 되살렸다. 트위터는 폭동 사태를 조장했다는 혐의로 8300만 명에 달하는 팔로어를 가진 트럼프의 계정을 사실상 폐쇄한 바 있다. 당시 트럼프를 극도로 싫어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까지도 "거대 테크 기업이 선출된 권력자의 입을 막도록 허용하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며 반대했지만 트위터는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주류 언론과 민주당 세력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트럼프의 계정을 영구 정지했다. 트위터는 허위 거짓 정보를 유통한다는 혐의로 계정이 정지됐던 우파 성향 풍자 매체 '바빌론비(Babylon Bee)' 계정도 복구했다. 좌파 성향 매체뿐 아니라 우파 성향 풍자 매체에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줘야 한다는 게 이유다.
그러자 민주당에선 의회 차원에서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에 문제가 없는지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2024년 치러질 다음 대선에선 2020년 대선 때와 달리 트위터가 민주당에 불리하게 운영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4일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민주당 측 인사들의 말을 인용해서 "머스크가 결국 트위터를 인수해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여론을 조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혼돈의 도가니 or 자유의 광장
머스크는 과거 페이팔의 전신 엑스닷컴(X.com) 시절부터 '모두를 지배하는 온라인뱅킹 서비스'를 꿈꿨다. 머스크의 전기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2015, 김영사)엔 머스크가 인터넷은행도 없던 시절, 온라인으로 은행 업무부터 보험 업무까지 종합적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려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트위터 이용자에게 암호화폐지갑을 제공해 지불 결제를 지원하는 방식을 도입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케이틀린 롱은 비트코인 투자자이기도 한데, 그는 머스크가 비트코인으로 수수료를 거의 들이지 않고, 빠르게 소액결제를 할 수 있는 라이트닝 네크워크(lightning network)를 이용해 은행을 거치지 않는 송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비트코인을 주고받는 것뿐 아니라 비트코인을 매개로 다양한 화폐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창펑자오 CEO가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에 5억 달러를 투자하고, 투자자이자 페이팔 시절 동료인 데이비드 색스 같은 인물이 트위터 운영을 지원하는 것도 암호화폐를 이용한 글로벌 지불결제 서비스를 페이팔에 도입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머스크는 2022년 11월 12일 암호화폐 거래소 FTX 사건과 관련해 암호화폐 분야 기업가이자 투자가인 마리오 나우팔(Mario Nawfal)이 진행한 트위터 라이브 방송에 참여했다. "트위터에 암호화폐지갑을 도입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
"곧 할 계획은 아니지만 고려 대상이다. 우리는 (암호화폐지갑 도입에) 열려 있다. 당장은 트위터의 가장 기본적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트위터가 허위 거짓 정보가 난무하는 혼돈의 도가니가 될 것인지, 아니면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광장이 될 것인지, 2024년 대통령선거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 논란이 분분하다. 정치 이념 논쟁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머스크의 트위터는 미국 사회를 점점 뜨겁게 달구고 있다.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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