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It's Gucci 구찌 부활시킨 알레산드로 미켈레

김자혜 프리랜서 기자 2022. 12. 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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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다이어리

다소 올드하다고 평가받던 구찌를 쿨하고 힙한 브랜드로 만든 일등 공신.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20년간 몸담았던 구찌를 떠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혜성처럼 등장해 구찌의 아이덴티티를 새롭게 창조한 알레산드로 미켈레에 대하여.

2018 F/W 컬렉션.
"우리 각자가 가진 다른 관점으로 길이 갈라질 때가 있다. 오늘 저의 모든 사랑과 창조적 열정을 쉼 없이 바친, 20여 년간의 특별했던 여정이 끝난다. 이 긴 시간 동안 구찌는 나의 집, 입양된 가족이었다. 구찌라는 대가족을 돌보고 지지해준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진심 어린 포옹을 보낸다."

2022년 11월 24일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자신의 SNS에 업로드한 글이다. 20년간 몸담은 구찌를 떠난다는 소식이었다. 구찌의 전성기를 이끈 그였기에 갑작스러운 이별 소식에 많은 이가 놀랐다. 무명의 디자이너에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알레산드로 미켈레. 구찌와 그의 역사는 2002년부터 시작된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로마의 패션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니트 회사인 레 코파인스(Le Copains)에 입사하며 패션계에 입문했다. 이후 1997년 펜디에 입사해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중 당시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톰 포드의 눈에 띄었다. 그의 추천을 받은 미켈레는 2002년 구찌 가죽 제품 담당자로 런던 지사에 입사한다. 그렇게 구찌와 미켈레의 인연이 시작됐다.

일주일의 기적

2015 F/W 컬렉션(왼쪽). 2018 F/W 컬렉션.
당시 구찌는 파산 직전까지 내몰리며 침체기를 겪었는데, 톰 포드를 영입한 덕분에 우아하고 섹시한 이미지의 하이엔드 브랜드로 다시금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2004년 톰 포드가 떠난 후 구찌는 다시 침체기에 빠진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프리다 지아니니가 톰 포드 시절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매출이 급락한 것. 결국 프리다 지아니니와 당시 CEO였던 파트리지오 디 마르코까지 구찌를 떠나고, 지아니니의 오른팔로 일하던 미켈레도 구찌를 떠날 준비를 한다. 하지만 위기가 반전이 되는 놀라운 이야기가 여기서 펼쳐진다. 구찌의 새로운 CEO인 마르코 비자리가 미켈레에게 만나자고 한 것.

마르코 비자리는 스텔라맥카트니의 CEO를 맡은 지 2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키며 패션업계에서 주목받은 인물 중 하나다. 당시 유명 패션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네임 밸류 있는 디자이너가 맡는다는 공식이 있을 정도로 브랜드에서 유명 디자이너들을 영입하는 게 트렌드였다. 하지만 마르코 비자리는 무명에 가깝던 미켈레에게 2015 F/W 구찌 남성복 패션쇼를 맡아달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패션쇼가 겨우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파격적인 구찌의 행보에 패션 피플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 놀라움은 구찌의 2015 F/W 컬렉션 이후 더욱 커졌다. 미켈레가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완벽한 컬렉션을 준비해 선보였기 때문. 르네상스의 화려함을 담은 젠더리스 룩은 이전의 구찌와는 전혀 다른 파격적인 스타일로 눈길을 끌었다. 단 7일 만에 완벽한 쇼를 선보인 미켈레로 인해 구찌는 다시 패션계의 트렌드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남성 컬렉션을 성공리에 마친 이틀 후 구찌는 미켈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한다. 사실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끝마쳤지만 당시만 해도 우려의 시선이 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워낙 유명 디자이너들이 패션계를 주름잡고 있던 시기였기에 무명 디자이너를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한 사례는 거의 전무했다. 사람들은 구찌가 도박을 한다며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결과는 잭팟. 구찌는 미켈레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 오른 2015년 39억 유로(약 5조4000억 원)에서 2019년 96억 유로(약 13조3000억 원)까지 매출이 급성장했다.

구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다

구찌를 떠나는 알레산드로 미켈레.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구찌를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단연 '긱시크(geek-chic)’다. 괴짜라는 뜻의 'geek’과 쿨하다는 뜻의 'chic’를 합한 말로, '세련되면서 괴짜 같은 느낌이 나는 스타일’을 의미한다. 패션계는 고전적인 프린트와 컬러풀한 색감, 드레시한 의상에 테두리가 큰 뿔테안경을 쓰거나 블레이저와 타이를 매치하는 등 구찌만의 긱시크 스타일에 열광했다.

미켈레는 르네상스 시대의 '장식적인 화려함’과 '무규칙, 무시대, 무성’을 사랑한다고 밝혔는데, 그의 이런 독특한 취향은 고스란히 구찌에 표현됐다. 여성복과 남성복을 나누지 않은 젠더리스 룩, 동물과 꽃을 모티프로 한 자수 장식들은 미켈레 구찌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실제로 원단, 보석 수집광인 미켈레는 2015 F/W 첫 컬렉션의 영감을 본인이 그동안 수집한 빈티지 의상에서 얻었다고 한다.

그는 패션뿐만 아니라 마케팅 능력도 출중했다. 그중 하나가 제품 라인과 재고를 대폭 줄인 것. 구찌 오너 1세대가 사망하고 난 뒤 구찌는 상품 라인을 확장해 라이선스를 남발했다. 그 결과 명품으로서의 가치가 하락하며 흔한 브랜드가 되어버렸다. 미켈레는 이 문제를 바로잡고자 구찌의 재고를 60%가량 줄였으며, 새로운 컬렉션도 적게 출시했다. 판매하는 제품이 줄어들자 사람들은 매장에 줄을 서며 구매하기 시작했다. 워너비 브랜드로 급부상한 것이다.

2017 S/S 컬렉션.
2017년에는 영국 패션 검색 엔진인 리스트(Lyst)가 가장 핫한 브랜드로 구찌를 선정했다. 해당 사이트의 통계 결과 신발, 드레스 등 제품의 종류 검색보다 구찌라는 브랜드 이름을 더 많이 검색했을 정도라고 한다. 한때 미국의 10대와 20대 사이에서 쿨한 것을 표현할 때 "It’s Gucci"라는 유행어를 사용했을 정도로 구찌는 쿨하고 힙한 것의 대명사로 거듭났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구찌와 미켈레 사이에도 간극이 생겼다. 구찌에서는 새로운 변화를 바랐지만 미켈레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둘의 사이가 멀어졌다는 소문이 돌던 차에 구찌와 미켈레는 공식적으로 이별 선언을 한다. 현재 미켈레의 추후 거취와 구찌의 새로운 디자이너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 둘의 앞날은 짐작할 수 없지만, 구찌의 모기업 케링 CEO 프랑수아 앙리가 말한 것처럼 "미켈레와 함께한 시간은 구찌 역사상 가장 뛰어난 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구찌디자이너 #알레산드로미켈레 #여성동아

Alessandro Michele’s Diary
구찌를 트렌드의 반열로 이끈
알레산드로 미켈레 베스트 컬렉션.
ITEM1. 블로퍼
패션계에 블로퍼 열풍을 일으킨 구찌의 블로퍼. 시그니처 마크인 홀스빗으로 장식된 블로퍼는 어떤 룩과 매치해도 쿨한 무드를 연출할 수 있어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퍼 트리밍이 된 디자인은 셀럽 룩에서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ITEM2. 디오니서스 백
그리스 신화 속 신 디오니소스를 떠올리게 한다. 독특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백. 심플한 디자인에 로고로 포인트를 준 백부터 브랜드의 로고 플레이가 가미된 백까지 다양한 버전으로 출시됐다.
ITEM3. 스니커즈
빈티지 감성에 구찌 로고를 더한 레더 스니커즈. 셀럽들이 착용하며 유명해진 아이템이다. 성별에 상관없이 남녀 모두에게 잇템으로 꼽히며 한동안 리얼웨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ITEM4 .벨트 백
패션계에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구찌의 벨트 백도 핫템으로 떠올랐다. 특히 구찌의 로고를 형상화한 마몬트 라인 전 제품이 패션 피플로부터 뜨거운 애정을 받았다.

사진 게티이미지 

김자혜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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