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하도급' KT와 리노스, 재난통신망 타고 화려한 부활

뉴스타파 펠로우 2022. 12. 2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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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재난은 수많은 인명과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낳습니다. 집단 트라우마는 물론, 인재의 경우 국격 추락 등 상상하기 힘든 사회적 비용도 뒤따릅니다. 반면 재난은 누군가에겐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되고, 재난 이후 정부 대책은 겉만 번지르르한 홍보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1조 5천억 원을 들여 구축한 ‘재난안전통신망’은 이태원 참사 때 사실상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범정부 차원에서 8년에 걸쳐 추진한 ‘통신망’이 이태원 참사 때 왜 제 역할을 못했는지, 천문학적인 예산은 어디로 흘러갔는지 등을 연속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 

뉴스타파가 이태원 참사 때 무용지물이었던 재난안전통신망 사업비 1조 5천억 원의 행방을 추적한 결과(https://newstapa.org/article/QKQz5), 이 국책사업에서 가장 많은 수주 실적을 거둔 업체는 케이티(KT)와 리노스로 나타났다. 이 두 업체는 재난안전통신망 사업 전체 계약금액의 절반 가량을 휩쓸었다.

문제는 KT와 리노스가 과거 또 다른 국가통신망 사업에서도 주력 업체로 참여했다가 감사원 감사와 공정위 조사에서 불법하도급과 담합 등의 부정행위가 적발됐다는 사실이다.

2000년대 8천억 원 규모 전국통신망 사업에도 KT와 리노스 등장 

지난 2003년, 이른바 ‘통합지휘무선통신망’ 구축 사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재난 발생 시 경찰, 소방 등 유관 기관이 단일 통신망을 통해 동시에 교신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게 명분이었다.

사업 시작은 2002년 6월 감사원이 실시한 ‘안전 및 재난 관리실태’ 감사에서 비롯됐다. 감사원은  경찰과 소방 등 재난 관련 기관이 각자 다른 무선통신망을 사용해 신속한 재난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하고, 국무조정실에 ‘종합지휘무선통신체계 확보방안’을 마련하도록 통보했다. 

2003년 2월 18일 발생한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통합무선망 사업이 급물살을 탔다. 중앙안전대책위원회가 ‘통합지휘무선통신망 구축사업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소방 및 재난 방재 업무 담당 기관으로 격상한 소방방재청이 국가재난관리기구로서 통합망 구축사업을 주관했다.

바로 이 사업에 KT와 리노스가 주요 업체로 참여해 시스템 구축 용역 및 장비 공급 사업 등을 수주했다. 하지만 통합망 구축 사업은 통신망 전국 확장 단계(확장 2차사업)를 앞두고 여러 문제점이 발견됨에 따라 중단됐다.

통합지휘무선통신망 사업이 한창 진행되던 2008년, 국회와 언론 등에서 이 사업 관련 문제가 잇따라 제기됐다. 감사원이 전면 감사에 나섰다. 감사원은 통신망 사업 ‘감사결과 처분요구서’에서 경제성 확보 미흡, 독점 및 예산낭비 문제, 지하시설물 통화권 미확보 등 크게 7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이다.

특정 업체가 사업 독점, 납품가 3배 이상 부풀려

통합지휘무선통신망 구축 사업은 각 재난 관련 기관이 다른 주파수로 사용하던 아날로그 ‘UHF/VHF’ 방식을 디지털 ‘TRS-TETRA’ 방식으로 통합해 운영하는 방향으로 추진됐다. 사업 기간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총사업비는 7826억 원이었다.

감사원은 주관 부처인 소방방재청이 경쟁 유도 방안 없이 사업을 추진해 특정 업체가 사업을 독점하게 되는 빌미를 줬다고 지적했다. 소방방재청은 2005년 시범사업 장비 입찰 과정에서 ‘기존 (경찰청) TRS망과의 연동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기준을 명시했다. 이 때문에 앞서 경찰청 TRS망 시스템 장비를 공급한 모토로라가 사실상 사업 전반을 독점하게 됐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모토로라가 이를 악용해 통합지휘무선통신망 사업 납품 장비 가격을 민간 기업 납품가보다 3배가량 높게 책정해 계약한 점 등을 지적했다.

감사원은 또, 당시 모토로라의 국내 총판이었던 리노스의 사업 독점 문제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리노스는 모토로라로부터 이 사업 관련 핵심 장비와 기술의 독점적 판매권을 확보해 시범사업에서 통신망 장비 구입 및 설치 사업을 따냈다.  리노스는 확장 1차사업 입찰에서도 KT가 당초 낙찰받은 계약 건(317억 원)의 85%에 해당하는 269억 원을 하도급 받았다.

공정위, 리노스 등 담합 행위 적발해 과징금 부과

비슷한 시기 공정거래위원회는 통합지휘무선통신망 사업 입찰 과정에서 발생한 담합 행위를 적발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리노스를 포함한 모토로라 한국총판 3사는 2003년에서 2006년 사이에 경찰청·철도청 등이 발주한 15건의 주파수공용통신장치(TRS) 구매 입찰에 참가해 담합 행위를 벌였다. 

해당 입찰은 모토로라 총판 3사만 참가하도록 한 제한입찰이었다. 리노스, 씨그널정보통신, 회명산업은 서로 짜고 낙찰자, 들러리 업체, 투찰가격 등을 정했다. 그 결과 15건의 입찰 중 13건을 리노스(당시 에이피테크놀로지)가 가져갔다. 15건 입찰의 평균 낙찰률은 97.1%로 매우 높았다.

▲ 2008년 공정위 보도자료 ‘공공기관 통신망 구매입찰담합한 모토로라코리아 등 4개사 적발’에서

2007년 조사에 착수한 공정위는 모토로라 총판 3사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9조에 명시된 '다른 사업자와 공동으로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법위반행위를 금지하는 시정명령과 함께 모토로라코리아에 6억9600만 원, 리노스에 1억9800만 원 등 모두 9억7800만 원의 과징금을 4개 업체에 부과했다. 이후 리노스는 법원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 취소를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감사원, KT 불법 하도급 적발…장비 고가 구매도 수백억대 

감사원 감사 결과 KT의 불법하도급 사실도 드러났다. 소방방재청은 2005년 조달청을 통해 KT와 317억원 규모의 확장 1차사업 계약을 맺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KT는 도급액의 93%를 리노스 등 4개 업체에 하도급했다. 낙찰받은 사업 중 일부를 다른 업체에 하도급할 때에는 발주처의 서면 승낙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KT는 발주처 승인 없이 사업 대부분을 하도급했고, 소방방재청은 이를 알고도 묵인한 사실이 밝혀졌다. 감사원은 부당하게 하도급한 KT를 영업정지 및 부정당업자로 입찰참가자격 제한 등의 조치방안을 마련하도록 소방방재청에 통보했다.

감사원은 통합지휘무선통신망 사업에서 공공기관이 조달청 입찰로 통합망 장비를 236억 원가량 비싸게 구매해 막대한 예산 낭비를 초래한 사실도 확인했다.

'통합지휘무선통신망'은 이렇게 여러 문제 때문에 중단됐다. 그리고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새롭게 추진된 ‘재난안전통신망’ 사업은 1조 원 넘는 사업비가 들었고, 지난해 공식 개통했다.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이 통신망 홍보를 하고, 장관부터 대통령까지 나서서 시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는 쓸모가 없었다. 

KT와 리노스, 불법하도급 관계에서 컨소시엄으로 다시 뭉쳐

2003년부터 시작된 통합지휘무선통신망도 기술만 다를뿐 개념은 똑같은 국가통신망 사업이다.  막대한 혈세가 투입됐으나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공교롭게 10년 정도 시차를 두고 진행된 이 국책사업에 KT와 리노스라는 업체가 두 사업 모두에 핵심 민간사업자로 참여했다. 앞선 통합지휘무선망 사업에선 도급-하도급 관계로 맺어졌다가 불법하도급으로 적발되기도 했다. 이번 재난안전통신망 사업에서는 KT 컨소시엄 형태로 다시 뭉쳤다. 그리고 159개 업체가 참여한 이 사업에서 전체 계약금액의 절반가량을 이 두 업체가 차지했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어떤 배경이 있는지 의문이다. 또 비슷한 국책사업에서 불법하도급과 담합 행위 혐의로 적발된 업체가 10년만에 다시 더 규모가 큰 통신망 사업에 주요 사업자로 참여한 것도 상식과 배치한다. 국회 국정조사와 경찰 수사, 2008년과 같은 감사원 감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뉴스타파 뉴스타파 펠로우 fellow@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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