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와 미래의 ‘흔적’ 이 된 동양화의 존재 가치를 묻다

장재선 기자 2022. 12. 2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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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작가들의 표정이 작품의 개성을 반영하듯 제각각이다. 왼쪽부터 김지훈, 허유, 장현호, 정서원, 하수민, 성소민. 오른쪽 벽면에 보이는 작품이 허유 작가의 ‘What is Blue’.
김지훈 작가의 ‘Dancing Line 2’.
장현호 작가의 ‘17:04’.

■ 금산갤러리 ‘흔적의 흔적’ 전

20·30대 유망작가 7명

김지훈·성소민·이혜진

장현호·정서원·하수민

허유 등 작품 35점 선봬

동양화·서양화 나누는 건

“낡은 분류 방식” 이구동성

기법·재료 틀 갇히지 않고

‘현대미술 전위’당찬 포부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동양화의 가능성과 확장성에 대해 고찰하고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했다.’ 갤러리가 내세운 이 기획 의도를 두고 전시 참여 작가들과 기자들 사이에 열띤 대화가 오갔다. 이 시대에 동양화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확장성을 초드는 것은 그 한계를 상정하는 것인데, 과연 그런 시각은 옳은 것인가. 미술학회에서 주제로 삼을 만한 이야기가 오간 것은, 서울 회현동 금산갤러리가 연 ‘흔적의 흔적’전에서였다.

이번 전시는 20∼30대 작가 7명의 작품 35점을 선보인다. 김지훈, 성소민, 이혜진, 장현호, 정서원, 하수민, 허유 등. 유망 작가로 꼽히는 이들은 모두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 학부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그래서 동양화가로 분류되는데, 당사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동양화가 좋아서 공부했으나, ‘서양화와 반대쪽에 있는 영역의 화가’로 불리는 것은 달갑지 않다는 것이다. “굳이 ‘동양화가’라는 범주에 넣겠다면 부인하진 않겠다. 그러나 그냥 ‘작가’로 봐 주는 게 좋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 것은, 그림을 서양화·동양화로 분류하는 방식이 낡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동양화는 전통 재료와 기법으로 그려진 동양권 회화를 총칭하는 말로,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서양화와 구별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1970년대에 ‘한국화’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이는 동양화가 일제에 의해 타율적으로 주어진 것임을 반성하는 차원에서다. 일제가 ‘중국화’ ‘일본화’와 대등하게 ‘조선화’로 칭하는 것을 꺼려 동양화로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화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는데, 그에 대해 이론을 제기하는 학자도 많다. ‘서양화 기법과 재료로 그렸다고 하더라도 한국인의 손으로 만든 거라면 한국화가 아니냐.’ ‘한국화는 종이와 비단 위에 먹이나 물에 녹는 안료를 써서 부드러운 모필(毛筆)로 한국적 세계관을 그리는 것이라는 정의(定義)는 21세기에 통할 수 있는 것이냐.’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기법과 재료에서 기존 틀에 갇히지 않겠다는 패기가 돋보인다. 현대미술의 전위에 서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뚜렷하다. 그러면서도 인간과 자연, 사물의 합일(合一)을 지향하는 동양화론(東洋畵論), 혹은 한국화론(韓國畵論)을 품고 있다. ‘현재의 흔적을 통해 미래 가능성을 모색하겠다’는 기획 의도는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이 시대에 동양화란 어떤 것이며 그 존재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데는 충분하다.

참여 작가 중 성소민, 이혜진, 하수민은 ‘과거의 흔적’을 주제로 한 작품을 내놨다. 성 작가의 ‘시월 모일로부터’는 자신의 기억을 목판에 추상으로 새긴 것이다. 복제를 하는 목판화가 아니라 목판 자체가 작품이다. 이 작가의 ‘공간 2017-1’은 역시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그린 작품이다. 종이에 연필과 먹을 사용하고 여백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전통 수묵화의 분위기를 아우르고 있다. 하 작가의 ‘95.10.21’은 실제 사진을 그림으로 복기하며 의도적으로 형태를 왜곡하거나 생략한다.

‘현재의 흔적’을 주제로 한 장현호 작가의 작품은 구상화로 보인다. 장지에 먹을 쓰고 자연을 그렸기 때문에 전통 동양화의 양식에 가깝다. 그런데 그의 ‘17:04’는 흘러가는 시간을 포착해 그 순간의 감각과 감정을 담았다는 점에선 추상화이다.

허유 작가의 ‘What is Blue’는 동양화의 현재성과 그 가치를 뚜렷이 보여준다. 비단 위에 푸른 점을 찍은 사각 틀이 12개 있는데, 푸른빛의 농도가 다르다. 시각 대비의 쾌감을 주며 진짜 푸른 것이 무엇이냐는 성찰을 하도록 이끈다. 허 작가는 “동양화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고들 하는데, 서양화에 대해선 아무도 그 한계를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동양화는 고답적이라는 편견이 아쉽다는 것이다. 그는 “해외 전시를 해 보니 우리 정서를 담은 작품을 서양인들이 훨씬 선호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미래의 흔적’을 주제로 한 정서원 작가의 ‘완벽한 거짓의 재구성’은 장지에 채색을 한 작품이다. 현실의 고단함을 위로할 기억의 조각을 통해 앞날에의 희망을 꿈꾼다.

김지훈 작가의 ‘Dancing Line’ 연작은 제목 그대로 선(線)의 춤을 보여준다. 색색의 선들이 아크릴판을 질주하고 다른 선과 연결 혹은 중첩되며 독특한 미감을 선물한다. 김 작가는 “벽을 넘어선 연대를 주제로 했던 ‘연결된 벽’ 연작의 제목을 바꿔서 지속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동양화의 기존 재료를 넘어서 다양하게 실험하며, 기운생동(氣韻生動)의 화론(畵論)을 현대미술에 접목하는 작업을 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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