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삼영 총경 “경찰국 문제, 내가 정치적이라 나선 게 아니다”
[주간경향] “주로 노트북 화면을 보고 앉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그 맞은편에 앉을 일이 많다.” 류삼영 총경(57)은 지난 12월 19일 울산 중구의 한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 둔 기자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경찰대 시절을 포함해 40년에 가까운 경찰생활 대부분을 그는 부산·울산·경남에서 상대방을 취조하는 수사경찰로 일했다.
지난 7월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반대를 주도하다 대기발령됐다. 이어진 감찰로 조사대상이 됐다. 지난 12월 13일에는 정직 3개월의 중징계가 확정됐다. ‘전국경찰서장회의’를 중단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잦은 언론인터뷰로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가 붙었다. 그가 징계위원회에 출석하면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사과한 것, 참사와 경찰국 신설을 연결지은 것이 중징계의 진짜 원인이 됐다는 말도 나왔다.
지난 5개월 그의 행보를 두고 한편에서는 비난을, 한편에서는 기대를 보낸다. 이번 ‘경찰국 사태’를 지난 정부 때 벌어진 정권과 검찰의 불화와 포개어 보는 이들도 있다. 당시 갈등의 주역이던 검찰 수장은 유력 정치인을 뛰어넘어 단숨에 대통령이 됐다. 류 총경을 향하는 비난과 기대,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은 어떤 면에서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비판하는 사람들은 내가 처음부터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그랬을 것이라고 본다. 반대쪽 사람들은 앞으로 좀 그렇게 하라고 한다”며 “경찰국 문제가 진짜 국민을 위하는 건지 한번 보자, 그게 다였다. 내가 무슨 정치적 성향이 있어 그랬겠느냐. 오히려 (경찰국이) 문제를 야기할 것이 불 보듯 뻔한데 가만히 있는 게 정치적이다”라고 했다.
-경찰청 중앙징계위원회가 정직 3개월 중징계를 내렸다. 예상했나.
“더한 것도 예상했다.”
-경찰청 시민감찰위원회는 경징계를 권고했는데, 윤희근 경찰청장은 중앙징계위에 중징계를 요구했다. 어떤 배경이 있었다고 보나.
“시민감찰위는 징계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가 아니다. 그런데도 시민감찰위를 개최해 경징계하라는 시민들의 권고를 받아놓고 이를 뒤집었다. 일관성이 없다. 경찰청장의 생각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지시라는 것인가.
“장관도 자기 일로 바쁘지 않나. 바둑 용어에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는 말이 있다. 사활이 걸려 있으면 자기가 먼저 살아난 이후에 상대를 공격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관도 먼저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 이슈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편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보나.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징계위 분위기는 어땠나.
“왜 서장회의를 했는지, 그게 조직을 위한 것이었는지, 국가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는지 최소한 이런 평가를 하고, 왜 경찰청장이 갑자기 직무 명령을 내렸으며 그게 합법적이고 타당한지 이런 걸 물어야 하는데 관련 질문이 없었다. 거두절미하고 ‘직무 명령을 받았나’, ‘안 받았나’, ‘언제 받았나’만 계속 물었다.”
그의 첫 번째 징계 사유는 ‘복종 의무 위반’이다. 지난 7월 23일 전국경찰서장회의 도중 상부에서 내려온 해산명령을 즉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또 22차례 언론인터뷰와 2차례 기자회견으로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역대로 경찰서장회의가 열린 적이 있나. 왜 주도했나.
“77년 경찰 역사상 처음이다. 7월 18일에 경찰국 신설을 논의하는 화상회의가 열렸다. 지역청장들과 서장들이 참여했는데 내용을 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내부망에 서장회의를 열자고 제안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후배들도 서장회의 소집을 제안했다. 내가 빨리 실행에 옮겼을 뿐이다.”
-정권교체 직전에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을 통해 경찰의 권한이 커진 건 맞지 않나. 통제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경찰의 힘이 세지면 감시하고 통제하는 힘도 세져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게 민주적 통제여야 한다. 그날 서장회의의 정식 명칭은 ‘경찰의 민주적 통제를 위한 전국경찰서장회의’였다. 민주적 통제는 정치적 균형을 갖춘 사람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통해 통제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치권력과 입장이 같은 사람이 경찰을 통제하는 것은 민주적 통제가 아니다. 경찰을 정권하고 붙여놓으면 큰일이 난다고 해서 분리시켜 놨는데 왜 국회 논의도 없이, 경찰청장도 없이, 내부 구성원들의 의사 결집도 없이 시행령으로 바꾸는가. 입법예고 기간도 40일은 줘야 할 것을 4일만 줬다.”
-경찰 지휘부가 회의 도중 회의를 해산하라는 직무명령을 내렸다. 지휘부는 애초에 서장회의 개최 사실을 몰랐나.
“알고 있었다. 회의 전에 전체 서장들한테 자제하고 숙고하라는 e메일이 왔다. 상부에서 전화가 와서 ‘경찰청장님께서 회의 마친 후에 회의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자. 원하면 식사도 같이하자고 한다’는 얘기를 두 번이나 했다. 회의 해산하라는 직무명령도 경찰청장 생각이 아니라고 본다. ‘회의 잘 마치고 얘기하자’고 하고는 ‘왜 회의했냐’고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초유의 서장회의인데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모였다. 예상했나.
“서장 지위에 해당하는 총경 626명 중에 과반이 넘는 357명이 취지에 공감한다는 뜻으로 화환을 보냈다. 54명은 현장에 직접 참석했다. 얼마나 올까 싶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회의장 앞에 서 있는데 귀한 하객 맞이하는 혼주 같더라. 한 번의 회의가 중요한 게 아니고 경찰의 밝은 미래를 봤다. 문책을 당할 수도 있는데 많은 사람이 책임을 불사하고 의견을 표시해줬다. 경찰은 옛날 같으면 권력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옳은 일을 하고, 국민을 위한 명령을 따르지 시킨다고 다 하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앞으로도 이런 일에 의견을 표시할 수 있다고 본다.”
-이상민 장관은 ‘쿠데타’에 비유했다. 어떻게 봤나.
“무조건 지시하면 따르는 조직이 오히려 쿠데타에 취약하다. 지시하면 지시한 대로 이행하는 경직된 조직이 아니고 지시가 법에 맞는지, 국민을 위한 건지 생각하는 조직임을 보여줬다. 오히려 조직의 탄력성이 회복됐다고 본다.”
-혼자만 징계를 받았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현장 참석자들 모두 감찰 조사를 받았다. 서장회의 드레스 코드가 사복이었는데 혼자만 정복을 입었다. 책임을 묻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누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면 참석자들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내가 표적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징계 불복절차 진행할 것인가.
“서류가 준비되는 대로 소청 심사를 제기하려고 한다. 징계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방안으로 국가경찰위원회를 실질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민주화 이후 모든 정부에서 나왔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왜 그랬다고 보나.
“정권이 자기 불편할 일을 안 한 것이다. 내무부 치안본부 시절을 지나 1991년에 경찰청이 만들어질 때는 국무총리 산하에 위원회를 두고 경찰을 통제하는 밑그림을 그렸다. 3당 합당이 이뤄지면서 제도 취지가 왜곡됐다. 지금이라도 그 법을 참고해 경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정치적 중립을 위해 경찰국 설립에 반대했다고 하지만 기존 경찰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었느냐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경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제도로 중립이 아예 불가능하도록 만들어버렸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 인사권을 쥐고 있으면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개별적인 사건에서 정치적인 중립이 흔들릴 수도, 지켜질 수도 있었던 기존 상황하고, 아예 제도로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 것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한편으로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선출된 권력의 국정 운영에 비선출직 관료들이 반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대통령이든 선출 권력이든 법의 테두리 안에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민의에 따라 선출됐기에 법에는 있지도 않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또 법에서 위임한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과 부령이 만들어지고 이를 행정관료들이 집행한다. 법에서 위임한 범위 안에서 시행령이 만들어졌다면 타당하지만, 법에 없는 내용을 시행령으로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법 위반이다.”
-정부조직법상 행안부 장관의 사무에 경찰 업무가 적시되지 않은 것을 말하나.
“그렇다. 왜 없을까. 실수로 빠진 게 아니라 의도하고 뺀 것이다. 내무부 치안본부 시절만 해도 내무부 장관의 사무에 경찰 업무가 있었다. 문제가 있어서 삭제했는데 법도 안 바꾸고 시행령으로 뒤집는 것은 법을 무시하는 처사다.”
-경찰국 설립 후 달라진 것이 있나.
“눈치를 본다. 승진 대상자들은 누가 내 인사권을 쥐었느냐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일하다 보면 그 사람 생각을 안 하겠느냐.”
-징계위에 출석하면서 경찰국 설립이 이태원 참사의 원인 중 하나라는 취지의 말도 했다. 무슨 뜻인가.
“그날 배치된 경력을 보면 예전과 달랐다. 국민의 안전이 1번이 돼야 하는데 소홀했다. 이태원 참사 이전과 비교하면 바뀐 것은 경찰국 설치와 대통령실 이전 정도밖에 없다. 나도 100%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경찰국의 존재 자체가 경찰관의 판단기준이나 관심을 옮겨놨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사과도 했다. 어떤 취지인가.
“경찰이 이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사과한 적은 있나? 수사가 먼저가 아니고 사과하고 사죄하고 위로하는 게 먼저다. 이걸 뒤집어서 수사할 때까지 모든 절차를 중단하겠다고 하면 국민이나 유족들은 누가 위로를 해주나. 수사가 언제 끝날지 모르고, 수사가 끝나도 대법원 확정판결까지는 몇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때 사과와 사죄가 무슨 의미가 있나. 내가 자격이 되는지 모르지만 사과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공개 발언 자체를 정치적 또는 당파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부담은 없었나.
“진심이었다. 39년 동안 경찰 밥을 먹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 일이다. 이 바보짓을 해서 죄송하고 용서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번 징계에서 해임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옷을 벗고 민간인으로서 ‘사과합니다’라고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정복을 입은 온전한 경찰일 때 사과하고 싶었다. 지금은 직무가 정지된, 목만 안 잘린 경찰이라 경찰 넥타이만 매고 있다(그는 이날 사복에 붉은색 경찰 넥타이를 맸다). 정치적인 뜻이 있었다면 12월 16일 이태원 참사 추모제에 방문했을 때 정치적인 발언이라도 한마디 했을 것이다. 뒤에서 울기만 하다가 왔다.”
-정치에 뜻이 있나.
“정치할 깜냥 안 된다. 이런 질문 자체가 경찰국 반대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
-서장회의를 주도한 이후부터 정치적인 해석이 뒤따른다. 조국 수호 촛불 집회에 참석했다는 가짜뉴스가 나기도 했다.
“메시지에 시비를 못 걸면 메신저를 공격한다. 내가 처음부터 서장회의를 기획했다고 음해하는 사람도 많다. 일부러 고향을 숨겼다는 얘기도 있더라. 고향이 부산이다. 경찰관들은 인사기록 카드에 본적, 고향, 출신 고등학교명을 다 지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차별 방지 차원이다. 숨긴 게 아니다. 우리 구성원들은 내가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사람인 걸 안다. 평소에 정치적인 사람이었으면 서장회의가 활성화됐겠느냐. 오히려 ‘저 사람까지 나설 정도면 사태가 심각하다’는 게 있었다.”
-한 언론인터뷰에서 ‘경찰은 국민의 경찰이다. 국민에게 충성하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검사 시절 윤석열 대통령의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연상시킨다.
“완전히 다르다. 그 발언은 검찰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발언이었기에 조직에 충성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내 말은 경찰은 국민에게 충성한다는 것이다.”
-정년이 2년 남은 것으로 안다. 경찰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
“그동안에는 밥벌이를 위해서 숨고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마지막이라도 대의와 명분이 있는 큰 이야기를 한 번 한 것 같다. 징계를 받았지만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찰 수장과 조직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윤희근 경찰청장이 경찰 조직을 잘 추슬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는 그런 유능한 경찰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치적 외압을 막는 우산이 되시길 바란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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