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개혁 필요" 한 목소리…풀리지 않는 코레일 '독점과 통합'
[편집자주] 2004년 본격화된 철도구조개혁은 20년 가까이 미완이다. 철도청 해체를 처음 논의했던 국민의 정부부터, 구조개혁을 본격화 했던 참여정부, 민영화 논란에 휩싸여던 MB·박근혜 정부, 철도통합으로 방향을 틀었던 문재인 정부까지 어느 정권도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다시 철도개혁을 꺼냈다. 이번엔 끝을 볼 수 있을까.
철도 통합 갈등은 2013년 에스알(SR)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자회사 형태로 분리된 이후 10여년째 지속됐다. 통합을 요구하는 진영에서는 철도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새마을·무궁화 등 적자노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흑자사업인 고속철을 코레일로 통합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대 측은 코레일 독점보다 현재과 같은 경쟁 구조로 이용자 서비스나 재정건정성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맞선다. 오랜 기간 갈등에 발목이 잡힌 철도산업은 공공성도, 이용자 서비스 개선도 모두 부족한 상태로 발전이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2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년여간 철도산업체제에 대해 분석·평가를 해왔던 '거버넌스 분과위원회'(이하 분과위)는 이달 20일 '경쟁 체제 유지 또는 통합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는 종합 의견을 국토부에 전달했다. 분과위는 앞서 국토부가 2020년 발주한 '제4차 철도산업발전 기본계획' 수립 연구의 자문기구다. 코레일과 SR, 국가철도공단 노사 대표와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분과위는 지난해 3월부터 관련 논의를 20회 이상 지속했다. 하지만 첨예한 대립으로 공기업 통합과 경쟁 어느 한 쪽으로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분과위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 판단을 유보했다. 하나는 SRT를 본격적으로 운영한 2017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2년은 코로나19(COVID-19)로 정상적으로 운영이 안돼 경쟁체제를 효율적으로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이유다. 다른 하나는 코레일과 SR의 주장이 크게 엇갈린 탓에 어느 한쪽도 충분히 설득하는 게 불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경쟁 유지 "이용자 연간 1056억원 절약·부채 상환 가능"vs 통합 복귀 "중복비용 절감·운행횟수 52회 증가"
분과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철도 서비스와 이용자 편의성은 이전보다 나아졌다. 경쟁체제 도입 이후 코레일과 SR의 운임 할인 제도가 확대된 덕에 이용자들이 절약한 비용은 연 평균 1056억원으로 추산된다. 고속철도 1회 이용 때마다 평균 1703원 추가할인 효과가 발생한 셈이다. KTX 운임 할인율은 경쟁체제 도입 전에는 4% 수준까지 축소됐다가 SRT 개통 시점부터 10%대로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여객서비스 품질평가는 2016년 85점에서 2020년 90점까지 개선됐다.
경쟁체제로 고속철도 건설자금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구조도 마련됐다. SRT에 KTX 보다 높은 선로사용료 체계를 적용하면서다. SRT는 운송수입의 50%를, KTX는 34%를 선로사용료로 낸다. 공기업 경쟁체제 도입 전에는 선로사용료가 5000억원으로 연간 7000억원에 달하는 건설부채 이자를 상환하지 못해 부채가 쌓였다. 경쟁체제 내 선로사용료는 합산 7500억원으로 원리금을 충당할 수 있다.
그러나 통합을 요구하는 코레일 노조 등에서는 해당 효과들은 경쟁체제와 무관하다고 반박한다. 오히려 코레일과 SR을 통합해야 경쟁에 따른 중복비용을 연간 최대 406억원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통합 운영을 하면 운행슬롯 증설과 복합열차 운행 등 효율적인 운행계획을 수립해 전체 고속철도의 운행 횟수를 최대 52회(주말 기준)까지 늘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 큰 비용 투자없이 고속철 좌석공급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 현 체제 유지 잠정 결론…향후 갈등 불씨 그대로 남겨
국토부는 분과위의 '판단 유보'를 그대로 수용해 현행 체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운임·서비스 개선 효과와 철도 건설부채 상환 측면을 간과할 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국토부가 어떤 체제가 나은지 직접 결론을 내리지 않았지만, 사실상 코레일과 SR간 경쟁 체제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코레일과 SR간 경쟁을 본격화 할 정책 의지도 드러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분과위 평가에 대해 "나라별 사회·문화적 여건에 따라 다소간 차이는 있으나 해외에서도 독점에서 경쟁으로 전환이 철도 발전의 기본 방향"이라며 "철도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공공부문 내에서 건강한 철도 경쟁을 유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경쟁·통합 체제에 대한 결론을 명문화 하지 않으면서 불씨를 남겼다. 국토부 관계자는 "말 그대로 판단 유보한 채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결론"이라머 "(현재로서는) 이후 경쟁체제와 관련한 새로운 연구용역을 추진할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권이 바뀌면 또 논란이 반복되는 것 아니느냐는 우려가 가시지 않는 상황이다.
실제로 철도 통합은 선거철마다 이슈가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철도 통합의 필요성을 언급, 정부 출범 초기인 2018년 처음으로 코레일-SR 통합 관련 연구용역을 추진했다. 지난 대선에도 당시 후보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철도 통합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이 후보는 SRT와 KTX를 통합해 지역 차별을 없애고 요금할인 등 공공성을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권경현 변호사(법무법인 진운)는 "철도구조개혁 자체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으로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며 "우리 철도산업이 과거 철도청 시절로 회귀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기 때문에 더 안전하고 편리한 철도산업 체계를 만드는 계획을 세우고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유지보수·관제, 운영까지 모두 철도산업의 환경변화에 맞춰 법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안전관리, 이용자 서비스 등 철도 운영과 시설, 관제까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획 수립과 법·제도 정비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며 "현행 법 개정을 통해 국가 책임의 공적 시설관리 체계부터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는 철도구조개혁에 빠져있던 도시철도 관련 운임·투자·지원체계 등 정부 책임이 모호한 부분을 명확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광석 전 한국교통대학교 교수는 안전 중심의 제2차 철도구조개혁을 강조했다. 그동안 철도구조개혁이 철도산업 경영개선에 방점이 찍혔다면 이후에는 안전성 확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철도산업 환경 변화에 따른 근본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며 "안전확보를 위한 구조개혁, 시설 관리와 운영을 나누는 상하분리 원칙에 따른 기관별 역할 재조정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가 현실적으로 코레일 노조를 설득할 방안들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 전 교수는 "현재 코레일의 유지보수 인력만 놓고 봐도 9000명이 넘는데, 정부 정책에도 이들 인력에 대한 적절한 활용 방안이 필수적"이라며 "과거 구조개혁도 철도노조와 마찰을 빚으면서 프랑스·네덜란드 등 외국과 비교했을 때 10~20년씩 늦어졌다"고 언급했다.
◇전문가·시민단체 경쟁체계 구축 불가피 …국토부, 안전체계 원점서 재검토
시민단체도 철도산업 경쟁력 확보을 위해 경쟁체계 구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신영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감시단장은 "철도산업 경쟁력을 고려하면 기본적으로 독점보다 경쟁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공공성 훼손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경쟁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단장은 "시설 유지보수나 철도 운영 모두 궁극적인 목표는 시민의 안전과 편의를 확보하는 것이고, 현재 산업구조에서 개선하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철도환경 변화에 맞춰 관련 법 개정은 필요하지만, 코레일의 역할을 분리·축소하는 과정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장승엽 한국교통대학교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철도 운영과 유지보수 작업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기 때문에 단순히 업무를 분리하는 것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현재 체계는 첨단 설비 등에 대한 투자가 부족해 안전확보 면에서 한계가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경쟁체제는 기관별이 아닌 노선별 형태로 강화해야 한다는게 장 교수의 주장이다. 장 교수는 "흑자노선을 전부 에스알이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코레일은 적자노선을 떠안고 운영해야 하니 당연히 불만이 쌓이지 않겠냐"며 "지역별 노선에 대해 자격을 갖춘 운영사들은 기본적으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민하 기자 minhar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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