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꺼낼 기회도 여유도 없다 [2022 올해의 인물]

이은기 기자 2022. 12. 26.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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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이태원 참사’는 한국 사회에 깊은 슬픔을 남겼다. 게다가 진상 규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2022년의 아픈 기억은 2023년의 과제로 남았다.
인천 남동소방서 소속 유병혁 대원은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벌인 906명 소방관 중 한 명이다. ⓒ시사IN 조남진

〈시사IN〉이 선정한 2022년 ‘올해의 인물’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2022년 10월29일, 158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는 희생자와 유가족, 생존자와 그 주변 사람들, 일반 시민들의 삶까지 뒤흔들었다. 대형 참사 앞에서 정치와 관료제는 무능했고, 우리 사회는 어떻게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해야 할 것인지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참사를 추모하는 이들의 아픔은 물론이고 해결해야 할 질문과 과제가 여전히 산적한 상태로 2023년을 맞이한다. 굳건한 연대와 온전한 추모가 이어져야 한다는 뜻을 담아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구급차에 사망자를 태우고 이송한 건 처음이었다. “구급차는 사망자를 이송하지 않는다. 일할 때 모토가 ‘내가 탄 구급차 안에서는 사람을 죽게끔 만들지 말자’이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는 아무리 어려워도 흉부 압박을 하면서 환자의 심장이 뛰고 있는 상태에서 인계한다. 그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사망자를 병원까지 이송해야 했다. 자꾸 ‘더 일찍 도착했다면, 사고 발생 당시 현장에 있었다면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 남동소방서 구월119안전센터 소속 5년 차 소방관 유병혁 대원(31)의 말이다.

그는 10월29일 밤부터 다음 날 새벽 사이, 서울 이태원에 출동한 906명(서울종합방재센터 ‘구조상황보고서’)의 소방관 중 한 명이다. 10월29일 밤 11시50분께 ‘이태원 압사 50명 추정’이라는 지령을 받고 곧바로 출동했다. 유 대원이 이태원에 도착한 건 10월30일 0시20분~30분쯤. 참사 발생 골목 인근 편의점으로 가야 했지만, 구급차가 곧장 집결지까지 진입할 수 없었다. 결국 200m 떨어진 곳에 구급차를 세워두고 장비를 챙겨 달려갔다.

현장 임시 영안소로 지정된 편의점 앞엔 많은 희생자가 누워 있었다. 전쟁터 같다고 느껴졌다. 매년 다수 사상자 발생을 대비해 훈련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숨진 참사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정신을 놓을 새도 없이 계속 사망자가 나왔다. 다른 구조·구급대원들이 편의점 앞에 희생자를 데려오면, 유 대원은 그들을 가지런히 눕힌 뒤 모포를 씌우고 인원을 파악했다.

지옥 같다고도 생각했다. 그 현장에서 도움을 준 시민들이 있었다. 초기 구조·구급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소방관과 함께 심폐소생술(CPR)에 나선 이들이다. 유 대원은 CPR을 해준 시민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고 했다 “소방대원은 CPR을 많이 한다. 하지만 가슴뼈가 다 부러지도록 CPR을 할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다. 시민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을 거다. 대학생 때 라이프가드(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따고 해수욕장에서 일하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CPR을 해서 살린 적이 있다. 눈앞에 당장 위험한 사람이 보이니까 일단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그때 시민들도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유 대원이 현장에 도착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난 10월30일 새벽 1시30분 무렵부턴 현장에 있던 희생자를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하라는 무전이 떨어졌다. 희생자를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하면서 지시에 따라 환자의 성별, 추정 나이대, 인상착의를 파악해서 전달했다. 다시 현장으로 복귀한 후 새벽 2시20분 무렵에는, 희생자를 원효로 체육관에 이송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이날 참사 현장에서 사망 판정을 받은 희생자 46명은 임시 영안소로 지정된 이 체육관에 안치돼 있다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구급대원들이 희생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소방 동료들은 이태원 참사에 관한 이야기를 꺼린다. 여전히 참사 당일의 기억을 꺼내기 어려워하는 동료들이 많다. 소방청에선 긴급 심리지원을 추진했지만 유 대원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쉬지 못하니 일하는 시간에 상담을 받아야 했다. 상담 중에 출동하고 돌아와서 다시 상담을 이어가는 식이었다. ‘최근 큰 사고를 겪었습니까?’ 등의 질문에 오지선다로 답한 검사를 토대로 상담이 이뤄진다고 했다. “별로 의미가 없고 귀찮을 것 같아” 2차 상담은 거부했다.

트라우마를 겪으면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하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유 대원은 참사 이후 내리 15일 동안 격일로 24시간 근무, 24시간 휴식을 반복했다. 휴직으로 빠진 동료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서다. “내가 참사 때문에 힘들다고 특별휴가 받아서 나가면 누군가 또 24시간 근무에 들어가야 한다. 인원이 확충되고 나서 빠진 인원의 업무를 대신하는 시스템이 아닌 이상 휴가는 무의미하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참사 당시 유 대원과 함께 현장에 있던 최성범 용산소방서장과 이 아무개 용산소방서 현장지휘팀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다. 용산소방서는 압수수색을 받았고, 용산소방서 소속 대원들도 참고인 조사로 여럿 특수본에 불려갔다. 유 대원은 동료들과 밥을 먹다 TV 뉴스로 특수본 수사 소식을 접했다. 충격적이었다. 다들 ‘저런 식이면 어떻게 일을 하라는 거냐’라며 답답해했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은 최선을 다했다.” 이날 출동한 소방관들은 10월30일 아침 7시가 지나서야 철수할 수 있었다. 유 대원도 이날 희생자 이송 업무를 마친 뒤에 추가 사고나 환자 발생에 대비해 현장에서 아침까지 대기했다. “현장 활동을 하는 동안 물 한잔 마실 틈도 없었다. CPR을 하며 사투를 벌였던 서울 소속 대원들은 더 힘들었을 거다. 안 그래도 지쳐 있을 대원들이 기운을 잃을까 봐 걱정된다.”

※이태원 참사 2차 피해 우려가 있어 이 기사의 댓글 창을 닫습니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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