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새 연달아 떠나신 아빠·엄마…슬플 땐 어찌 해야 하나요”
‘재미난 이야기’ 모아 들려주던 아빠
‘육아·인간관계·일상’ 공유한 엄마
갑작스런 부재에 울다가 화나다가…
“할머니 별세 때 두분처럼 담대해야겠죠”
2021년 초 아빠(안상선)가 아프시더니 1년이 안되어 돌아가셨다. 향년 72. 2022년에는 엄마(권영숙)가 아프시더니 반년이 안 되어 돌아가셨다. 향년 68. 불과 6개월 사이 두 분이 모두 떠나시니 실감도 나지 않고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슬픈 것인지 뭔지도 모르겠다. 가끔 너무 갑작스럽게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엉엉 눈물이 나올 때도 있고, 엄청난 분노가 일어 주위 사람들이 이유 없이 미워질 때도 있다. 그러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다시 변함없는 일상이 돌아간다.
두 분 생전, 우리는 매일 통화를 했다. 아빠는 언제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준비했다가 내가 전화할 때마다 하나씩 들려주셨다. 특히 엄마와는 소소한 일상을 공유했다. 2019년 여름 미국으로 온 뒤로 매일 밤 엄마에게 전화해 인간관계나 육아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사실 나는 워낙 엄마에게 친밀하게 조언을 구하는 ‘착한 딸’은 아니다. 사춘기 이후 부모보다 친구가 더 중요했다. 집에 있기보다 친구들과 나가 놀며 사고 치던 딸이었다. 클럽에서 열심히 놀다가 집에서 전화 오면 바깥으로 나가 얌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했다. ‘도서관이니 나중에 전화 걸게요.’ 어찌보면 영악한 문제아에 가까웠다. 여행을 좋아해 대학 졸업한 뒤 취직도 안 하고 두 달간의 중국 여행 끝에 티베트 라사에 도착해 엄마에게 전화한 적도 있었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이제 그만 돌아와”라고 말했다. 어느 누구 못지않게 속을 많이 썩인 딸이다.
그던 내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 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였던 것 같다. 영진이를 낳은 첫날 모유가 나오지 않자 아이는 이틀을 내리 울었다. 목소리가 쉴 때까지 가느다란 목소리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울어댔다. 간호 선생님은 이 아이 크면 보통이 아닐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태어난 날부터 범상치 않던 아이는 다행히 비디오게임을 좋아하는 평범한 남자아이로 컸다. 그러는 동안 부모님이 내게 해준 보살핌을 되돌아보고 여쭈어볼 수 있었다. 어찌 그렇게 화내지도 않고 나를 키울 수 있었는지. 부모님은 믿고 기다렸다고 했다. 영진이는 잘 할 아이이니 너 또한 믿고 기다려주라고 해주셨다.
어느 날은 인간관계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엄마,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분을 만나면 너무 힘들어. 그만 만나고 싶어." 엄마는 친구 분들과 경험을 들려주며 사이가 안 좋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이해가 되고 더 친해지기도 한다며 너무 극단적으로 관계를 끊지 말라고 하셨다. 물론 내 맘대로 행동하는 때가 더 많았지만 언젠가는 엄마의 조언대로도 해보고 싶기도 하다.
또 하루는 삶의 지혜를 구하기도 했다. 약속을 잘 까먹고,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살기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엄마는 자신처럼, 가족들이 잠든 밤에 책상에 앉아 가계부를 쓰며 하루를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다 보면 시간과 돈을 효율적으로 쓰고 모으는 지혜를 갖게 될 것이라 하셨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조차도, 나는 이 슬픔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부모님께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할머니가 94살, 외할머니가 96살에 돌아가셨을 때 부모님을 떠올려보았다. 엄청난 슬픔이나 좌절은 보이지 않으셨던 것 같다. 기억 속 두 분은 어떤 어려움과 슬픔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변함없이 살아내고 계셨다. 남은 자들의 모습은 저리 담대해야 하는 것인지.
오빠와 나는 장례가 끝나고 집에 와 아무 말 없이 부모님의 유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빠는 엄마의 꼼꼼한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아 파일을 여러 개 사더니 서류 정리를 시작했다. 급기야 오빠는 엄마가 쓰던 가계부와 똑같이 생긴 가계부를 사 오더니 테이블에 앉아 모든 기록을 시작했다. 밤에는 편의점에 나가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사와 나눠먹으며 소파에 앉아 함께 드라마를 봤다. 주말에는 오빠가 부모님과 자주 갔다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슬픔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고 같이 울고 웃을 수 있는 형제가 있어서 안심이 됐다.
그렇게 우리는 담대하게 아무일 없는 것처럼 하루를 살아냈다. 이제 나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고, 오빠는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꽃이 피고 졌다. 그렇지만 꽃이 진 자리에는 열매가 맺혔고 그 열매 속 씨앗이 자라나 다시 꽃을 맺을 준비를 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모든 것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자연의 원리를 떠올리며 나는 나를 위로하고 다시 변함없이 지루한 하루를 시작한다.
재미 맥팔랜드/딸 안지애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서울 지하철·버스 요금, 300원씩 오른다…8년 만에 인상
- 치밀한 듯 허술…택시기사·동거녀 연쇄살인 피의자 ‘미스터리’
- 한 입으로 두 말…윤석열·한동훈 ‘검찰 어록’ 다시 보니
- 60년 뒤 남부지방 겨울 사라진다, 온실가스 이대로 배출하면
- ‘재벌집 막내아들’이 말해주지 않은 것
- 10만원 내면 13만원 돌려받는 기부…내 고향 답례품은 뭘까?
- 러시아 “동남부 4주 현실 받아들이라”…우크라에 ‘최후 통첩’
- Q. 육군은 드론 잡을 수 있다 장담했는데, 무인기는 왜 못 잡았나요?
- 이태원에 ‘문재인 때 사고 추모’ 극우단체 펼침막…“이게 정치적 이용”
- 내 편 아니면 ‘부도덕 낙인’…윤 대통령, 비판세력 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