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탄소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 (상)

박상욱 기자 2022. 12. 26.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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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63)

EU의 탄소국경조정, CBAM으로 정부가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수십차례에 걸쳐 민관이 함께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고, 대책 마련을 위한 세미나도 수차례 열었습니다. 내부적으로도 바빴습니다만, 대외적으로도 바빴습니다. EU에 “차별적 요소를 해소해달라” 요청하는 입장서를 3회 제출했고, 정부 고위급 인사들은 직접 EU 관계자들과의 면담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EU의 입장은 요지부동. 철강과 시멘트, 알루미늄과 비료, 전력, 수소 6개 품목에 대해 내년부터 당장 전환기간(시범기간)을 갖고, 2026~2027년 본격 시행할 계획이죠.

단순히 '자유무역을 훼손한다'는 논리로만 나서서는 어려울 일이라는 점, 지난주 연재를 통해 상세히 전해드렸습니다. 이미 우리나라 역시 90년대부터 유럽의 탄소세 도입을 예상했던 만큼,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EU가 아무런 절차적, 법적 문제점에 대해 고찰을 하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고 말이죠. 특히나, 많은 선진국들이 90년대를 정점으로 탄소배출량의 감소세에 접어든 만큼 그들은 '오랜 시간, 충분한 시그널을 줬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대와 맞서기 위해선 무엇보다 나와 상대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겠죠. EU는 왜 이런 정책을 고민 끝에 실제 시행하게 된 것일까요. EU의 입장에서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요. 그리고 우리에게 EU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이렇게 탄소국경조정이라는 정책을 내놓는 나라가 EU에서 그칠까요. 지피지기의 마음으로 보다 면밀히 살펴보겠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국가 간의 무역을 돈이 아닌 탄소의 관점으로 살펴봤습니다. 수출과 수입을 '달러'가 아닌 'tCO2'로 계산해본 겁니다. OECD는 개별 국가들의 이산화탄소 수출량과 수입량을 집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순수출량과순수입량을 직접 따져봤습니다. 우리가 무역지수를 통해 수출입을 살펴보니, 이는 '탄소무역지수' 정도로 생각하면 쉽게 와 닿을 듯합니다.

제품을 생산할 때엔 필연적으로 탄소 배출이 뒤따릅니다.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선 수출량이 많아도, 수출품목을 생산할 때 탄소 배출량이 많아도 불리해집니다. 물론, 탄소 배출량을 이유로 일부러 수출을 안 하고, 제품의 생산을 안 하는 나라는 없기에 이러한 관점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르려는 나라들은 저마다 에너지 절감 기술을 연구하고 상용화하거나 산업의 탄소 집약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무역의 시대, 이 세상 그 어느 나라도 수입'만' 하는 나라가 없고, 반대로 수출'만' 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서로가 그렇게 얽히고설킨 거죠. 가장 최신 자료인 2018년 기준, 탄소의 수출량과 수입량을 합친 값이 양의 값인 나라는 순수출국, 음의 값인 나라는 순수입국입니다. 이 값이 양의 값이라면, 해외에 이산화탄소를 수출한 양이 더 많기에 향후 탈탄소 시대에서 더 큰 위기에 빠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 값이 음의 값이라면, 이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 EU의 CBAM과 같은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쉬운 입장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단, OECD 회원국 전체를 따졌을 때, 탄소의 순수출량은 -14억 4,640만톤에 달했습니다. EU 27개 회원국도 마찬가지로 -4억 270만톤으로, '탄소 수출국'이 아닌 '탄소 수입국'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탄소 배출량을 놓고 무역 과정에서 그에 대한 비용을 매기겠다고 했을 때, 적어도 선진국 그룹 내에선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라는 점 말입니다. OECD 회원국 전체의 합이 음의 값이 아닌 양의 값이었다면, 국가 간 탄소세 부과라는 개념은 그저 논문에서만 존재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 음의 값인 상황에선 이러한 제도를 도입 못 할 이유가 없는 셈이죠.

개별 국가별로도 탄소의 순수출량을 살펴봤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탄소를 '순수출'하고있는 나라는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 중국이었습니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자처하는 만큼, 생산기지로써 중국발 탄소배출량은 많을 수밖에 없겠죠. 무려 9억 770만톤의 순수출량을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는 5,570만톤의 순수출량을 기록하며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았습니다. 이는 과거 대비 크게 늘어난 숫자입니다.

개별 국가 단위로 봤을 때, 가장 많은 양의 탄소를 '순수입'한 나라는 미국이었습니다. EU 27개국의 총합보다도 많은 7억 5,44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수입했죠. 비록, 탄소국경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무역에 있어 탄소세를 처음 부과하는 것은 EU지만, 그 누구보다 탄소세를 적용하기 좋은 조건인 것 역시 미국인 셈입니다. 물론, 자국 내 복잡한 산업구조와 노동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지만, 적어도 '탄소 수출국이면서 무슨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실시하냐'는 비난은 받지 않을 테니까요.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수입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1억 5,990만톤)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근 30년 전인 1994년, 산업연구원이 왜 미국과 EU, 일본의 탄소세 적용 가능성을 우려하고, 우리나라 수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계산했는지. 지금의 이산화탄소 순수출 및 순수입량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EU는 대체 왜 자기네만 지구 위하는 척 유난을 떠는 거야?'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충분한 답이 될 만한 통계입니다.

그렇다면, EU에 있어 한국은 어떤 의미일까요. 외교적인 측면, 안보의 측면에서 한국은 EU에게도 매우 중요한 나라겠지만, 오늘은 이 역시 탄소만을 놓고 살펴보겠습니다. EU가 우선적으로CBAM을 적용하기로 한 품목을 중심으로, CBAM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들을 살펴봤습니다. 이를 통해 우선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생각보다 큰 러시아의 영향력이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예기치 못한 에너지 대란을 겪고 있는 EU입니다. 에너지에서뿐만 아니라 철강과 알루미늄에 있어서도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또 다른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CBAM은 맘껏 온실가스를 내뿜으며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생산해 EU로 수출중인 러시아를 견제하는 성격을 띤다고도 볼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서방이 러시아를 고립시키고자 노력하는 요즘같은 상황에선 굳이 CBAM이 아니어도 러시아를 견제할 여러 제재 등 방법이 많지만 말이죠.

그런데, EU의 CBAM으로 인한 타격이 큰 10개의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카본브리프의 분석 결과, 우리나라는 6번째로 큰 영향을 받는 나라였습니다. 그 규모만도 20억달러가 넘을 거라는 전망입니다. 도대체 한국과 EU가 이산화탄소를 매개로 어떤 관계에 있기에 이렇게 큰 영향을 받는 걸까요.

산업연구원은 우리나라와 EU 사이 무역을 통해 오가는 탄소 배출량을 살펴봤습니다. 2015년 기준, EU는 우리나라에 1,97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수출했습니다. 우리는 반대로 EU에 2,95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수출했죠. 우리나라는 그동안 EU에게 제품만을 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온실가스도 함께 보냈던 것입니다. 무역수지가 흑자라고 좋아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오가는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줄여내야 할지도 고민해야 했던 것이죠.

CBAM 대상 품목 가운데 가장 탄소집약적인 품목인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2019년 수입액 기준, EU가 가장 많은 철강 제품을 수입한 나라는 중국(15.7%)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5위(8.1%)로, 주요 수입국 중 하나였습니다. 알루미늄의 경우에도, 한국은 EU가 15번째로 많은 알루미늄을 수입한 나라였습니다. EU의 입장에선, 우리나라가 철강과 알루미늄의 주요 수입국인 것이죠.

같은 해 기준, 우리나라의 철강 및 알루미늄 수출 현황도 살펴봤습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 철강산업에 있어 EU(29억 4,200만 달러, 9.4%)는 중국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수출 시장입니다. 미국보다 더 많은 양의 철강 제품을 수출한 것이죠. 알루미늄의 경우에도 EU는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시장(2억 1300만달러, 5.9%)이었습니다. EU의 CBAM에 대해 '별로 큰 수출시장도 아니고, 별 타격 없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없는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나라 수출에 있어 EU 시장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습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의 대(對) EU 철강 수출액은 43억달러에 달했고, 알루미늄 수출액은 5억달러에 달했습니다. 산업연구원이 공개한 2019년도 수출액 대비 철강은 1.5배, 알루미늄은 2.3배가 됐습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전체 철강 수출에 있어 EU 수출의 비중은 10.7%(2021년 기준)에 달하고, 특히 스테인리스 강선과 기타 합금강 및 합금강 반제품 수출에 있어 EU 시장의 비중은 30%가 넘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체 EU 수출 가운데 철강 및 철강제품의 비중은 95.2%에 달할 만큼, EU 수출의 의미도, EU 수출 중 철강의 의미도 매우 큽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대내적으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CBAM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2026년까지의 과도기간 동안, 우리 기업들의 CBAM 적응을 지원하고, CBAM에 대응하기 위한 배출 데이터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겁니다. 기업의 경우 “추가적인 탄소비용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사업장의 탄소배출량 측정과 배출량 자료 관리 능력을 강화하고, CBAM 관련 수출 행정 및 인증 절차를 숙지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론 탄소배출을 감축할 수 있는 생산 공정을 확충하고, 저탄소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수출품목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과연,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무시할 수 있을까요. EU의 CBAM이 이들 제품의 수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선, 다음 주연재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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