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오른 전성현, LG시절 조성원을 소환하다
고양 캐롯의 전성현(31‧188.6cm)은 소속팀을 넘어 현역 KBL 최고의 슈터로 불린다. 외국인선수 포함 팀내 주포 역할을 하고 있으며 타팀의 쟁쟁한 슈터들과의 경쟁에서도 비교우위에 서고있기 때문이다. 현재 24경기에서 평균 19.96득점(전체 2위), 2.96어시스트, 1.92리바운드를 기록하고 있다. 외곽슛에 특화된 슈터답게 자유투를 제외한 득점의 3분의 2이상을 3점슛으로만들어내는 괴력을 과시중다. 게임당 3점슛이 무려 4.04개(전체 1위)로 2위인 오마리 스펠맨(2.79개)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데 성공률 또한 44.29%(전체 4위)에 이른다.
시도 횟수 등을 감안했을때 실질적 1위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근보다 채찍에 익숙한 김승기 감독마저 "출장시간만 조절해주면 알아서 잘한다. 한국농구를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존재다"고 말할만큼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발휘중이다. 무엇보다 매경기 집중마크를 받고있는 관계로 편하게 슛을 쏘기 힘들어진 상황임에도 연일 뜨거운 손끝을 자랑한다는 점에서 감탄을 자아내게하고 있다.
더불어 눈에 띄는 것은 1.25스틸(전체 10위)이다. 보통 전성현같이 공격 비중을 많이 가져가는 슈터는 수비에서 소홀한 것이 사실이다. 애당초 공격 위주로 성장해오거나 아님 효율성을 따져 수비시 힘을 아끼는 이유가 큰데 전성현은 그렇지않다. 수비를 아주 잘한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KGC시절부터 김승기 감독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수비에 대한 강조를 들으며 육성되었던지라 해당 부분에서도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슈터로서 결코 적지않은 스틸 개수가 수비에 대한 적극적인 마인드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시즌 초반부터 꾸준함과 폭발력을 함께 보여주고있는 전성현은 여전히 슛감이 식지않고 있다. 31득점, 2리바운드, 2어시스트로 대승을 만들어낸 22일 삼성전에서는 1쿼터에 자신의 쿼터 커리어하이에 해당되는 19득점을 몰아쳤다. 3점슛 4개, 2점슛 3개, 자유투 1개를 모두 성공시키는 100% 공격 성공률을 뽐냈다. 패하기는 했지만 이어진 KCC전에서도 33득점을 쓸어담으며 맹활약을 이어나갔다. 무려 3점슛을 9개를 성공시켰는데 성공률이 75%에 달했다.
적장인 전창진 감독 또한 “수비로 어떻게 해볼 수준을 넘어선 듯 싶다”며 감탄을 금치못했다. 지금과 같은 페이스라면 역대 최초로 한 시즌 3점슛 200개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전성현 이전 슈터로서 리그를 지배한바있는 조성원(51‧180cm) 전 창원 LG감독의 현역 시절 전성기와 비교한다해도 손색없다는 극찬도 나오고 있다.
조성원은 KCC, LG 등에서 활약한바 있는데 선수로서의 색깔은 KCC 프랜차이즈에 가깝지만 임팩트는 단연 LG시절이다는 의견이 많다. 슈터로서의 존재감은 KBL 역사상 최고였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성원과 전성현은 아마 시절에는 스타플레이어라고 하기에는 다소 부족했지만 프로에와서 엄청난 스탭업에 성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은 국내농구의 최전성기로 꼽힌다. 실업 최강 기아와 연세대를 필두로 여러팀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많은 선수들이 이름을 알렸다. 구태여 허재, 강동희, 이상민, 문경은, 현주엽 등 스타플레이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조금 덜 알려진 대학 선수들까지도 팬들에게 존재감을 어필했던 시기다.
그런 상황에서도 조성원을 아는 이들은 많지않았다. 명지대의 주요 선수 중 한명으로 언급되기는 했으나 유명세만 높고보면 후배인 조성훈에게도 밀렸다. 때문에 상무 시절 문경은과 함께 쌍포로 위력을 떨치자 ‘조성원이 누구냐?’며 이른바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로인해 ‘문경은 우산 효과를 받은 수혜자다’는 다소 억울한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조성원의 진가가 어필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신선우 감독이 이끌던 현대(현 KCC)에서 이상민, 추승균과 함께 이조추 트리오의 일인으로 활약하면서 그제서야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 슈터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편견을 가지고보던 팬들마저도 더 이상 저평가 하기 힘들만큼 최고의 기량을 펼쳐보였기 때문이다.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도 끊임없이 빈 공간을 찾아 움직이며상대 수비진을 괴롭혔고 슛 타이밍이 워낙 빨라 공을 잡는 순간 림을 가르기 일쑤였다. 왼발을 앞에 놓고도 슛을 성공시키는 일명 '짝발스텝'은 물론 속공 시에도 쉬운 레이업슛 대신 3점슛으로 마무리 짓는 등 상황을 가리지 않고 외곽을 성공시키는 전천후 슈터였다.
여기에 빠른 발과 높은 탄력으로 조금의 틈만 있으면 골밑으로 파고들어 속공 레이업슛이나 더블 클러치를 성공시켰다. 수비하는 입장에서 조성원의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정규리그 MVP는 물론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차지한 바 있으며 이충희 등 선배 슈터들로부터 '후계자'로 지목받기도 했다.
'4쿼터의 사나이'라는 애칭이 말해주듯 조성원은 클러치 능력에서도 최고로 인정받았다. 허재 의 투혼으로 회자되고있는 1997-98 챔피언결정전 당시 현대가 7차전까지 가는 끝장 승부 속에서도 기세에서 밀리지 않은 배경에는 조성원의 영향이 컸다. 당시 기아는 이런저런 악재가 겹치며 사실상 외국인선수 한명으로 시리즈를 치러야되는 입장이었지만 허재의 크레이지 모드로 인해 오히려 현대가 압박을 당하고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허재의 엄청난 퍼포먼스에 가려서 그렇지 현대 조성원 또한 손꼽힐만한 활약을 펼쳤다. 불꽃처럼 타오르던 허재가 활화산처럼 공격을 몰아치면 조성원은 말없이 3점슛으로 되받아쳤다. 허재의 불길에 현대가 집어삼켜진다 싶은 순간 외곽 슛을 성공시키며 열기를 잠재워버리는 조성원의 모습은 흡사 싸늘한 얼음 저격수같았다.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조성원의 능력치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는 LG시절이다. 당시 LG는 공격 농구를 추구하며 리그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는데 특히 조성원, 조우현, 에릭 이버츠, 이정래 등이 한꺼번에 쏟아내는 외곽슛은 상대팀 입장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중에서도 조성원은 중심에서 활약하며 토종 선수도 얼마든지 주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위치 타이밍에 상관없이 활을 날리고 상대가 외곽에 집중할 때 칼을 입에 물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골대로 달려가는 검객이기도 했다
현대 시절 조성원은 잘하기는 했지만 적재적소에서 질좋은 패스를 찔러주는 이상민 효과를 많이 보고있다는 얘기도 적지않게 들었다. 틀릴만은 아닐 수 있지만 단순히 받아먹기만하는 유형의 슈터가 아니었던 조성원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던 평가였다. 하지만 조성원은 그같은 저평가에 익숙한 선수였고 LG에 와서 스스로 찬스를 만들어 해결하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며 자신을 둘러싼 저평가에 종지부를 찍는다.
당시 LG는 이상민은 커녕 포인트가드가 약점인 팀 중 하나였다. 오성식은 대학시절 명성에 비해 프로무대서는 이름값에 미치지 못했으며 출전시간 배분과 장신라인업까지 고려한 조우현의 1번 변신은 신선하기는 했으나 한계가 분명했다. 결국 조성원은 포인트가드의 도움은 별반 받지 못하면서도 에이스 역할을 톡톡해해냈고 정규리그 MVP까지 수상한다.
그런 점에서는 전성현도 비슷하다. 전성현이 KGC라는 밸런스 좋은 팀에서 좋은 동료들 덕을 본 것은 사실이다. 돌파에 능한 변준형은 수시로 전성현에게 킥아웃 패스를 넣어주었고 문성곤, 양희종 등 활동량 넘치는 특급 디펜더 라인은 수비부담을 크게 줄여주었다. 골밑을 든든히 지켜주는 것을 비롯 다양한 영역에서 영리하게 농구를 하는 빅맨 오세근은 존재 자체로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는 선수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 역시 전성현의 도움을 많이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전성현이 폭발적으로 외곽슛을 꽂아줬기에 문성곤, 양희종이 공격부담을 덜었고 변준형, 오세근도 좀 더 편하게 내외곽을 오가는 플레이가 가능했다. 경기를 치를수록 성장해가는 모습을보이며 KGC에서의 마지막 시즌에는 ‘전성현이 곧 전술이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반면 캐롯에서는 이정현이라는 신성이 함께하지만 여러모로 KGC시절보다 사정이 좋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성현은 또 한번의 벽을 깬 채 진짜 전성기에 접어들었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팀에서 차지하는 공격 비중이 워낙 큰지라 매경기 집중수비가 들어오지만 수비수를 앞에두고 던지는 터프샷마저 높은 적중률을 보이며 주변을 놀라게하는 모습이다. ‘LG시절 조성원을 보는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만약 전성현이 시즌내내 현재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조성원 이후 리그를 지배하는 토종 슈터의 재림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백승철 기자,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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