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 본격화…70년 된 노동시장 틀 바꾸기
정부는 내년(2023년) 노동시장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 과제 중에서 노동 개혁을 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전문가 집단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이하 연구회) 권고문을 토대로 구체적인 개혁안을 마련해 내년 초 발표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노동계가 '개혁이 아닌 개악'이라며 반발하는 데다, 입법 과제가 많은 가운데 야당이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노조 재정 투명성 강화'도 정치권·노동계 화두로 급부상해 관심을 끕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일 지지 청년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노동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것은 노동 개혁"이라며 "합리적이고 인간적이면서 노동을 존중하는 개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 달라"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종료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사태를 기점으로 노동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최근 대통령실 참모진에도 노동 개혁에 '사즉생의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연구회는 5개월에 걸친 연구·논의 끝에 지난 12일 노동시장 개혁 권고문을 발표했습니다.
사실상 정부 개혁안의 초안이나 다름없습니다.
권고문은 주 52시간제를 업종, 기업 특성에 맞게 유연화하고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 체계를 성과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이 핵심으로,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70년간 유지돼 온 노동시장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근로시간과 관련해서는 일이 많을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일이 적을 때 충분한 휴식을 보상받자는 것이 연구회·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입니다.
연구회는 구체적으로 '주 52시간제'(기본 40시간, 최대 연장 12시간) 개편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현행 '주'에서 '월·분기·반기·연'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구회는 임금체계와 관련해서는 ▲ 중소기업과 근로자에 대한 임금체계 구축 지원 ▲ 업종별 임금체계 개편 지원 ▲ 60세 이상 계속 고용을 위한 임금체계 관련 제도 개편 모색 ▲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 상생임금위원회 설치 등을 제안했습니다.
노동부는 권고문 내용을 대폭 반영한 구체적인 노동 개혁 추진 계획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전문가들의 진단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온 힘을 다해 기필코 완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노조 재정 투명성 강화' 문제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8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그간 노조 활동에 대해 햇빛을 제대로 비춰서 국민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한 총리는 노조 재정 운영의 투명성 등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에 대해 정부가 과단성 있게 적극적으로 요구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의 조합비로 운영되는데, 정확한 사용 명세는 공개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아울러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는 각종 지원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다는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한 총리 발언 이틀 뒤인 지난 20일 노동조합 회계에 대한 감사 규정을 강화한 이른바 '노조 깜깜이 회계 방지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21일 올해 마지막 주재한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노조 부패 척결'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노조 부패도 공직 부패, 기업 부패와 함께 척결해야 할 3대 부패 중 하나"라며 "엄격하게 법 집행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어 "노조 활동도 투명한 회계 위에서만 더욱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며 '노조부패'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노조 회계 감사를 꼽았습니다.
최근 관련 법안 발의 등에 나선 여권의 움직임에 힘을 실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노동부는 노동조합 재정 투명성 제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해외 사례 검토에 나섰습니다.
노동 개혁이 정부·여당 뜻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합니다.
노동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루려면 노동계 협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연구회가 마련한 권고문대로라면 장시간 노동과 임금 삭감이 불가피하다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노동 개혁 과제 중에는 입법이 필요한 사안이 많습니다.
노동부는 근로시간 제도, 임금체계 개편안과 관련해 내년 상반기에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입니다.
하지만 국회 지형도는 정부에 유리하지 않습니다.
'거야'를 설득하지 못하면 노동 개혁을 추진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울러 민주노총이 총파업 등을 통해 대정부 투쟁 강도를 높이는 가운데 정부가 '노조 부패 척결' 카드를 꺼내 들면서 노정 갈등이 한층 심화하고 있습니다.
내년 1월 17일 한국노총 집행부 선거에서 강성 위원장이 선출될 경우 민주노총의 대정부 투쟁에 보조를 맞출 가능성도 있습니다.
야당으로서는 노동계 목소리를 무시한 채 여당과의 협상에 나서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노동 개혁을 이루기 위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며 "결국은 국민 지지를 바탕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박 원장은 "노동 개혁을 통한 미래 세대 일자리 창출이 핵심 과제"라며 "정부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근로시간 제도와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국민 공감대 형성에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여당이 국민 지지를 얻으면 야당도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무리하게 노동계 편만 들 수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유영규 기자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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