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 유지보수 독점 깬다…"안전문제" vs "민영화 수순"
[편집자주] 2004년 본격화된 철도구조개혁은 20년 가까이 미완이다. 철도청 해체를 처음 논의했던 국민의 정부부터, 구조개혁을 본격화 했던 참여정부, 민영화 논란에 휩싸여던 MB·박근혜 정부, 철도통합으로 방향을 틀었던 문재인 정부까지 어느 정권도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다시 철도개혁을 꺼냈다. 이번엔 끝을 볼 수 있을까.
25일 국회와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를 지냈던 조응천 의원은 코레일 외에 다른 기관 등이 철도 유지보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철도산업발전기본법'(철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단순하다. 현행 철산법 제38조의 '시설유지보수 시행 업무는 철도공사에 위탁한다'라는 문장 하나를 삭제하는 것이다.
◇18년 지속됐던 철도 시설유지보수·관제 업무 '코레일 독점' 구조 깨지나
간단해 보이는 개정안이지만 철도산업에 미칠 영향은 작지 않다. 철도청 해체 이후에도 열차 운영부터 시설유지보수, 철도교통관제·운영까지 맡는 독점적 기관으로 자리잡고 있는 코레일의 위상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 SR(수서고속철도)이 출범하면서 고속철도의 독점은 깨졌고 이번 철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코레일의 철로 유지보수 업무 독점이 무너지게 된다. 철산법 개정 후 철로 유지보수 업무를 어느 기관이 맡게될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국가철도공단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코레일의 관제권 독점도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현재 구로에 있는 철도교통관제센터와 별개로 충북 오송에 제2철도교통관제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국토부는 제2 관제센터의 운영은 코레일이 아닌 국가철도공단에 위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SR, 수도권 광역급행열차(GTX) 사업자 등 철도운영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코레일이 관제 업무를 독점하는 것은 안전·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기 때문이다. 감사원도 코레일이 SRT보다 KTX를 우선 배차하는 등 관제 공정성을 훼손했다며 기관 주의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국회와 별도로 국토부도 철도사고가 잇따르자 철도산업 전반에 대한 재검토에 착수했다. 국토부는 최근 '철도안전체계 심층진단 및 개선방안 연구'라는 대규모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연구는 관제·시설유지보수 등 코레일에 위탁하고 있는 국가사무를 진단해 철도안전 확보를 위한 최적의 대안과 이행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다.
◇노조 "개정안 철도 민영화 촉진법"…전문가 "달라진 철도환경 고려해야"
철도노조는 철산법 개정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철도노조는 측은 "개정안은 철도유지보수를 분리해 윤석열 정부의 철도민영화 정책에 부응하는 '민영화 촉진법'"고 주장했다. 과거 정부에서도 철도구조개혁 작업이 시도된 바 있지만 '민영화 수순'이라는 프레임에 갖혀 무산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 코레일이 철도 운영부터 유지보수·관제 업무까지 맡았던 2004년과 지금의 철도산업 환경이 달라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2004년 코레일에 유지보수를 위탁한 것은 '철도시설의 유지보수는 철도운영자가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유였다. 당시 철도운영자는 코레일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는 코레일 외에도 SR·공항철도(AREX)·신분당선(네오트랜스)·진접선(서울교통공사) 등 여러 운영사가 존재한다. GTX가 개통되면 민간 운영사나 지방공기업 등 운영사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여러 민간·기관에서 운영을 맡기 때문에 굳이 유지보수업무를 코레일에만 위탁해야 할 명분이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미완이었다. 법률에 '철로의 유지보수업무는 코레일에 위탁한다'는 문구를 넣으면서 철로 건설은 국가철도공단이 하지만 유지보수는 코레일이 하고, 다시 철로 개량작업은 국가철도공단이 맡는 지금의 구조가 만들어졌다. 열차운영사인 코레일이 유지보수도 해야 안전·효율이 높다는 게 명분이었지만, 철도노조의 반발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또 언젠가 철도청으로 회귀하기 위한 장치를 남겨둔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미완의 '상하분리'는 철도산업에 두고두고 논란을 만들어 왔다. 철도 시설관리 업무의 주체가 둘로 쪼개지면서 '설계-건설-유지보수-개량'의 기본적인 생애주기 관리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또 단순 점검·정비와 시설물 개량·투자 사이 경계가 모호해 졌고 사고 발생 시에는 두 기관간 책임소재 공방이 커졌다.
심지어 일부 노선은 운영과 유지보수 업무가 복잡하게 얽혀 현행법을 지키지도 않는 상황이다. 공항철도 중 인천공항~제2터미널 연결선 구간의 경우 시설관리는 철도공단이, 운영과 유지보수 업무는 공항철도가 맡고 있다. 현행법에 따라 유지보수 업무는 코레일이 맡아야 하지만, 코레일의 사업구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코레일이 공항철도에 임의로 재위탁했기 때문이다.
◇철도공단, 연 1조원 코레일에 유지보수비로 지급…인건비 비중 높아서 첨단 장비 도입 지연
철도공단은 매년 1조원에 가까운 비용을 코레일에 유지보수 댓가로 지급한다. 하지만 안전투자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1조원 중 70~80%가 인건비·경비로 쓰일 정도로 코레일은 인력 중심 구조다 보니 보수비를 늘리는 안전 투자에는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두 기관 사이에 유지보수 원가나 이력관리 공유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철도공단의 적극적인 투자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안전사고를 줄일 수 있는 지능형 폐쇄회로(CCTV)나 사물인터넷(IoT) 기반 철도 시설물 원격감시 등 첨단화 설비투자는 사실상 전무하다. 철도시설 중 노후화로 안전 'C등급' 이하를 받은 시설이 절반(54.7%)을 넘는다. 지난달 사망사고가 발생한 오봉역에서는 예산 문제로 사고 예방 등을 위한 CCTV 카메라가 1대도 설치되지 않았다.
◇유지보수·안전투자 후순위로 밀려…1인당 유지보수 선로 선진국 대비 절반도 안돼
열차운영 수익을 우선해야 하는 코레일의 특성 상 열차를 멈춰야 하는 유지보수사업은 우선순위가 밀릴 수 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레일 유지보수 인력이 9000여명에 달하지만, 1인당 맡은 유지보수 선로길이는 0.84㎞로 스위스(1.6), 네덜란드(2.2) 등 선진국의 절반 이하다. 작업시간도 3.5시간으로 프랑스(5.5시간), 이탈리아(5.5시간), 일본(6.0시간) 등과 비교해 부족하다. 이는 상대적으로 열차 운행밀도(36.38)도 높아서다. 프랑스(17.25), 이탈리아(18.93) 등보다 두 배가량 높다.
철로 유지보수를 위해선 열차 운행을 멈춰야 하지만 코레일이 이익을 내려면 철도 운행을 늘려야 한다. 결국 열차 이익을 늘리기 위해 상대적으로 유지보수시간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독일(DB Netze Track AG), 영국(Network Rail), 프랑스(SNCF Reseau), 네덜란드(Prorail) 등 유럽 국가들은 유지보수를 운영과 독립된 시설관리자가 관리한다.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은 커진다. 이달 초 승객 500명 탑승한 서울지하철 1호선 전동열차가 차량 고장으로 한강철교 위에서 2시간 넘게 멈추는 등 2010년 이후 탈선·멈춤·신호장애 등 열차 사고는 2000여건을 웃돌고 있다. 시속 300㎞로 달리는 고속열차 사고도 매년 4~5건 넘게 발생한다. 올해 1월에는 서울역에서 출발한 부산행 KTX산천열차가 영동터널 인근에서 탈선(궤도이탈)했다. 7월에는 승객 380명을 태운 수서행 고속열차(SRT)가 대전시 대전조차역 부근에서 선로를 벗어났다.
이민하 기자 minhar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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