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전망] 대법원장·헌재소장 교체…사법부 지각변동
"사법부 보수화 경향" 관측…"변화 크지 않을 것" 반론도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2023년은 사법부의 최고 기구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수장이 바뀌는 해다.
5년 임기 동안 대법관 14명 중 13명, 헌재 재판관 9명 전원이 교체되는 윤석열 정부에서 대법원장과 헌재소장의 교체는 '사법부 지각변동'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내년 9월 퇴임…대법관 2명도 교체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넉달 뒤 임기를 시작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6년 만인 내년 9월 임기를 마친다.
후임 대법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결정한다.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를 골라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는 자리니만큼 윤 대통령이 어떤 대법원장을 임명하느냐에 따라 대법원의 색채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
현재 대법원에선 지난달 취임한 오석준 대법관을 빼고 나머지 대법관 모두가 문재인 전 대통령 시기 임명됐다.
'오판남'(50대·판사 출신·남성)이나 '서오남'(서울대 출신·50대·남성) 등으로 비판받던 단조로운 대법관 구성에는 다양성이 다소 생겼다. 야간대학이나 '비(非)서울대' 출신, 노동 사건을 다수 변호한 재야 변호사, 지방에서 오래 근무한 '향판' 등이 대법원에 입성했고 여성 대법관은 4명으로 늘었다.
'코드 인사'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약자나 소수자 보호를 강조하는 등 사회 변화를 반영한 전향적인 판결을 여럿 내놓기도 했다. 학습지 교사를 법적인 노동자로 인정한 판결(2018년), 종교와 신념을 이유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에 내린 무죄 판결(2018년), 동성 군인이 부대 바깥에서 합의로 한 성관계를 처벌할 수 없다고 본 판결(2022년)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김명수 대법원'의 구성은 조재연·박정화 대법관이 퇴임하는 내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바뀐다. 윤 대통령과 대법관 인선을 논의할 대법원장이 9월에 바뀌면 이후로 대법원 구도 변화의 폭은 더 커질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보수화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반적으로 보수화 국면이니 앞으로 몇년 동안 대법원도 보수화 경향을 피하기 힘들 것 같고, 특히 노동 분야 등은 지난날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김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 추천위원회를 내실화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해야 했는데 그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대법관이 차례로 바뀌는 데다 개별 사건에 관한 판단은 다를 수 있어 급격한 색채 변화가 쉽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과거에 임명된 대법관과 새로 임명된 대법관이 머리를 맞대는 구조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시기 임명된 대법관들이 노동 분야 사건에서 노동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 일도 있어 행정부의 성향이 대법관과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고법 부장 승진 폐지 등 '김명수표 개혁' 제동 걸리나
김 대법원장은 이른바 '사법농단'(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땅에 떨어진 사법부 신뢰를 끌어올릴 책임을 안고 취임했고, 임기 동안 대법원장 권한 축소 등 사법개혁을 추진했다.
'법관의 꽃'으로 불리면서도 법관의 관료화·서열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온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를 폐지했으며 일선 판사들이 추천한 사람을 법원장 후보로 올리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했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수직 인사 구조를 해소함으로써 '제왕적 대법원장'을 탈피하겠다는 목적이었지만 반발과 논란도 이어졌다. '고법 부장 승진'이라는 목표가 사라져 판사들이 업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비난 섞인 평가나 법원장을 '인기투표'로 뽑는다는 비판도 있었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고법 부장 승진 폐지 등 김 대법원장 시절의 일부 개혁도 제도화까지 되진 않아 다음 대법원장의 의중에 따라 뒤집힐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사법농단의 근원지로 지목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법원사무처'를 만들어 재판과 사법행정을 분리하겠다는 구상은 김 대법원장의 임기 5년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법제화 문턱을 넘지 못해 차기 대법원장이 강한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실현이 어려워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사건 적체 해결을 위한 판사·대법관 증원이나 3심에 올릴 사건을 선별하는 상고심사제도 도입 등은 이미 사법부 안에서 널리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누가 대법원장이 되더라도 연속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11월 퇴임 유남석 헌재소장…주요 사건 속도 낼 가능성
제6공화국 출범 후 현대사의 고비 때마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온 헌법재판소 구성의 변화도 시작된다. 임기 6년의 헌재 재판관 9명은 윤 대통령 임기 동안 모두 바뀐다.
내년 3월 이선애 재판관을 시작으로 4월 이석태 재판관, 11월 유남석 소장의 임기가 만료된다.
대법원장이 대법관 전원에 대해 임명제청권을 행사하는 대법원과 달리, 헌재 재판관은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3명씩 지명하는 형태다. 하지만 대통령중심제 특성상 대통령의 영향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헌재는 올해 사형제(7월)와 국가보안법(9월) 등 오랜 사회적 논쟁거리에 관한 공개변론을 잇따라 열며 심리에 속도를 내왔다. '검수완박'(9월)이나 퇴거 대상 외국인을 무기한 가둘 수 있게 한 출입국관리법(10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된 사람의 전파매개행위를 처벌하는 에이즈예방법(11월) 사건의 변론도 열었다.
법조계에선 헌재가 재판관 교체 본격화 전에 내년 안으로 계류 중인 주요 사건 결정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xi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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