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저호 사고와 이태원[서중해의 경제 망원경](8)
“우주왕복선과 인명의 손실을 초래할 실패 가능성에 대해 엄청난 의견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패 확률의 추정치는 대략 100분의 1에서 10만분의 1에 이른다. 실패 확률을 높게 보는 쪽은 엔지니어들이고, 낮게 보는 쪽은 경영진이다. 이러한 합의 부족의 원인과 결과는 무엇일까. 10만분의 1의 확률이란 하루에 한 대씩 300년 동안 발사해도 그중에 한 대만 실패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계에 대한 경영진의 환상적인 믿음은 어디서 오는가’라고 질문한다.” “기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실이 홍보보다 우선돼야 한다. 자연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챌린저호 사고가 주는 교훈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에 관한 대통령위원회 보고서>에 부록으로 실린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글은 위의 첫 번째 인용문으로 시작한다. 두 번째 인용문이 마지막 문장이다. 1986년 1월 28일 챌린저호는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면서 발사됐다. 73초 후인 11시 39분에 폭발하면서 승무원 7명이 모두 사망했다. 인용문에서 언급한 합의 부족의 결과였다.
원인을 조사하기 위한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사고 발생 9일 후에 출범했다. 위원장의 이름을 따 로저스위원회로 불렸다. 윌리엄 로저스는 아이젠하워 정부에서는 법무장관을, 닉슨 정부에서는 국무장관을 역임했다. 위원회는 모두 14인으로 꾸렸다. 최초로 달을 밟은 우주인 닐 암스트롱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파인만 교수도 위원회에 참여하게 됐다. 1986년 6월 9일 로저스위원회는 레이건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현재 미국 항공우주국(NASA) 홈페이지에 전부 공개돼 있다.
로저스위원회는 최종적으로 우주선의 폭발 원인을 원형의 링, 즉 ‘O-링’의 부식 때문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우주선의 오른쪽 고체 로켓 부스터의 조인트를 밀봉하는 O-링의 고장으로 인해 고온가스가 분출되면서 외부 추진 탱크가 연소하게 됐고, 결국 우주선의 폭발로 이어졌다. 발사 당일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고무 O-링이 굳어져 조인트를 제대로 봉인하지 못하게 됐다. 이는 O-링의 설계에 기술적 결함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고서는 NASA와 O-링 공급업체인 모턴 사이어콜(Morton Thiokol)이 이 설계 결함을 알고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미 1977년에 NASA 관리자들은 O-링의 결함을 알고 있었고, 공급회사도 인정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결함을 알고도 발사 결정을 내린 의사결정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보고서 결론의 일부였다.
파인만 교수는 위원회의 일정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직접 조사하는 방법을 택했다. TV로 중계되는 청문회에서 파인만 교수는 O-링 샘플을 얼음물 한 컵에 담가 얼음처럼 차가운 온도에서 어떻게 O-링의 탄력성이 떨어지고 밀봉 오류가 발생하는지 시연했다. 파인만 교수는 특히 NASA의 엔지니어와 경영진 사이에 의사소통이 거의 단절돼 있고, 심지어 경영진이 중요한 공학적 개념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부각시켰다. 파인만 교수의 조사와 견해는 위원회 보고서에 온전하게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고서의 부록에 수록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챌린저호 사고는 여러 방면에서 교훈을 남겼다. 직접적으로는 NASA의 의사결정 과정과 조직 운영을 안정성 중심으로 하도록 개편했다. 파인만 교수의 인용문에 적시돼 있듯이, 아주 중요한 사안에 대해 현장의 엔지니어들과 경영진 사이의 현저한 견해 차이와 이러한 견해 차이를 줄여줄 의사소통 채널이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파인만 교수 개인으로서는 과학자의 정치 참여가 어떻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로저스 위원장에게 파인만 교수는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공식적인 절차를 따르기보다는 독자적으로 조사하면서 돌출행동을 하기 때문이었다. 파인만 교수 입장에서는 ‘위원회는 공식체계를 넘어서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챌린저호 참사는 경제학자에게도 영감을 제공했다. 2019년 ‘세계 빈곤 퇴치를 위한 실험 경제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공동수상한 마이클 크레이머 박사는 커리어를 시작할 당시인 1993년에 ‘경제발전의 O-링 이론’을 발표했다. 챌린저호 참사는 우주선처럼 복잡한 시스템의 실패가 O-링과 같은 부품 하나에서도 촉발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크레이머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점으로, 생산과정이 복잡할수록 하위구성 부분을 모두 함께 제대로 실행해야 높은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크레이머에 따르면 선진국-후진국 사이의 경제발전 단계 차이는 바로 이러한 복잡한 시스템을 다룰 수 있는 역량의 차이에 기인한다. 크레이머의 이론은 동일한 기능을 보유한 노동자가 동일한 업무를 하는데, 근무 회사에 따라서 보수 차이가 크게 나는 이유도 설명한다. 비록 동일한 기능과 업무라 할지라도 소속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가치가 다르면 업무에 대한 보상, 즉 임금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복잡한 사회·경제에 대응할 역량 중요
복잡한 시스템은 복잡한 구조물뿐 아니라 자연계와 인간사회에서도 널리 발생하는 현상이다. 생물학·물리학·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에서 탐구의 대상이다. 경제 현상으로서는 인터넷에 기반을 둔 디지털 경제가 등장하면서 복잡한 시스템으로서의 경제 현상이 더욱 위세를 떨치고 있다. 복잡한 현상은 왜 다루기 힘들까. 복잡한 현상을 촉발하는 요인의 하나는 환류 경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안의 결과가 다시 원인이 돼 시스템 전체에 새로운 변화를 촉발하게 되는 것을 환류라고 한다. 기후시스템이 전형적이다. 빙하의 얼음이 녹으면 지면이 노출되고 노출된 지면은 열을 더 흡수해 더 많은 눈을 녹이게 된다. 인터넷을 매개로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나면 양방향 소통이 가능해진다. 소비자가 생산품에 대한 평가를 남기고 생산자는 이를 기반으로 개선을 하게 되면 환류 채널이 작동한다고 말한다.
환류 경로가 작동하는 복잡한 시스템은 예측가능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작은 부품의 오작동으로 전체 시스템이 무너지기도 한다는 것을 챌린저 사고가 보여줬다. 이 사안은 거대한 인공 구조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사회·경제 시스템의 복잡도 또한 현저하게 상승했다. 이러한 현실의 변화를 직시하고, 복잡한 문제를 다룰 역량과 관리 체계를 점검하고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를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이태원 참사는 우리 사회가 복잡한 현실에 대처할 시스템 관리 역량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을 보여줬다. 어렵게 출범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하루라도 빨리 자리를 잡기를 촉구한다. 위원회 활동은 책임 규명에 한정돼선 안 된다. 이러한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 모두의 염원일 것이다.
서중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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