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신’ 모이라이의 선택[박희숙의 명화로 보는 신화](25)
다가오는 2023년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매년 연말연시에 반성을 거듭하지만, 많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고 있다. 내가 하지 않아도 타인에 의해, 가족에 의해 인생의 변수는 항상 있다. 그로 인해 삶의 질이 바뀌기도 한다. 그렇다고 세상을 홀로 살 수도 없다. 또 운명의 실타래를 끊어버리고 싶어도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우리를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모는 신이 모이라이다. 모이라이는 밤의 신 닉스의 세 자매다. 첫째인 클로토(로마신화에서는 노나)는 베를 짜는 여신으로 운명의 실을 뽑아낸다. 둘째는 라케시스(데키마)로 나눠주는 여신이다. 운명의 실을 짠다. 막내인 아트로포스(모르타)는 거역할 수 없는 여신이다. 운명의 실을 가위로 잘라 생명을 거두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모이라이 여신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에게 복이나 화를 주며 인간의 모든 것을 감시한다.
그리스신화에서 운명을 담당하는 세 여신의 영역은 신조차 함부로 할 수 없다. 올림포스 최고의 신 제우스는 운명의 지배자로 불리며 모이라이를 시종으로 두었지만, 그 역시 운명에 종속된 존재로 모이라이의 결정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운명의 여신을 거역한다는 건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운명의 여신 세 자매는 커다란 실타래와 가위를 들고 함께 다녔다. 사람이 태어나면 그때부터 실타래가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한다. 큰 가위로 실을 잘라내면 생명도 끝이 난다.
이 세 여신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 지오반니 안토니오 바치 소도마(1477~1549)의 ‘운명의 세 여신’이다. 바닥에서 동전을 가지고 장난을 하는 어린아이 뒤에 3명의 여인이 서 있다. 중앙의 여인이 오른손에 가위를, 왼손에는 실을 잡고 있다. 오른쪽 실타래를 들고 있는 여인은 아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왼쪽 실을 길게 풀고 있는 여인은 큐피드를 바라보고 있다.
오른쪽에서 왼쪽에 이르는 3명의 여인이 실을 잡고 있는 건, 그들이 운명의 세 여신 모이라이임을 의미한다. 세 여신이 어린아이 뒤에 서 있는 것은 그들의 수명을 재단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큐피드는 활시위를 잡고 있지만, 화살촉은 바닥에 떨어져 있다. 실제로 여신들을 향해 화살을 쏠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 세 여신이 독신임을 암시한다.
소도마의 이 작품에서 왼쪽 실의 길이를 재고 있는 여신 뒤에 한 여인이 있다. 해골과 낫을 들고 있다. 죽음의 신을 상징한다. 가위와 낫은 길고 짧은 인생을 재단하는 일이 신의 영역이라는 의미다.
2022년이 저물어간다. 올해는 누구에게나 다사다난한 해였다. 다사다난이란 살면서 누구나 다 겪는 일이다. 유별난 인생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 해를 살면서 실수했던 일들을 일일이 기억할 필요는 없다. 기회는 매일 찾아온다. 단지 기회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박희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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