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목격자이자 생존자, ‘두 팔 사라지는 악몽’ 꾼다
“생존자들은 위태롭습니다. 스스로는 (고통을) 자각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혼자 속으로 앓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부는 참사 생존자를 지켜내십시오. 부디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박지혜(29)씨의 동생 진성(25)씨는 유족인 동시에 참사 당일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기도 하다. 그는 참사 당일 어머니·누나와 함께 이태원에 처음 가봤다고 했다. 압도적인 인파에 휘말린 가족 중 진성씨와 어머니는 가까스로 구조됐지만, 지혜씨는 끝내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누나 흔적이 많았습니다. 치우고 싶지 않지만, 그 흔적을 보면 누나 생각이 나고, 누나가 생각나면 그날이 떠올라 누나의 짐을 대부분 정리했습니다. 어머니는 불면증에 시달려 하루에 1~2시간 이상 잠을 못 주무십니다.” 22일 만난 진성씨는 참사 희생자 유족이 느끼는 슬픔에 더해 생존자로서 갖게 된 트라우마까지 이중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을 전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그 유족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생존자들에 대해서도 ‘방치’라는 방식을 통해 그 존재를 지워가고 있다. 최근 한 생존자의 극단적 선택이 세상에 알려지자 “좀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면 좋지 않았을까”(한덕수 국무총리)라고 말한 것은, 지우려 했던 존재가 다시 드러난 것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불편한 속내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는 참사를 통해 드러난 정부·여당의 무능과 무책임을 어떻게든 임기 첫해 기록에서 삭제하려 하지만, <한겨레>와 만난 참사 생존자들은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과 싸우며 일상을 지키는 동시에 살아남은 자로서의 미안함까지 떠안고 있었다.
분장사인 동은진(22)씨는 목격자이자 생존자다. 참사 발생 당일 이태원 해밀톤호텔 골목 근처에서 사람들에게 핼러윈 분장을 해 주다가 쓰러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겨우 벗어나 참혹한 현장을 지켜봐야 했다. 심폐소생술(CPR) 교육 이수증을 갖고 있었는데도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잘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자꾸만 ‘두 팔이 사라지는 꿈’을 꾼다고 했다. “악몽과 불면증, 트라우마를 처음 겪어봤어요. 최근에도 악몽을 꿨는데, 어떤 사람이 살려달라고 이야기해 제가 심폐소생술을 해주려는데 순간 양팔이 없어져 그걸 못 해준 상태로 깼어요.” 동씨는 “희생자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곤 하지만, 아직도 이태원 광장 시민분향소엔 가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마음이 너무 안 좋아지고, 저 자신을 붙잡지 못할 것 같다”며 울먹였다.
참사 현장 골목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남인석(80)씨도 지금까지 참사 당일의 기억을 놓지 못한다. 사고 상황을 인지하자마자 골목을 돌아 구조에 나선 그는 “50분간 사람들이 눌려 있는 순간”이 생생하다고 했다. “누가 위로해준다며 술 사준다고 불러도 그냥 갔다가 도로 돌아와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는 젊은 애들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돌고, 그날 풍경이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내가 무슨 술을 먹고 히히덕 거리고 있겠어요. 다시 가게로 와서 애들 옆에 있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해요.”
생존자이자 구조자였던 대학생 선아무개(26)씨 역시 두 달 가까이 일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날 집에 돌아온 뒤 4~5일은 악몽을 꾸고 잠을 잘 못 잤어요. 2주 정도는 계속 집중이 안 되고, 사람들 많은 곳에 가면 저절로 멍해졌어요. 학교 수업을 몇 개 빠지기도 하고…. 이태원에 갔던 걸 아는 친구들과 주변 어른들 연락을 많이 받았지만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요. 이태원에 함께 갔던 친구와도 그 날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말을 하지 않는다고 선씨의 일상이 참사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그는 어떻게든 사람들을 빼내고 구조하려고 했음에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구조를 통해 누군가는 살아남았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선씨는 “누군가의 죽음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힘들다”고 했다.
참사를 향한 비뚤어진 시선은 애써 일상을 견디는 이들을 더 힘들게 한다. 참사 현장에서 빠져나온 뒤 한 방송사와 인터뷰했던 선씨는 해당 보도에 달린 댓글을 잊지 못한다. “인터뷰 영상에 ‘왜 거기에 갔느냐’는 등의 댓글이 달린 걸 봤어요. 상처가 됐어요. 계속 댓글을 보다 보니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더 (사건을) 멀리하게 됐어요.” 동씨도 생존자와 희생자를 탓하는 듯한 정부·여당의 막말과 악성 댓글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다. “사고 날 줄 알고 간 것도 아닌 어린 친구들에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슬픔을 딛고 저마다 방식으로 일상을 되찾으려 노력하는 생존자들은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자”며 다른 생존자를 위로한다. 남씨는 아직 손님이 돌아오지 않은 이태원 골목을 비추려 가게 불을 환히 켜 둔다. 추모객의 길눈을 터주고, 예전의 활기를 다시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선씨 역시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계속 (참사 기억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동씨는 “이태원은 나의 일터이자, 그 자체로 정말로 자유롭고 밝은 곳이다. 다른 생존자들도 정말 힘냈으면 좋겠다. 더 열심히 살고, 안 좋은 마음 갖지 말고, 꼭 상담을 받길 바란다”고 했다.
참사의 고통, 누나의 죽음 앞에 선 진성씨는 정부에 더 적극적인 대책을 요청했다. “너무도 고통스러운 나날입니다. 절벽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만 보고 방치하면 그들을 절벽에서 미는 것과 같습니다. 정부는 생존자를 찾으시고 치료에 총력을 다하십시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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