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윤봉길 의사 서거 90주년을 기리며

윤진용 법무법인 저스티스 변호사 2022. 12. 2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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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용 법무법인 저스티스 변호사

지난 12월 19일은 윤봉길 의사 서거 90주년이 되는 날이다. 윤의사를 생각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말이 있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사내대장부가 뜻을 세워 집을 나가면 그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1930년 3월 6일 윤봉길 의사가 독립운동이라는 큰 뜻을 세우고 고향을 떠나며 남긴 유명한 말이다.

필자가 이 글귀를 처음 접한 건 2012년 11월 상해정법대학 연수 시절이다. 그 당시 남의 눈 상관없이 남녀노소 각양각색 취미생활을 즐기는 중국 공원문화에 신기해하며 주말마다 가족들과 상해 곳곳에 있는 공원으로 사람 구경을 다녔다. 지금은 루쉰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홍구공원의 깊숙한 곳에 매헌이라는 윤봉길 의사의 호를 딴 2층짜리 기념관이 있다. 번듯한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고 단아한 목조 건물이라서 더 마음을 끌었던 기억이 난다. 빨간 목조골격에 기와지붕을 올린 소박한 기념관이 매화나무들 사이에 호젓이 앉아있는 모습이 마치 머나먼 타향 중국에서 독립운동의 큰 뜻을 불태우던 윤봉길 의사의 의젓한 모습을 연상하게 했다. 기념관이 세워진 자리는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의거로 사망한 일본 핵심 전범 중 하나인 시라카와 일본군 대장을 기리기 위한 탑를 세웠던 바로 그 자리라고 해서 더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 기념관을 보고 그토록 가슴 뜨거운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으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의거 전날 아비 없이 남겨질 두 아들에게 남긴 윤봉길 의사의 유서다.

24살 시퍼런 청년에게 지워진 운명적인 대의가 야속하기도 하고, 조국의 풍전등화 앞에서 조국독립의 밀알이 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의연함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말할 수 없는 존경과 감동이 밀려 올라왔다. 하루하루 일신의 양명과 경제적 풍요를 위해 살아가는 이 시대의 평범한 가장의 한 사람으로 부끄러웠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만을 찾으며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내가 할 일들이 무엇인지 애써 외면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됐다.

그렇게 깊은 감동을 받았음에도, 귀국해 쏟아지는 업무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날의 감동은 아득하게 잊혀져 갔다.

그러던 중 2020년 9월 홍성지청장으로 부임하고 나서, 윤봉길 의사의 출생지인 예산을 방문했을 때 그분의 생거지와 기념관을 둘러 보게 됐고, 이역 만리 남의 나라 공원 한 켠에 세워진 윤봉길의사기념관을 찾은 그 날의 감동이 다시 밀려왔다.

기억 저편에 있던 상해에서의 충격과 감동을 되살리는 계기가 됐으며, 의사의 일대기를 읽고 기념관을 찾아 그 분의 업적과 행적을 다시 공부하게 되면서, 윤봉길 의사가 우리가 알고 있던 상해 의거만이 아니라,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향에서 농민계몽운동 등을 통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많은 업적을 이룬 선각자이셨다는 것과 상해 의거의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4억 중국인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는 그 당시 장제스 총통과 중국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줬고, 그 후 카이로 회담에서 전 세계에 조선독립의 필요성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으며, 조선독립의 시발점이 됐다.

윤봉길 의사가 이역만리 일본 땅에서 조국독립의 꿈을 품고 순국하신 지 90년이 흘렀다. 지금 우리는 각 진영 간, 세대 간 온갖 갈등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상충해 도저히 서로 간 소통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태에 놓여있다.

이제부터라도 윤의사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서로 간 작은 이익으로 손익계산서를 따지지 말고 시대가 요구하는 대의와 변화의 요구를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거처, 각자의 위치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거 90주년을 맞아 윤봉길 의사의 생애와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되새기는 것도 뜻깊은 일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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