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고 뜯는’ 즐거움까지 담았다…밥상 키우는 ‘케어푸드’
류아무개(74)씨는 15년째 당뇨를 앓고 있어 매 끼니를 저당식으로 챙겨야 하는데, 여간 고역이 아니다. 치아도 말썽이어서 조금이라도 딱딱한 음식은 씹는 것조차 힘들다. 돌봐주던 아내가 올해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고생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했다. 류씨는 최근 한 식품업체가 내놓은 ‘고령화 친화 식품’을 맛본 뒤 정기구독을 신청하기로 결심했다. 류씨는 “부드러워 입에서 잘 녹는 데다 저당·저염식이라 한 끼 식사로 만족스럽더라”며 “나 같은 환자들에게 맞춤한 식품을 집으로 배달까지 해준다니 편리하다”고 말했다.
저출산과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등으로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기대 수명까지 늘면서 ‘케어푸드’ 시장이 새로운 성장 시장(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건강관리에 관심이 높은 젊은층이나 다이어트에 민감한 여성, 영양 관리가 필요한 임산부 등을 대상으로 한 ‘개인 맞춤형 식품’으로 시장이 세분화하면서 케어푸드가 식품업체들의 미래 먹거리로 급부상하는 모습이다.
■ ‘초고령 사회’ 진입 길목…2025년 케어푸드 시장 3조원대 전망
케어푸드는 본래 식품 섭취와 소화에 어려움을 겪거나 질병으로 특별 관리가 필요한 고령층을 주 타깃으로 한다. 조리가 간편하고, 식품의 물성을 조절해 치아가 약해도 쉽게 씹을 수 있으며, 소화에도 편하면서 필요한 영양 성분을 충분히 담는 형태로 제조·가공된 것이 특징이다.
국내 케어푸드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5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케어푸드 시장 규모는 2014년 7천억원 수준에서 지난해에는 2조5천억원대로 성장했고, 2025년에는 3조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케어푸드 시장 급성장 바탕에는 고령인구의 증가가 자리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전체 인구에서 65살 이상 고령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17.5%에서 2030년 25.5%, 2050년 40.1%, 2070년 46.4%로 갈수록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65살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으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는 현재 ‘초고령 사회’의 초입에 들어선 셈이다.
씨제이(CJ)프레시웨이 관계자는 “올해 우리나라 65살 이상 고령인구가 900만명을 넘었는데, 특히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를 중심으로 한 장년층 중에는 경제적 여유가 충분해 행복한 여생을 위한 건강관리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액티브 시니어’가 많다”며 “이들을 공략하기 위한 케어푸드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전엔 고령자를 위한 음식이라고 하면 단순히 먹기 수월한 ‘유동식’이나 ‘죽’ 등을 떠올렸지만, 지금은 일반식과 같은 맛과 풍미를 내면서도 잇몸으로 씹거나 혀로 녹일 정도로 부드러운 제형의 식품들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시장에 출시된 케어푸드는 밀키트, 가정간편식, 구독 등 형태가 다양한데다 1만원 이하 상품도 많아 경제적 부담도 크지 않다.
■ 현대그린푸드·씨제이프레시웨이·풀무원 등 시장 선점…스타트업 가세
이런 수요 증가에 맞춰 국내 대형 식품업체들까지 앞다퉈 케어푸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식자재 유통업계 1위 기업인 씨제이프레시웨이는 2015년 발표한 케어푸드 브랜드 ‘헬씨누리’를 중심으로 케어푸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7월엔 케어푸드 간편식 세트 ‘소담한상’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균형 잡힌 영양과 소화·흡수 촉진이 용이한 것은 물론 상온 보관이 가능하고, 간단하게 데우면 되는 등 조리가 편하도록 기획한 건강식 세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그린푸드는 2020년 케어푸드 전문 브랜드 ‘그리팅’과 온라인쇼핑몰 ‘그리팅몰’을 선보였다. 그리팅몰에서는 케어푸드 간편식 300여종을 판매 중이며, 1~2주 단위로 보내주는 케어푸드 정기구독 서비스도 제공한다. 또 암 수술 후 회복을 돕는 ‘암환자식단’을 비롯해 ‘당뇨식단’ ‘신장질환자식단’ ‘고혈압식단’ 등도 판매하고 있다. 현대그린푸드 관계자는 “그리핑 매출은 매년 두 배 이상씩 증가하고 있고, 그리팅몰에 가입한 소비자만도 20만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풀무원은 계열사 풀무원푸드머스의 시니어 전문브랜드 ‘풀스케어’를 통해 분말식, 영양균형식, 연화반찬 등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고 있다. 아워홈은 2018년 시니어 전문 식품 브랜드 ‘케어플러스’를 내놓고 노인시설·복지시설 등에 단체 납품을 하는 등 시장 선점에 나섰다. 일동후디스(‘하이뮨 케어메이트’), 에치와이(‘잇츠온 케어온’)도 다양한 케어푸드 상품을 판매 중이다.
스타트업들도 앞다퉈 가세하고 있다. 암 환자를 위한 간편식 개발로 크라우드 펀딩을 받은 샐리쿡이 대표적이다. 이 업체는 ‘한국형 지중해 식단’을 표방하고, 암 환자와 당뇨 환자용 식단 등 다양한 고령 친화 식품을 판매 중이다.
정부는 이런 시장 상황에 맞춰 지난해 5월부터 ‘고령친화우수식품 지정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가 고령자를 위한 식품 개발과 시장 활성화를 위해, 고령자의 섭취·영양 보충·소화·흡수 등이 용이하도록 제조·가공되고 사용성을 높인 제품을 ‘우수식품’으로 지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2010년대 들어 농림수산성이 나서 고령화 식품의 규격 기준을 통일하고 산업육성을 도모하기 위해 ‘스마일케어식’이라는 표시제도를 정책적으로 도입했다”며 “한국의 고령친화우수식품 역시 이와 비슷한 제도로, 앞으로 그 종류와 기준이 다양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 다이어터·임산부·젊은층 공략하는 ‘맞춤형 케어푸드’로 확장
케어푸드 시장은 ‘고령자 친화식’이나 ‘환자식’을 넘어 건강에 관심을 가진 젊은층과 어린이, 다이어트 제품을 찾는 사람들, 영양관리가 중요한 임산부 등을 겨냥한 새로운 시장으로 점차 확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케어푸드의 방향성은 맞춤형 다품목 소량 생산으로 가고 있는데, 개인 취향과 필요에 맞춘 ‘구독형 식단’이 대표적”이라며 “시장 확장성 측면이나 수익성 측면에서 ‘식품의 개인화·고도화’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개인의 취향을 고려해 만드는 현대그린푸드의 ‘챌린지 식단’이 대표적 사례다. 챌린지 식단은 전문 다이어트 메뉴로 구성된 ‘뷰티 핏’, 균형 잡힌 단백질 고함유 식단 ‘프로틴 업’, 100% 식물성 재료를 사용한 ‘베지 라이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밖에 급속 냉동 기술을 적용해 방부제를 넣지 않고, 설탕 대신 볶은 양파·사과·배·망고 등을 갈아 넣어 어린이 취향에 맞춘 어린이 전용 케어푸드 ‘그리팅 키즈’도 출시한 바 있다. 다양한 케어푸드 생산을 위해 ‘스마트 푸드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소비자 요구에 맞춰 매일 300여종, 1만5천가지의 다양한 식단을 제조·공급할 수 있다”고 현대그린푸드 쪽은 설명한다.
풀무원의 ‘디자인밀’도 비슷한 경우다. 풀무원은 최근 다양한 곡물에 단백질·채소 토핑으로 포만감은 높이면서도 한 끼 평균 300㎉를 유지한 ‘300라이스밀(Meal)’ ‘300샐러드밀’ 등 열량 조절식을 잇따라 출시했다. 메뉴의 50%는 식물성 지향 원료를 사용하거나 나트륨 양을 1일 영양성분 기준치의 50% 이하로 설계하는 등 개인의 요구에 맞춘 다양한 구성을 앞세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쪽은 “개인의 취향, 생애 주기, 건강 상태 등을 두루 고려한 ‘나만의 식품’을 선택하는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식품의 개인화·나노화’가 진행 중”이라며 “이런 흐름은 빅데이터·웨어러블 기기 등으로 실시간으로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예측하는 ‘푸드테크’(푸드+기술)와 결합해 케어푸드 시장의 세분화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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