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러·우크라 전쟁, 韓 기업에 막대한 피해… 美 제재 리스크 신속 대응”
미국의 對러·중 제재 피해 기업 대리
“고강도 긴축, 경기 침체로 해외 소송 늘 것”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300일 이상이 지났다. 4만명이 넘는 사망자와 5만여명의 부상자가 나왔으며, 경제적 손실은 3500억달러(45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 경제도 전쟁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올 초 러시아에 직접 진출한 우리 기업은 150여곳에 달했던 것으로 집계됐다. 서방 국가들의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러시아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한국 기업들의 피해도 불가피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질수록 법률 전문가의 역할도 중요해진다. 법무법인 율촌 국제경제제재팀은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 기업들이 당면한 문제를 풀어주는 ‘해결사’를 자처한다. 러시아·이란·미얀마·북한 등에 대해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 유럽연합(EU)이 시행하는 경제 제재와 관련, 우리 기업들의 법률 자문에 응해왔다.
국제경제제재팀의 활약에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가 있다. 율촌 해외소송·해외정부조사팀(이하 해외소송팀)은 제재의 내용과 영향을 심층 분석하는 한편 우리 기업이 해외 정부나 글로벌 기업과의 소송에 휘말릴 시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달 초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율촌 사무실에서 두 팀을 이끄는 리더들을 만났다. 국제경제제재팀장을 맡은 신동찬 변호사는 국내 기업뿐 아니라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의 국제경제 제재 관련 법률 자문을 수행한 전문가다. 해외소송팀장인 김용상 외국변호사는 두 곳의 미국 대형 로펌에서 15년간 근무하고 2020년 율촌에 합류한 미 소송 및 정부조사 전문가다. 국내 대기업의 미국 민사집단소송, 일본 기업의 미 법무부 형사조사, 론스타가 제기한 투자자와 국가 간 분쟁(ISD)을 담당한 이력이 있다.
◇ 러·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對러 제재 강도 높아져… 현대일렉트릭 대리해 승소
지정학적 위기가 우리 기업에 영향을 미친 것은 하루 이틀 된 일은 아니다. 패권국인 미국은 과거 중동, 미얀마 등과 갈등하며 해당 국가는 물론 그 나라들과 교류하는 제3국 기업들에도 강도 높은 제재를 가했다.
현재 국제경제제재팀이 주시하고 있는 국가는 러시아와 중국이다. 이른바 ‘신냉전’ 시대가 재도래하며 미국과 러·중 2개국의 사이가 연일 냉각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다시 치를 기세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와중에 러·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면서 미국·유럽과 러시아의 정치적·경제적 분쟁이 치열하다.
신 변호사는 미국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가 과거 대이란 제재를 닮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에서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후 미국 기업이 모두 철수했기 때문에, 미 정부는 이란 경제를 제재하는 데 있어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며 “올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점점 대이란 제재와 비슷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대러 제재 강도를 높일수록 러시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상황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러·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반년 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는 신 변호사는 “한국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벌이는 사업 규모는 미얀마나 이란(에서의 사업 규모)과 비교가 되지 않는 정도”라며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제재가 완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신 변호사에 대해 “미국 워싱턴DC의 정부 기관에 직접 출입하면서 협상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거의 유일한 한국 변호사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로펌에 의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전략을 수립해 고객에게 제시하기 때문에 타깃이 계속 바뀌는 미 정부의 경제 제재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에 대한 경제제재 위반 자진신고(VSD·Voluntary Self-Disclosure) 관련 사건은 국제경제제재 관련 사건 중에서도 특히 어렵다고 평가 받는다. VSD는 기업이 경제 제재 위반 법규를 적시에 자진 신고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경우 가중처벌 사유가 없는 한 불기소 합의를 맺고 벌금을 면제해주는 미 정부의 정책이다. 신 변호사는 “그동안 미국 경제 제재와 관련해 여러 건의 VSD 사건을 대리했는데, 실패한 적이 없으며 전부 비조치의견서(노액션레터·No Action Letter)를 받았다”고 말했다.
일례로 율촌 국제경제제재팀은 미 정부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 기업 JSC파워머신즈가 제기한 소송에서 현대일렉트릭을 대리해 지난 8월 승소했다. JSC와 현대일렉트릭은 2016년 컨소시엄을 구성해 베트남 화력발전소를 건설하기로 했으나, JSC가 미 정부의 타깃이 되자 현대일렉트릭은 피해를 막기 위해 계약 이행 불가를 통보했고 이것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진 것이다. 재판부는 “현대일렉트릭이 계약을 이행할 시 미국 내 자산 관련 거래가 동결되는 등 극심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 “율촌 해외소송팀, 美 로펌 그대로 옮겨온 것과 다름 없어”
김 변호사가 이끄는 해외소송팀은 국제경제제재팀과 ‘공생 관계’에 있다. 신 변호사는 율촌 해외소송팀을 두고 “미 로펌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과 다름 없는 팀”이라고 평가했다.
VSD 건을 처리할 때도 해외소송팀의 역할이 중요하다. 고객이 미국의 제재를 위반한 경우, 해외소송팀이 먼저 나서서 관련자 인터뷰 및 서류 검토 등 내사 작업에 착수한다. 이를 통해 제재를 위반할 수밖에 없었던 경위 등 소명 자료를 작성해 자진 신고한다. 경제 제재에 대비한 기업의 내부통제(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구축도 해외소송팀이 주로 담당한다.
율촌 해외소송팀은 미국 대형 로펌 전관 변호사들과의 협업도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초기 전략 수립과 증거 문서 분석 등은 우리가 하되, 현지 전관 변호사의 개입이 필요한 경우에는 어느 로펌의 어떤 변호사가 가장 적합한지 신속하게 판단해 연결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 연방검사 및 현지 로펌에서의 오랜 경력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김 변호사는 당분간 국제 분쟁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정학적 리스크뿐 아니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에서 비롯된 경기 침체 등 거시 경제의 악화가 기업의 존폐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그는 “국제 경제 제재가 심해질 수록 제재로 인한 피해 리스크를 어느 쪽에서 짊어질 지를 놓고 분쟁이 늘어날 것이며, 경기 침체는 계약 지연이나 파기, 그로 인한 법적 공방의 증가를 야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에 우리 기업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김 변호사는 “일단 계약 검토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초기 단계부터 전문가들이 개입한다면, 상황을 유리하게 전개시킬 방법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법 위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김 변호사는 “몇몇 임직원의 행동이 회사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이를 예방하기 위해 평상시에 내부통제 교육을 잘하고 잘못된 행위를 미리 감지해낼 수 있는 사내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신 변호사는 물론 초기 대응이 중요하지만 ‘사후약방문’도 잘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VSD 사건을 끝낸 뒤 내부통제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업들도 있다”며 “앞으로는 내부적으로 준법 경영을 잘 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면, 미 정부도 이를 참작해 처벌 수준을 낮춰주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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