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서 칼바람 맞은 ‘대륙의 술’… 마오쩌둥 마셨던 마오타이마저 싸늘
‘대륙의 술’이 사라졌다.
중국 음식점에서 싸게 마시는 ‘배갈’부터 중국 ‘국주(國酒)’ 마오타이(茅臺)에 이르기까지 중국 바이주(白酒)가 우리나라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위스키와 와인, 사케를 포함한 전 세계 주류가 유래를 찾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나라 시장에서 급성장하는 가운데 유독 중국 술만 이 자리에 끼지 못했다.
26일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 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맥주를 제외한 중국 바이주 수입량은 421톤을 기록했다. 990톤이었던 2018년에 비하면 43% 수준이다.
수입액도 같은 기간 26% 쪼그라 들었다. 2018년 1위안 당 160원 안팎이었던 환율이 올해 최고 200원을 넘어섰던 점을 감안하면 수입액도 거의 반토막이 났다.
바이주는 무색 투명하다는 뜻인 ‘백주(白酒)’를 중국어 발음에 따라 표기한 단어다. 잘 알려진 고량주(高梁酒)가 대표적인 바이주다.
고량주란 이름은 대만에서 주로 사용한다. 대만 진먼다오(金門島)나 산둥반도 옌타이(煙臺)가 유명 산지라 이 지역 출신 화교가 주로 자리 잡은 우리나라 중국 음식점에서 인기를 끌었다.
‘배갈’이라 불리는 중국 술도 전부 바이주에 속한다. 배갈은 흰 백(白)자에 ‘수분이 거의 없는 알코올’을 뜻하는 간(干)이 합쳐진 배간(白干)에서 유래했다. 중국 현지에서는 배갈을 ‘바이간’ 혹은 ‘바이간얼(白干兒)’이라고 읽는다.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바이주는 국내 시장에서 없어서 못 팔 만큼 인기가 많았다. 수이징팡(水井坊·수정방) 같은 일부 바이주는 고급 선물용으로 명성이 높았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2011년 바이주 수입액이 지금보다 3배 이상 많은 303만달러에 달했다. 2013년에는 444만달러, 2014년에는 539만달러까지 늘었다.
한국주류수입협회 관계자는 “바이주는 빛깔이나 맛이 증류식 소주와 비슷하지만 도수는 높아서, 예전처럼 강한 소주를 찾는 소비자들 정서에 잘 맞았다”며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이 소비하는 바이주 양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6년 이른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와 이후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을 겪는 동안 우리나라에 바이주를 유통하던 수입사 가운데 절반은 자취를 감췄다.
여기에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코로나 발생과 대응, 우리 역사와 문화를 중국에 편입시키려는 시도에 대한 반중(反中) 정서가 거세지자 바이주 시장은 ‘중국 음식점에서 아저씨들이 마시는 술’ 정도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한국리서치가 올 7월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 주변 5개국 호감도를 조사한 결과 중국(23.9점)에 대한 호감도는 북한(29.4점)이나 일본(29.0점)보다 훨씬 낮았다. 올해 초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23.3점)와 비슷했다.
2019년 반일(反日) 불매 운동이 시간이 지나자 점차 잦아 들었던 것처럼 반중 정서 역시 시간이 지나면 희석될 수 있다. 심지어 양꼬치나 마라탕 같은 중국 음식은 반중 정서와 상관없이 반짝 인기를 넘어 국내 외식업 시장에 완전히 스며들었다.
이보다 더 큰 장애물은 바이주에 붙는 고(高)관세다. 현행 관세 체계에 따르면 와인과 사케에는 과세 가격을 기준으로 대략 70%, 위스키와 보드카, 코냑에는 160%를 세금으로 부과한다. 관세와 주세, 교육세를 모두 포함한 세율이다.
반면 고량주 관세율은 180%에 달한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마오타이, 우량예(五糧液), 수이징팡 같은 고급 바이주 수요는 관세가 붙지 않는 면세점 수요가 대부분이다. 연말이나 설, 추석 선물 목록에서도 고가 바이주는 와인이나 위스키에 자리를 빼앗겼다.
한 바이주 수입사 대표는 “몇 년 사이 중국 요리나 중국 음식점 수준은 확실히 높아지고 콘셉트도 다양해 졌지만, 어딜 가나 나오는 술은 똑같은 브랜드 고량주 아니면 특정 맥주일 정도로 중국 술 종류가 획일화 됐다”면서 “바이주 시장이 줄어 들면서 중소형 수입사들은 관세를 납부할 여력이 없을 만큼 자금력이 부족해졌다”고 말했다.
질 좋은 바이주에 따라 붙는 가짜 술 논란도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53도짜리 마오타이주는 지난해 말 기준 500ml 한 병 출고가가 1499위안(약 30만원)에 달한다.
그러나 중국 현지에서조차 이 가격에 두 배 정도는 줘야 시중에서 구할 수 있다. 다른 바이주들 역시 ‘생산량보다 판매량이 훨씬 많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가짜가 창궐하고 있다.
브랜드 포지셔닝 전문가인 김소형 데이비스앤컴퍼니 컨설턴트는 “스카치 위스키는 우리나라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스코틀랜드가 가진 문화적 기호와 위스키가 가진 헤리티지(역사적 유산)을 광고나 캠페인 형태로 전파하는 데 집중했다”며 “외국에서 K팝이나 K드라마가 성공하자 우리 술이 자연스럽게 인기를 얻었던 것처럼 중국 술도 개별 제품 마케팅에 앞서 자연스럽게 바이주 문화를 알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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