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패딩·장갑은 사치"…길 위 이웃들의 '혹독한' 겨울나기

이비슬 기자 2022. 12. 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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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춥다고 쉬면 일당은?"…소방관 방화복도 얼기 일쑤
"장갑은 사치" 택배기사 손엔 '동상'…미화원이 만든 눈 없는 출근길
서울 종로구청 앞에서 배달 노동자가 도로를 주행하고 있다.2021.1.7/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서울의 체감온도가 -18도까지 내려간 23일 오전. 영등포구의 지상 42층 규모 사무용 건물 공사장에선 추위를 잊을 정도로 뜨거운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건설 노동자들의 옷과 머리카락 위에는 새하얀 시멘트 가루와 먼지가 눈 대신 내려앉아 있었다. 한쪽에서 담뱃불을 붙이는 이들의 얼굴과 손은 벌겋게 텄다. 머리와 목을 꽁꽁 싸맨 워머도 살을 파고드는 추위를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약 600여명에 달하는 건설 노동자들이 공사장 출입구를 통해 마구 쏟아져 나왔다. 37년간 건설 현장에서 일한 이경철씨(60)는 "추운 날 몸이 움츠러들어 더 많이 다치고 상처도 많이 난다"며 "오늘 같은 날엔 손이 얼어서 일이 고되다"고 말했다.

공사 현장에서 롱패딩 점퍼는 사치다. 옷자락이 철근에 걸리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짧은 상의 유니폼 아래로는 움직이기 불편하더라도 세, 네 겹씩 내의를 껴입을 수밖에 없다.

혹여 다치거나 몸살이라도 앓으면 일당을 더 받아 갈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점심을 마친 뒤 무리에 서 있던 한 남자는 씁쓸한 표정으로 담뱃재를 털어내며 "아프면 자기 손해"라고 말했다.

폭설로 인해 전남 화순군 화순읍의 한 축사 지붕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있다.(화순소방서 제공) 2016.1.25/뉴스1 ⓒ News1 전원 기자

혹독한 한파에도 길 위에 온몸을 내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실외가 곧 일터인 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공사 현장, 배달, 화재 진압, 길거리 청소까지 사각형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만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늠하기 힘든 어려움과 매일 마주한다.

추위에서 내 몸을 지킬 방법이라곤 내의를 겹겹이 껴입는 수밖에 없다.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올 겨울이 유난히 버거운 이유다. 26일 뉴스1은 한파를 뜨거운 입김으로 녹이는 이들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소방관 겨울철 물·불에 '이중고'…방화복도 '꽁꽁'

겨울철은 물과 불을 다루는 소방대원들에게도 특히 더 혹독한 시기다. 대기가 건조해 화재 사고가 잦은 데다 화재 진압을 위해 뿌린 물이 얼어서 소방대원이 미끄러져 다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수백도가 넘는 화마와 싸우고 나면 동장군과 연장승부를 펼쳐야 하는 셈이다.

계속되는 한파로 건물 수도관이 동파하면서 생긴 고드름 제거 작업에도 소방대원들이 동원된다. 단단하게 얼어버린 고드름을 제거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강풍과 추위까지 견뎌야 한다.

화재 진압 전후로 방화복이 젖어 얼어붙으면 고생은 두 배가 된다. 서울의 한 소방 관계자는 "방화복이 방수가 된다지만 겉에 묻은 물이 얼면 체온이 많이 떨어진다"며 "활동성이 둔해질 수 있어 방화복 아래 옷을 두껍게 입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청 앞에서 배달 노동자가 물건을 옮기고 있다.. 2021.1.7/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네겹' 껴입어도 오토바이 오르면 파고드는 칼바람 모진 한파에도 하루 12시간 이상 길 위를 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배달 라이더에게는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는 한파, 비 오는 날, 혹서기가 더 바쁜 대목이다.

추위가 거세지면서 라이더들의 오토바이도 겹겹이 옷을 껴입었다. 도심 곳곳을 달리는 배달 라이더 저마다 오토바이 손잡이 양쪽으로 핸들워머를 끼우고 종아리 앞에 패딩 소재 천을 덧대 칼바람을 막아보려 애를 쓰고 있었다.

영등포구 일대에서 1년간 일한 라이더 김모씨(37)는 크리스마스에도 쉴 틈이 없었다. 상의 네 겹, 하의 세 겹을 껴입은 김씨는 25일 하루 내내 세찬 바람을 가르며 여의도 일대를 분주히 달렸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패딩 소재 부츠를 신었는데도 오토바이에만 오르면 냉기가 옷을 뚫고 온몸을 감싼다고 했다. 김씨는 "겨울에는 음식이 식을까봐 더 서두르게 되고 몸도 무거워 일하기 까다롭다"며 "눈이 많이 내린 뒤에는 길이 얼어 사고가 날까봐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설 연휴를 앞둔 28일 서울 송파구 복합물류단지에 택배가 쌓여 있다. 2022.1.28/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택배 기사에게 겨울은 김장과 함께 시작된다. 전국 각지에서 물기를 가득 머금은 절임 배추 배송량이 늘기 시작하면 슬슬 부담감이 엄습한다.

택배기사 최형수씨(41)는 "같은 상자에 담겨있다고 해도 물기가 많은 식료품은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며 "겨울엔 관절도 많이 다치고 추위에 움츠러들어 체력 소모가 몇 배나 빠른 것 같다"고 말했다.

손을 많이 써야하기에 장갑을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동상에 걸리는 택배 기사도 열에 일곱가량 된다고 했다. 택배 노동자 대부분 개인 사업자 신분이기 때문에 다쳐도 회사에서 보상받거나 방한용품을 지급받는 등의 복지를 기대하기 어렵다.

서울 서울 용산역 앞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 앞에서 환경미화원이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 2021.1.7/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출근 전 깨끗한 도로…보이지 않는 새벽 구슬땀 18년째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상도씨는 요즘 부쩍 신경이 곤두섰다. 눈이 많이 내리면서 지하철역 근처나 비탈길에 쌓인 눈을 출근 시간 전까지 쓸어내려면 평소보다 더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동이 트기 전인 새벽 6시부터 2시간가량이 하루 중에 가장 바쁜 시간이다. 녹은 눈과 얼음으로 엉겨 붙은 쓰레기를 쓸어내고 도로를 깨끗하게 정비하는 일은 알아주는 이가 없더라도 매일 묵묵히 반복한다.

한파가 몰아쳐도 금세 땀으로 젖어버리기 일쑤다. 이씨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야외에서 일한다는 사실 자체로 사계절이 내내 고단하다"면서도 "그럼에도 밥벌이 그 이상의 책임감을 가지고 모두가 잠든 새벽에도 일을 나간다"고 말했다.

b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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