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윤설미 “북송됐는데 조사관이 소꿉친구‥기적처럼 살아”(세치혀)[결정적장면]

이해정 2022. 12. 26.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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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치혀' 윤설미가 두 번 북송 당하고 세 번째 탈북에 성공한 경험을 털어놨다.

윤설미는 "제가 두 번 북송을 당하고 세 번 탈북을 했다"며 "북송을 당하고도 다시 탈북을 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냐. 그 이유가 있다. 처음 탈북해 중국으로 갔을 때 23살에 낳은 딸이 있었다. 젖먹이 아이를 두고 북송이 되니 감옥에서 '대장금' 이야기를 할 때 남들은 웃을 때 나는 '내가 여기서 죽으면 내 아이가 장금이처럼 엄마 없는 아이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힘들게 힘들게 5년의 수감을 견뎠고 출소 전날부터 탈북 동선을 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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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이해정 기자]

'세치혀' 윤설미가 두 번 북송 당하고 세 번째 탈북에 성공한 경험을 털어놨다.

12월 25일 방송된 MBC 예능 '혓바닥 종합격투기 세치혀'에서 탈북민 윤설미는 '님아 그 총을 겨누지마오'를 주제로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윤설미는 "제가 두 번 북송을 당하고 세 번 탈북을 했다"며 "북송을 당하고도 다시 탈북을 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냐. 그 이유가 있다. 처음 탈북해 중국으로 갔을 때 23살에 낳은 딸이 있었다. 젖먹이 아이를 두고 북송이 되니 감옥에서 '대장금' 이야기를 할 때 남들은 웃을 때 나는 '내가 여기서 죽으면 내 아이가 장금이처럼 엄마 없는 아이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힘들게 힘들게 5년의 수감을 견뎠고 출소 전날부터 탈북 동선을 짰다"고 말했다.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두만강으로 건넜지만, 중국에 있는 시댁에 도달하기는커녕 주민 신고로 다시 잡히고 만 윤설미.

그는 "'아 나는 죽을 운명인가 보다' 생각했다"며 "가장 속상했던 건 짐승도 자기 새끼와 함께 사는데, 세상에 신이 있다면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해서 내가 낳은 아이 얼굴 보는 게 기적이 필요하냐. 나는 살려달라는 기도도 안 하겠다고 간절히 외쳤다"고 눈시울을 붉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윤설미는 "그렇게 북송이 됐는데 보위부에서 조사원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더라. 피도 눈물도 없고 옆방에서는 고문 받는 소리가 나는데 이런 곳에서 누가 절 위해 울어주겠냐. 그런데 정말 간절하면 이뤄진다는 말이 있지 않냐. 고개를 들어 보니 소꿉친구가 담당 취조원으로 앉아있었다. 정말 신이 울면서 기도했던 기도를 들어줬나 보다. 그 분이 저를 살렸다. 겉으로는 욕을 하고 필담으로 '내가 반드시 살린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썼다"며 기적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조사원 친구 덕분에 다시 탈북을 하는데 성공했지만, 감옥에서 나온 윤설미의 당시 몸무게는 고작 35kg. 두만강을 건너면서 물에 휩쓸리고, 산꼭대기에 올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걸은 시간만 해도 3일이었다고.

그렇게 기력이 다해 쓰러졌지만 여전히 북송 위기로부터 안전하지 않았던 윤설미는 한 인가를 무작정 찾아 들어가 "내겐 딸이 있다"고 무릎을 꿇고 빌었고, 그 사연에 공감한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기적처럼 중국 시댁으로 이동해 아이와 재회할 수 있었다.

(사진=MBC '혓바닥 종합격투기 세치혀')

뉴스엔 이해정 hae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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